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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엄상익(변호사)  |  2021-03-06
대기업 임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친구가 있다. 올곧은 성격의 강직한 성품이었다. 기업에 있으면서도 정직성의 상징이었다. 퇴직을 한 그는 또 다른 직업인으로 나섰다. 택시의 핸들을 잡은 것이다. 그는 단번에 대기업 임원 시절의 기억을 털어버리고 택시를 모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학력과 경력 때문에 택시회사에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명문고와 대학을 나온 그는 이력서에 정직하게 학력을 썼던 것이다. 택시회사에서는 학력이 높은 사람들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다음의 일로 사회단체의 책임자로 갔다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일년쯤 있으면서 그 단체의 내막을 알고 분노했다. 시위꾼들이 겉으로는 진보단체의 간판을 걸고 이면으로는 정부의 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정부가 재개발을 하는 곳에 형식적으로 월세방을 만들어 놓고 담당자와 연결해 거액을 보상금으로 빼먹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예전의 진보들은 그래도 도덕성을 주장했는데 이제는 철저히 썩어 문드러졌다는 것이다. 그가 내게 그동안 고생한 이런 말을 털어놓았다.
  
  “그 사람들이 나를 이사장이란 명칭으로 모셔간 것은 나를 허수아비 대표로 만들고 뒤에서 자기들이 나쁜 짓을 계속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런데 내가 자기들 뜻대로 안되니까 쫓아내려고 별별 짓을 다 하기 시작하는 거야. 처음에는 존경한다느니 뭐니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더니 내가 바른 말을 하니까 하루아침에 태도가 얼음보다 더 냉랭해지는 거야. 그 사람들 수법이 있더구만. 한 사람이 내가 돈을 먹었다면서 선동하는 글을 카톡에 올리더라구. 그러더니 대여섯 명이 조직적으로 바로 동조해서 나를 모욕하면서 비난하는 글을 올리는 거야. 예를 들면 처음에 나를 보고 ‘이사장님 존경합니다’라고 하던 거의 아들 뻘 되던 젊은이가 ‘야, 상민아 몇 푼 안되는 돈과 그 이사장 자리가 그렇게 좋으니?’ 하고 야비할 정도로 빈정대는 거야. 선동조가 그렇게 되니까 백 명 정도가 별별 욕을 하면서 나를 성토하더라구. 돈은 내가 먹은 게 아니라 자기들이 먹고서 말이야. 거기다 횡령죄로 나를 고소까지 하는 거야.
  
  난생 처음으로 경찰서라는 곳을 가 봤어. 젊은 형사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나를 도둑놈 취급을 하는데 그 수모감도 정말 견디기 힘들더라구. 그렇게 해서 나를 쫓아내려는 거지. 이리저리 맞아서 넉 다운되고 당장 그 단체에서 나오고 싶었어. 너무 두들겨 맞다 보니까 슬며시 오기가 나는 거야. 그 시위꾼들 하나하나 보면 별 것 아닌 놈들이야. 여기저기 다니면서 악악대면 돈을 주니까 아예 그게 직업으로 된 놈들이지. 그래서 버티고 싸우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이제는 내가 강철이 되어 버렸다니까.”
  
  예전에 운동권이 필독서로 읽던 ‘강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래 어떻게 강철이 됐어?”
  내가 물었다.
  
  “그 친구들이 야유하고 시위하고 떠들어 대고 할 때 전혀 대응할 필요가 없어. 카톡을 열어보는 순간 내가 거기 끌려가고 힘들어지는 거야. 나를 비난하는 글들을 볼 필요가 없는 거지. 대응하면 그들에게 휘말리는 거니까. 경찰서에서 조사도 여러 번 받아보니까 점점 용기가 생기더구만. 형사한테도 당당하게 대하고 무례한 인간이 있으면 거기 맞대응해 주면 되는 거야. 그리고 나를 공격하던 놈들에게 침묵하고 있다가 그 수위가 어느 정도 올라 명예훼손이 될 것 같으면 그때 법적으로 점잖게 대응하고 말이야. 그놈들 벌금 백만 원만 선고되도 위축이 돼서 입을 닫더라구.”
  
  강직한 선비였던 그가 어느새 강철같은 투사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하나님은 악인을 만나게도 하고 혹은 병으로 혹은 재난으로 어떤 사실 속에 들어가게 해서 그 메시지를 전하실 때가 있는 것 같다. 무쇠 같던 친구가 갈고 갈리니까 강철이 된 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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