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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민심의 급변 계기는 1988년 총선(總選) 천영수(회원)  |  2019-03-20
한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고찰은 책으로 수십 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자칫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필자가 겪은 사실을 놓고 제한적인 부분에 대해 써 보겠다.
  
  전두환 정권 때이니 오래전 일이다. 회사에서 전라도 전주로 발령이 나 아내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가서 2년간 살았었다. 사람들은 인정스럽고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직장을 포함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전국 각지 사람들을 상대하게 된다. 내 경험으로는 전라도 사람들이 대체로 가장 인정스럽고 배려하는 마음이 넓었다.
  
  마침 1노 3김이 겨루는 대선이 닥쳤다. 노태우가 유세 연설하러 전주에 왔다가 돌팔매를 맞고 갔다는 뉴스가 뜨고, TV 방송을 보면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등 유세장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이는 유세장에 국한된 상황으로 필자는 현장을 보지 못했다.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 주변의 일반 주민들 일상은 평온하기만 했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도 별로 나쁘지 않았다. 김대중을 구속시켰다는 데 대한 앙금이 남아 있었지만 대체로 우호적이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훨씬 후의 일이지만 서울에서 만난 한 전라도 곡성 출신의 나이 많은 분은 '전두환이 사람을 많이 죽여서 그렇지 정치는 잘했지'라고 평가했다. 전두환이 사람을 죽였는지 여부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결론은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전주에 있을 때만 해도 전라도 민심은 전두환과 5·18 광주사태와는 별 관련을 삼지 않을 때이다. 노태우가 돌팔매를 맞은 것은 5·18의 여파가 아니라 김대중과의 대결 구도였기 때문이다. 뒤에 온 김영삼도 똑같이 돌팔매를 맞았다.
  
  실제 선거 결과를 통해 보면 그 실상을 좀더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다. 전두환이 집권한 직후인 1981년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두환이 이끄는 민정당이 전북 14개 의석 중 7석, 전남(광주 포함) 22개 의석 중 10석을 얻었다. 4년 뒤인 1985년도에는 전북 14개 의석 중 7석, 전남 22개 의석 중 11석을 얻어 전남에서 오히려 1석이 늘었다. 전두환의 민정당이 전라도 전체에서 절반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이는 경상도와 똑같은 추세였다.
  
  그런데 1988년도 선거에서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전·남북을 통틀어 민정당이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김대중이 창당한 평화민주당이 싹 쓸어간 것이다. 이 선거판에서 온갖 유언비어가 생산 난무했었다. 전두환과 5·18과의 고리도 이때부터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5·18 광주 학살'이란 말 자체가 없었고. 당연히 이를 전두환과 연결시키는 분위기가 있을 수 없었다. 김대중이 지역감정을 유발한 진원지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는 사건이다.
  
  정치를 하다 보면 지역감정을 건들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히 갈린 것은 역시 김영삼의 5·18 특별법 제정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김대중은 조심스러워 사심이 있어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편이었다. 그런데 김영삼은 막가파 스타일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난감한 처지를 타개하기 위해 단순히 전두환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이상의 망국적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미워하다 대한민국에 불을 지른 격이다. 그 짓을 지금 문재인이 다시 저지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제발 전라도 사람들이 이제 이성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自由韓國 2019-03-21 오전 9:59:00
    하여간에 김대중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잘한게 거의 없는 인간입니다
    국가에 해를 끼친자입니다
    김영삼도 마찬가지구요
  • naidn 2019-03-20 오후 10:18:00
    김영삼이를 째매라도 아는 사람은 말카 또라이 영삼이라고 한다.
    나라망친 또라이지
    대중이야 천생 빨갱이니까 그렇다 치고 ...
  • 白丁 2019-03-20 오후 8:35:00
    전라도인들의 별난 지역감정의 원인을 김대중의 지역감정 유발과 김영삼의 오십팔 특별법에서 찾으신 관점은 참으로 예리한 분석입니다. 노태우가 김영삼을 대권 후보로 낙점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 후 최악의 실책이었지요. 나라 꼴이 이지경까지 이르게한 사태의 연원은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으로 비롯되었습니다. 亡國大道의 길을 닦은 장본인이지요. 노태우가 왜 김종필을 제끼고 김영삼을 택했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 탓에 애꿎은 전두환까지 함께 감옥에 가고…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그때 김영삼 아닌 김종필로 대권이 이어졌으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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