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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독특한 환란(患難) 그는 텅 빈 공허의 광야에서 옆에 어떤 존재가 있는데 느껴지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엄상익(변호사)  |  2019-02-12
​독특한 스릴과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끝이 없는 듯한 낭떠러지에서 허공에 몸을 날리는 사람을 보았다. 죽음을 마주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낙하산을 펴서 살아날 때 독특한 쾌감이 있다고 한다. 내게도 독특한 환란이 있고 독특한 기쁨이 있었다. 별빛만 쏟아지는 그 광야(曠野)에 나가고 싶은 강한 욕구가 솟았다. 예수가 사십 일간 기도하던 그곳이 궁금했다. 환갑을 맞이하던 육년 전 유대광야를 향해 비행기를 탔다. 신기하게도 기다렸다는 듯이 안내자가 나타났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광야를 떠돌면서 이십여 년 동안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영(靈)이 들어와 미친 사람처럼 떠돈다고 했다.
  
  그는 나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이스라엘 국경지대에 있는 유대광야의 한 동굴로 몰래 안내했다. 거친 돌과 낮은 키의 관목이 들어차 있는 메마른 광야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곳의 바위언덕에 있는 한 동굴을 가리키면서 예수가 여기서 낮이면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밤이면 들짐승을 피해서 기도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어둠컴컴한 좁은 동굴로 스며들었다. 겨우 한 사람이 앉아 있을 만한 우물 속 같은 공간이었다. 그곳 바닥에 조용히 앉았다. 잠시 후 신비로운 이상한 느낌이 안개같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것 같았다. 따뜻한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씻김과 평안함이었다. 영혼이 포도주를 마신 듯 나른하게 취하는 것 같았다. 그림의 틀 같은 동굴 입구 밖으로 보랏빛 하늘 아래의 유대광야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 얕은 언덕들이 파도치고 있었다.
  
  나는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편안했다. 나를 데리고 온 그가 돌아와 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텅 빈 공허의 광야에서 옆에 어떤 존재가 있는데 느껴지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욕심과 집착을 버릴 수 있느냐고 그 존재를 대신해서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그게 될 수 있을까? 하고 반문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한 달쯤 지나자 몸에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팔다리에 종기같이 살이 부풀어 오르고 그 안에서 좁쌀 같은 하얀 알들이 증식하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중동지역의 독충인 ‘리슈마니아’에 물린 것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미세한 독충이 몸 속에 들어가 집을 짓고 집단으로 번식한다는 것이었다. 성경 속의 헤롯 대왕이 그 벌레에 물려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영화 벤허 속에 나오는 문둥병도 사실은 그 독충이 사람의 뺨에 집을 짓고 증식하는 과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국내에는 약도 없고 치료해 본 의사도 없었다. 나는 요르단 병원에 인편(人便)으로 약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매주 간절한 마음으로 공항에 약을 받으러 갔다. 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는 의견도 있었다. 미국에서도 내 병은 따로 또 면허를 받은 의사만이 취급하는 까다로운 병이라고 했다. 팔과 다리에 상처부위가 커지면서 부종(浮腫)으로 살이 녹아 해면(海綿) 같이 되는 것 같았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한 목사는 내게 그런 행위의 배경에는 나의 종교적 공명심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을 해 주었다. 그 수많은 성직자도 안하는 짓을 왜 했느냐는 질책이었다. 그 무렵 하나님이 천사 같은 한 의사를 보내 주셨다. 정년퇴직을 하고 필리핀 등의 오지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그런 독충(毒蟲)에 물린 사람을 한번 치료해 봤다는 의사였다. 그는 마이너스 193도의 액체질소를 상처 부위에 발라 살갗을 얼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떼어냈다. 피 속의 곰팡이균류를 제거하는 독한 약을 처방해 주었다. 어느 순간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부풀어 오르던 상처가 푹 꺼졌다.
  
  그렇게 회복이 되고 나는 다시 살아났다. 하나님은 나에게 독특한 환란을 주시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셨다. 동시에 독특한 삶의 기쁨을 주셨다. 치료기간 동안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고 주어진 하루의 삶에 깊이 감사했다. 절벽의 허공에 몸을 던진 사람보다 더 진하게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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