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종로구, 중구 등 서울 시내 곳곳에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자영업자 카드수수료 인하 대통령님 고맙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주로 한국마트협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등의 명의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지난 11월 26일 당정협의를 거쳐 금융당국이 결정한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안’에 대한 환영의 뜻을 플래카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의 활동내역과 주장들을 보면 순수한 자영업자들의 모임이라기보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 관변단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은 26일 정부 발표가 있던 당일, 이미 그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라는 플래카드와 피켓 등을 준비해, 오전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열렬한 환호’를 보낸 바 있다.
당시 집회 주최 측은 "문 대통령은 역시 자영업자들을 버리지 않았다. 이제껏 당리당략 정치적 이용을 해온 경우가 더 많았지만 문 대통령은 달랐다"며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품고 이제 다시 저희는 생업 현장으로 돌아간다"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일명 '불공정 카드수수료 차별철폐 전국투쟁본부'는 지난 26일 당일까지 42일간 정부가 아닌 카드사를 투쟁 대상으로, 노숙 농성을 벌여왔다. 이 '투쟁본부'는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를 비롯해 한국마트협회·전국가맹점주협의회·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편의점살리기전국네트워크·CU가맹점주모임 등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해당 집회의 주축을 이룬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이하 한상총련)는 지난 8월6일 임명된 인태연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이 임명 시점까지도 회장을 맡고 있던 단체다. 이 단체는 올해 3월 21일 출범했는데, 국회에서 출범식을 열었을 당시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 등 여당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었다. 한상총련은 출범 당시 △복합쇼핑몰 규제 △카드수수료 인하 △생계형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 △대기업 갑질 근절 △임차상인 권리 보호 등을 5대 입법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인태연 비서관은 한상총련 출범 전에는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공동회장을 지냈는데, 이 협회 역시 26일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집회에 참여한 단체다. 인 비서관은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인태연 비서관은 한상총련 회장 시절,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했던 대부분의 자영업자들과는 달리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을 주장했었다. 그는 한상총련 출범식 인사에서 "중소상인들은 최저임금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닌, 최저임금도 줄 수 없을 만큼 불합리한 영업환경으로 힘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기업이 대형 마트와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자영업 영역을 침범한 것을 비판해왔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는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이 참여한 '중소상인비상시국회의'를 발족, 의장을 맡았으며 이 단체는 2016년 11월26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박근혜 퇴진! 재벌해체! 중소상인저잣거리 만민공동회'를 연 바 있다.
청와대 인태연 비서관과의 ‘인연’ 때문인지, 한상총련·한국마트협회·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등의 단체는 정부를 대상으로 한 투쟁이 아닌 ‘카드사’를 대상으로 한 투쟁을 벌여왔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도 다른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 7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직후, 소상공인연합회가 최저임금 인상 반대, 업종별 차등 적용 등을 요구하며 전통시장 상인, 영세 중소기업 등과의 공동 투쟁 등 정부를 상대로 한 강경 대응을 한 반면, 한상총련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지 않았다.
한상총련은 노동자들의 지갑이 두꺼워져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만큼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나 동결은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지지하며, 카드수수료 인하, 임대료 문제 개선, 골목상권 보호 등에 목소리를 높였다. 즉, 정부와 한목소리를 내온 것과 같다.
11월 13일 한상총련과 한국마트협회가 주축이 된 ‘카드수수료 인하 요구’ 1차 총궐기 집회에는 여당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그들은 격려사를 통해 카드수수료 문제를 해결하겠노라 약속했다. 모두 여당 중진급 의원들이었다.
당시 투쟁결의문은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로 시작됐다. 집회현장에 나와 연대의지를 표명했던 양대노총 관계자들의 연대사 또한 최저임금이 주요 이슈였다. 자영업자들의 공격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카드사, 즉 대기업이었다.
그렇다면 한상총련 등의 단체가 다수 자영업자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들 단체의 주축인 ‘슈퍼마켓’, ‘마트’등의 유통업체는 매출액이 연간 15억 이상, 많은 경우 100억이 넘는 업체들이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의 90%는 연 매출 5억 이하의 영세 자영업자다. 즉 한상총련등이 자영업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영세 자영업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이번 ‘카드 수수료 인하’의 혜택은 연매출 5억 원 이하의 자영업자들에겐 그 혜택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수수료 우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정책 결정으로 주어지는 추가 혜택이 거의 없다. 이번 결정으로 가장 혜택을 받은 자영업자는 3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이다.
카드 수수료 인하와 함께 부가세 세액공제 확대 혜택도 예정돼 있는데, 이 또한 5억 이하 영세 자영업자에겐 추가 혜택이 전혀 없다. 세액공제 한도가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확대되더라도 매출이 5억 이하인 자영업자가 받는 세액공제액은 500만 원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매출이 10억, 20억을 넘게 되면 그동안 세액공제 한도액에 묶여 받지 못했던 혜택을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번 '카드수수료 인하' 조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라는 구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구호를 외치는 단체를 과연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단체로 볼 수 있는가. 자영업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도 없고, 오히려 정부 정책을 지지하며, 정부가 공격하는 대기업을 함께 공격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관변 단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