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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도둑들…"프로의 세계는 은퇴가 없어요” 엄상익(변호사)  |  2023-02-01
<불이 꺼진 양심>
  
  구치소에 잡혀 있는 한 절도범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왜 남의 물건을 훔쳐도 양심이 아프지를 않죠? 남들은 도둑질을 하면 가슴이 쿵쿵 뛰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하는데 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모르겠어요.”
  
  그는 진짜로 그런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판사 앞에서 반성했다고 말하는데 그거 거짓말이에요.”
  
  나는 그의 솔직한 감정 표현에 위선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양심이라는 게 뭘까 나도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여러 나이층의 다양한 도둑들을 만나 물어보았다.
  
  국선 변호를 위해 영등포교도소에서 중학교 일학년 정도의 어린 절도범을 만났었다. 그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 같은 반 아이 지갑에서 돈을 가져갔어요. 그 돈으로 게임을 하고 햄버거 사 먹었어요. 재미있었어요. 그러다가 동네에 있는 롯데 백화점으로 진출했죠.
  
  물건 사는 아줌마 뒤에 서 있다가 핸드백에서 몰래 지갑을 빼냈어요. 모르더라구요. 자꾸 그렇게 했죠. ”
  
  그 아이는 그렇게 도둑이 됐다. 미성년자라도 전과가 늘어나니까 감옥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 아이를 면회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십대 말쯤의 도둑을 만났다. 밤늦게 문 닫은 백화점 매장을 털다가 잡혔다. 그는 강도전과도 있었다. 그는 도둑이 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화장대 위에 있는 어머니 지갑에서 돈을 몰래 빼서 가졌어요. 점점 배짱이 커지더라구요. 옆집 물건도 건드리게 되고 다른 집도 털게 됐죠. 도둑질하고 나오다가 주인을 만나면 다급한 김에 때렸더니 강도가 되더라구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맞아요. 저도 처음에는 속에 두 마음이 있었죠. ‘가지고 싶다’는 마음과 ‘그러면 안 된다’는 두 마음이 싸웠어요. 결국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이기니까 훔치는 거죠. 고쳐보려고 노력해도 안 되요.”
  
  반면에 같이 자란 그의 동생은 이런 말을 했다.
  
  “형만 도둑질 했지 나하고 누이는 굶어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 자랐어요.”
  
  수십개의 절도전과가 있는 노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도둑이 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아이 때부터 만원 버스 안에 올라가 쓰리 노릇을 했십니더. 이 놈의 버릇은 죽기 전에는 몬 고칠 낍니더. 요노무 손모가지를 쌍둥 자르기 전에는 틀린 기라요. 내 마음은 안 한다 케도 손은 물건만 보면 벌써 거기 가는 기라요. 변호사님은 이 말이 뭔 말인지 참말 모를 낍니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판원으로 남의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책상 위에 놓인 지갑을 훔치다 걸려서 구속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정말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 그 얼마 후 면회를 간 자리에서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구치소 절도방에 있으니까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게 참 부끄러웠는데 여기 몇 달 있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를 않는 것 같아요. 내가 한 짓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죄 의식이 마비됐나 봐요.”
  
  도둑중 최고라고 대도(大盜)라는 별명을 얻은 도둑과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꼬마 때부터 나이 팔십까지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는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꼬마 때부터 남의 집에서 구걸을 했죠. 그러다가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은수저를 훔쳐 거지 움막으로 돌아오면 신났어요. 그런데 다른 아이는 남의 집 안방에까지 들어가 커다란 비싼 라디오를 훔쳤다고 자랑을 하는 거에요. 우리들한테는 더 대담하게 더 비싼 물건을 훔친 아이가 영웅이었죠. 나도 언젠가 이 나라 최고의 도둑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죠. 그리고 노력했어요. 담을 타고 넘는 연습도 하고 지붕에서 지붕으로 날아다니는 훈련도 하고 또 했어요. 어느 집에 보석이 있는지 냄새를 맡는 감각도 익히구요. 도둑세계의 윤리는 변호사님 같은 보통사람들의 세계와는 전혀 달라요. 나도 나이가 들었지만 프로의 세계는 은퇴가 없어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양심이란 게 무엇인지 의문이었다. 그러다 양심이란 하나님이 우리의 내면에 걸어주는 등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우리는 환한 길을 똑바로 걸어간다. 그들의 경우는 양심의 등불이 꺼진 상태인 것 같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이 지상에서는 캄캄한 감옥이고 그 이후는 지옥일지도 모른다. 나는 대도(大盜)에게 물었었다.
  
  “사십 년을 감옥에 사는 당신의 삶은 무엇입니까?”
  
  “도둑질을 하면 이렇게 감옥에 살다가 비참하게 죽는다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샘플이죠. 그게 내가 맡은 역할이에요.”
  
  낮도 그들에게는 밤같이 어두웠다. 양심은 세상의 빛이다. 양심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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