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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민교재
문재인과 김정은, 차베스와 카스트로(1) 쿠바가 베네수엘라를 먹듯이 북한도 한국을 먹을 수 있나? 趙甲濟, 金永男  |  2019-01-20
김정은을 머리에 넣고 다니는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의 머리에는 김정은밖에 없다든지, "나라까지 기부하는 통큰 지도자"라는 우스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은 이런 세평(世評)을 생각하게 했다. 그는 모두(冒頭)연설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되었다면서 "북한의 조건 없고 대가 없는 재개 의지를 매우 환영"한다고 했다.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의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고 "남은 과제인 국제제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김정은의 시각으로 한 발언이다. 금강산관광은 2008년에 북한군이 한국 관광객을 경고없이 사살하여 중단되었다. 개성공단은 북한이 2016년에 핵 및 미사일 실험을 하니 피해 당사국인 한국은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핵미사일 개발자금으로 전용될 수 있는 자금줄을 차단한 것이다. 귀책사유가 있는 쪽은 북한이다. 그 북한이 조건과 대가 없이 재개를 요청한 것을 환영한다는 말은 북한이 피해자이고 대한민국은 가해자라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강도살인범이 피해 가정의 주인에게 "우리 무조건 대화합시다"고 하니 그 주인이 경찰서를 찾아가 수배령을 해제해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다. 이날 기자회견 모두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작년에 이어 "자유"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최고가치인 "자유"를 극도로 기피하는 마음과 자유의 적(敵)인 김정은에 대한 호감이 결합되어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두 개의 나라
  
  중남미에 두 나라가 있다. 하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다. 역내(域內) 어느 국가보다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무료 의료혜택과 고등교육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나가려 하고 있다. 언론은 자유롭고 정치체제도 투명하다. 야당은 선거에서 격렬하게 싸울 수 있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 국가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빈발하는 군부독재를 따라가지도 않았다. 오래된 미국과의 동맹과 무역 및 투자 관계로 인해 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중남미 본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나라는 남미에서 최고의 사회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물론 부패와 불공정이 있는 개발도상국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다른 후진국과 무엇을 비교해봐도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국가는 중남미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이자 가장 새롭게 독재정권이 들어선 곳이다. 학교에는 학생이 줄어들어 텅빈다. 수십 년간 이뤄진 투자 부족과 부패, 말라리아와 홍역과 같은 질병 창궐로 의료체계는 무너져버렸다. 극소수의 엘리트층만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살인사건이 기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번 세기에 중남미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배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 몇 해 사이에만 수백만 명이 이 나라를 떠났다. 부정선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 소수의 언론마저도 탄압을 우려해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이 국가의 경제력은 5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카인 밀수의 허브로 사용되고 있고 정치 엘리트층의 핵심 인사들이 마약과 관련해 미국에서 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물가는 25일마다 두 배로 뛴다(올해는 물가상승률이 1000만 %로 예상된다). 주요 공항에서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일부 항공사들이 소수의 승객들만을 태운 채 이 공항을 찾는다. 이 두 나라는 같은 국가이다. 전자(前者)는 1970년대 초반의 베네수엘라이고 후자(後者)는 지금의 베네수엘라이다. 베네수엘라는 너무나도 급격히 바뀌어버렸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상의 글은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최근 실린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자살’이라는 제하(題下)의 논문 일부이다. 전쟁이 나지도 않았는데 전쟁을 겪은 나라보다 더 망가진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다가 보니 한국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하나의 참고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차베스와 카스트로의 만남, 비극의 시작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취임식이 1월 10일에 있었다. 나라는 날로 황폐해지고 있다. 좌파포퓰리즘은 전쟁보다 더 무서운 피해를 끼친다는 증거이다. 작년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약 140만%, 인구의 10분의 1인 300만 명이 콜롬비아를 비롯한 이웃 국가로 탈출했다. 500만 명 이상이 추가로 탈출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한다. 국민의 64%는 배고픔으로 인해 몸무게가 11kg 이상 줄었다. 세계최대 석유매장량을 가진 나라가 이 모양이다.
  
  베네수엘라가 국가적 자살의 길로 가게 된 데는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이를 승계한 마두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지만 이 두 사람을 배후에서 조종, 이 나라를 사실상 식민지로 조종한 쿠바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일부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재앙에 쿠바의 지문(指紋)이 묻지 않은 곳이 없다고도 주장한다. 쿠바가 베네수엘라의 국가 지도부 및 보안 정보기관을 장악, 조종하고 있는 것은 북한노동당정권이 남한의 좌파정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추청하는 데 하나의 시사점이 될 것이다. 차베스는 1954년 한 시골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고 소수의 급진좌파 세력들과 함께 민주주의 정권을 뒤집으려는 계획을 짰다. 1992년 4월 그의 쿠데타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출소한 그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가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 차베스는 돈, 정치 경험, 조직적인 지지 세력이 없어 미래가 밝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카스트로는 차베스의 잠재력을 그 자리에서 바로 알아봤다고 한다. 카스트로와 차베스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함께 나누고 시골에서 태어나 지금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야구투수로서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정치를 위해 메이저 리그의 꿈을 포기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차베스가 공산주의자가 된 배경에는 시몬 볼리바르가 있다. 볼리바르는 19세기 초 중남미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키려고 한 운동가이다. 차베스는 이런 볼리바르를 대중에게 팔았다. 차베스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 부패를 청산하고 원유로 번 부(富)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겠다는 공약을 내놨고 대승했다. 그는 1999년에 대통령 당선인 자격으로 쿠바를 다시 찾았다. 차베스는 쿠바를 가리켜 베네수엘라가 항해(航海)에 나서야 할 ‘행복의 바다’라고 했다. 친미(親美)노선의 베네수엘라는 1959년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이후 경제 지원을 중단하고 거리를 둬왔었다. 1974년에 양국간 국교 수립이 이뤄졌지만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 전까지의 관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차베스 정권 출범 이후 두 나라는 밀착하기 시작한다.
  
  후계자로 쿠바의 심부름꾼 선택
  
  차베스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베네수엘라의 사회적 배경은 분명히 존재하였다. 1920년대부터 약 50년간 급격하게 성장해온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1970년대에 들어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서민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길 역시 좁아졌다. 차베스는 양극화(兩極化)를 강조하며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경제학자인 라카르도 하우스만과 프란치스코 로드리게즈는 포린어페어 기고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에 들어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됐고 세계에서 20대 부자 국가 반열에 들었다.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스페인과 그리스, 그리고 이스라엘보다 높았고 영국보다는 13% 적은 수준이었다. 1980년대 초에 들어 국제유가(油價)시장이 침체되자 고속 성장 추세가 멈추게 됐다. 원유 수출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부 지출 감소와 사회 복지 프로그램의 축소, 환율 가치 하락, 물가 상승, 금융 위기, 그리고 높은 실업률과 서민층의 고통 확대를 뜻하였다.>
  
  차베스는 양극화를 줄이고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국민들을 현혹시켰고 정부 지출을 계속 늘렸다. 그는 좌파포퓰리즘으로 2013년 숨지기 전까지 14년간 베네수엘라를 통치했다. 후계자 마두로 정권 역시 비슷한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차베스는 2011년 암 진단을 받은 뒤 치료를 받기 위해 쿠바를 향했다. 브라질과 미국의 최고 전문의들이 치료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믿을 수 있는 곳은 쿠바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2012년 12월 8일 마지막 TV 연설을 통해 당시 부통령이었던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줄 것을 베네수엘라 국민들에 호소했다. 그의 사망 사실은 2013년 3월 5일에 공개됐다. 마두로는 그 해부터 대통령직을 맡게 됐다.
  
  마두로도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였다. 10대에 수도 카라카스에서 親쿠바 성향의 마르크스당에 가입했다. 20대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쿠바에 가서 혁명가 교육을 받았다. 그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차베스 밑에서 외교장관으로 활동했다. 차베스와 쿠바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보여줬고 이 때문에 후계자로 발탁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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