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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만 모르는, 한반도 핵게임판이 바뀌었다! 趙甲濟  |  2019-03-19
한반도 핵게임 판이 바뀌었다
  
   하노이의 트럼프-김정은 회담 결렬 사태로 북핵(北核) 문제의 본질이 명료해졌다. 김정은은 패와 약점을 다 보여버렸고, 트럼프는 회담을 깸으로써 오히려 주도권을 잡았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실패한 중재자'가 되어 입지가 너무 좁아졌다. 하노이 드라마는 한반도의 핵게임 판을 바꾼 사건이었다. 누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인가? 우선 하노이 회담으로 명쾌해진 입장과 조건들을 정리한다.
  
   1. 김정은의 의도 확인: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군축회담을 통하여 한미동맹을 해체, 한국을 종속화 시킨다. 첫 단계로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미끼를 던져 사실상 대북(對北) 제재 무력화(無力化)를 달성한 뒤 한미동맹 해체로 나아간다.
   2. 김정은의 약점 노출: 제재로 인한 경제 악화. 종전선언이나 대표부 교환보다도 제재해제에 매달린 것은 다급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3. 미국의 빅딜 목표와 전략: 북한이 완전한 핵 미사일 생화학 무기 폐기 및 인권개선을 이행하면 제재해제 및 경제발전 지원으로 보상한다. 쪼개팔기 식의 단계적 협상이 아닌 일괄 합의를 추진한다. 이는 북한의 핵보유국 전략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4. 문재인의 국민기만(欺瞞)과 무능: 김정은이 핵을 폐기하고 경제발전에 치중하는 전략적 결심을 하였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언(傳言)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비핵화 사기극’이란 뜻이다. 하노이 회담 전후(前後),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고급정보를 받지 못하여 회담의 실패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여 달라진 세상을 상대로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5. 아베의 승리: 하노이 결렬은 트럼프가 아베 일본 수상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반증(反證)이기도 하다. 아베는 미국이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ICBM) 개발을 동결시키는 수준에서 타협, 일본과 한국의 안전을 포기할까 걱정하여 끈질기게 완전한 비핵화와 모든 미사일의 폐기를 주장해왔었다.
   6. 중국의 낭패: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어떤 경우에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이고, 중국은 김정은을 이용,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켜보겠다는 전략에 타격을 입었다.
   7. 문재인-김정은 공동운명체의 위기: 북한 카드를 잃게 되면 지지율이 떨어지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한미 갈등이 깊어지고, 보수층의 반발이 거세진다. 김정은과 이른바 민족공조 노선을 강화, 반일(反日), 반미(反美)로 돌파구를 찾으려 할 경우 국론의 분열과 최악의 경우 내전적 사태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에 너무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표변하기도 쉽지 않다.
   8. 김정은과 문재인의 착각: 트럼프만 요리하면 된다는 생각은 민주국가의 다양성, 특히 언론 야당 정보기관의 견제 역할을 과소평가하여 벽에 부딪쳤다.
   9.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국화와 한국의 탈미(脫美)를 방치하면 동북아에서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게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10. 문재인 정권의 안보노선(脫美-反日-親中-通北)은 유지하기가 힘들다.
   11. 김정은의 실각 가능성: ‘수령의 권위 손상으로 자유통일이 10년 앞당겨졌다.’(태영호)
   12. 역설적으로 트럼프는 회담을 깸으로써 초당적 지지를 받게 되었다. 대북(對北)강경론이 미국에서 대세(大勢)가 됨으로써 문재인의 '김정은 제일주의 노선'은 사면초가가 되었다. 오히려 아베 수상의 발언권이 커졌다.
  
   김정은-문재인 공동운명체론
  
   트럼프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던 '완전한 북핵 폐기' 카드를 들이대어 김정은을 당황하게 한 것은, 김정은-문재인-시진핑 주도로 전개되던 북핵 장기판을 한 방에 역전(逆轉)시킨 묘수(妙手)였다. 김정은은 자신의 패와 약점을 노출시켰고 문재인은 트럼프와 김정은에 대한 종속성과 무능을 드러냈고, 시진핑은 계산이 빗나갔다. 주도권이 미국 손으로 돌아갔고 아베의 위상도 올라갔다. 문제는 한국인의 득실(得失)인데, 문재인-김정은 공동운명체의 불행이 한민족(韓民族)의 행운이 되는 구도이다. 민족반역자 김정은과 공조하면 자동적으로 민족반역자가 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생일을 공식적으로 인멸한 문재인 대통령은 문명(文明)의 반격을 불러 자멸의 길을 선택하였는지 모른다.
   대한민국 70년의 문명 건설, 즉 언론자유, 법치, 복수정당제, 국군, 한미동맹의 집합된 힘이 생존투쟁에 돌입하면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끄집어올린 시대착오의 이념과 여기에 포로가 된 문재인 세력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이 될 것이다.
   아베는 이민족(異民族)인데도 한국인에 유리한 정책을 펴고(북핵 완전 폐기, 북한 인권 문제 해결 등), 문재인은 동족(同族)인데도 한민족에 불리한 정책을 펴는 것은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의 위대성과 인종주의적 '민족공조론'의 야만성을 극적으로 폭로한다. 이념이 민족보다 중요한 것이다.
  
  
삼성전자 뉴스룸
  • 나대신 2019-03-19 오후 9:45:00
    아래 글을 보며 한 가지 점을 말하고 싶다.

    하노이회담은 '하느님이 보우하신' 결과였고 이에 대한 조갑제님 논평은 지피지기를 위해 꼭 필요한 지적이고 검토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 글의 아래에 붙여놓은 분량많은 댓글 또한 수고를 마다않는 충정의 발현일 것으로 여겨 찬찬히 읽어 보게 되었다.
    그런데... 모르겠다. 왜 모르겠는지 따져가기 시작하면 이 글 또한 아래글처럼 쓰잘데없이 길어질 것이기에 딱, 멈춘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묻고 싶어도 참는다.
  • 태극당 2019-03-19 오후 7:59:00
    이 글을 보며 네 가지 점을 말하고 싶다.

    하나는 언론인들의 ‘예측병’이 사회를 혼란케 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대부분의 일반시민은 결과를 중시한다는 점이며 세 번째는 지난 하노이 회담의 결과는 이미 답이 나와 있던 것이라는 점이고 네 번째는 큰 언론인으로 남고 싶으면 쪼다 천 명의 칭송보다 지혜로우나 침묵하는 시민 한 명의 기억 속에 덕이 있고 현명한 언론인으로 기억되는 것을 더 염두에 두는 게 낫다는 점이다.

    갈수록 지구촌 인구는 늘고 있고 국가 간 교역량도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국가 간 경제적, 군사적 이해관계도 복잡해지고 있다. 그런 실정에 비하면 오늘날 인류는 전쟁이 거의 없다. 전쟁이 뜸해지다보니 각국은 내부적으로 정파 간의 다툼이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정파 간 다툼이 치열해지는 만큼 언론이 관찰자가 아닌 운동원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언론은 과거에 비해 권력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

    (1) 언론사가 기사 작성과 사회적 현상 논평의 일반적 범위를 벗어나 정치적 선봉장이 되면 덩달아 다수 언론인의 명예심이 지나친 공명심으로 변질되고 급기야 예측병에 걸리게 된다. 논평가의 예측은 일정 문제의 악화를 막거나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그것이 지나쳐 예측병에 걸리면 논평 자체가 불필요한 자존심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자존심은 몰염치와 사촌간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예측병 걸린 이들이 많다. 논평가의 예측병이 사회를 혼란케 하고 있다.

    (2) 대부분의 시민은 일의 결과를 중시한다. 스포츠에 대해선 승부가 날 때까지 경기를 관전하는 재미도 중시하지만 우리의 안보 이익이 걸린 어떤 정치적 협상 결과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결과를 중시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트럼프가 아무리 우리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우리 언론인들에게 인기가 많더라도 김정은 유리한 짓을 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들은 다른 나라 대통령인 트럼프가 과거에 무얼 어떻게 했든 김정은과의 회담을 통해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만족해하는 것이다. 즉 트럼프는 못난 놈인데, 그 참모와 아베가 훌륭하여 다행히 하노이 회담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식의 구질구질한 배경음악을 깔아놓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예전에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는 미국 출신이 아닐 것이다'라는 공격이 힐러리로부터 시작되었고 이걸 나중에 트럼프가 흉내 낸 바 있다. 이에 오바마 부인이 그런 트럼프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는데, 아마 오바마 부인은 트럼프를 비난하며 에둘러 힐러리에게도 일침을 놓은 것일 테다. 헌데 우리 언론인들은 오직 그런 공격을 한 트럼프가 비열하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언론인들은 트럼프가 잘 한 일은 모두 그 참모들의 공으로 돌리고 참모들이 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런 인물을 골라 쓴 트럼프 잘못이라 하던데, 이런 엿장수 마음대로식 논평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했던 것으로 끝냈으면 한다.

    (3) 하노이 회담의 결과는 이미 답이 나와 있던 것이었다. 그 회담 결렬 후의 논평이나 분석 기사들을 보면, 그 전에 볼턴이나 폼페이오가 했던 말들을 부랴부랴 찾아내 인용하면서 그런 말 속에 숨은 의도가 있었다느니 하는 경우가 많다. 트럼프를 씹을 때는 보이지 않거나 애써 외면했던 볼턴이나 폼페이오의 발언들을 회담 결렬 후 늘어놓으면 뭐하나. 그런 분석은 누구나 한다.

    현상 비판과 지나간 일 논평에 유달리 능한 우리 언론인들은 지난 싱가포르 회담과 하노이 회담의 수순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더라도 결과에 있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단지 트럼프의 경우 자신이 가진 대외적 이미지를 보다 잘 활용하여 자기 방식대로 김정은을 유인한 것이고, 만일 트럼프가 아닌 다른 대통령이었을 경우라도 전개과정은 트럼프와 다소 다르더라도 방향과 목표는 트럼프와 비슷하게 설정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이런 문제는 한 국가가 가진 총체적 안보 역량에 따라 발현되는 기본 안보 기조에 속한 것이지 지도자 개인의 생각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 십 년간 미국의 여러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그보다 더 큰 현안들이 늘 있었던데다 지정학적으로 북한이 특수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데 있어 막바지 단계에 왔기 때문에 더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북한을 일방적으로 때리기도 어렵다. 바로 옆에 대한민국이라는 인질 아닌 인질이 있고 자국 의회의 승인이나 여론의 뒷받침도 있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복잡한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데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도 결코 없다. 핵 포기는 체제 멸망으로 이어지니까. 이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결국 북한을 고사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북한도 이를 너무나도 잘 아니까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그동안 필요한 무기 개발을 모두 끝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은 그 전에 항복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고.

    미국 입장에서 시간이 다급한 가운데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래서 문 정권과 김정은이 원하는 단계적 핵시설 철거 따위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수법에 이미 미국은 오래 전부터 여러 번 속았다(정확히 말하면 속았다기보다는 그런 방법을 더 우선해도 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한편 다른 현안이 많아서 다소 안일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는 그런 수법을 받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언론인들은 걸핏하면 북한에게 속았느니 안 속았느니 떠드는데,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대 대통령들과 안보 보좌진들이 우리 언론인들만큼 정보가 없거나 잘 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지금 볼턴과 폼페이오가 하노이 회담을 깼다고 떠드는 이들은 싱가포르 회담 몇 개월 전에 자신들이 썼던 글들을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상가포르 회담 전의 트럼프는 연일 북한을 죽일 듯이 으르렁 거렸다. 미국 의회와 민주당 지지 언론들은 트럼프가 전쟁을 일으킬까봐 염려된다는 요지의 지적을 매우 많이 했다. 이들은 전쟁을 예사로 생각하는 미친 트럼프라는 듯이 떠들었다. 사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싱가포르로 튀어나온 것 아닌가.

    헌데 싱가포르 회담 뒤 미국에서는 온통 트럼프가 김정은과 사랑에 빠질까봐 난리였다. 급기야 미국 의회는 트럼프 행정부가 임의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지 못하도록 움직였다. 트럼프로서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자신의 대북 강경 기조를 반대하던 이들이 스스로 강경 기조로 바뀌도록 만들었지 않나. 트럼프가 이렇게 할 것이고 그 결과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대로 대북 문제 경각심이 강화될 것이라고 예측한 미국 언론인도 제법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오직 반트럼프 언론보도만 인용하니까 그렇지.

    현재와 같은 시기 미국 대통령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북한과는 이른바 스몰딜을 할 수 없고 김정은이라는 대표자와 담판 짓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으며, 최소한 두 차례의 회담 정도는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을 때릴 수밖에 없다는 명분, 즉 러시아, 중국, 유럽 일부 국가 및 미국 내 공화당 반대자들도 달리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트럼프 아니라 누구라도 김정은과 일단 만나는 방식을 택하였을 것이다. 그런 명분이 북한을 고사 시키거나 항복 시킬 강력한 실질적 억제력이니까. 김정은을 만나야 하는 것은 북한이 사실상 1인 지배체제의 왕조 국가이므로 그와 만나지 않은 모든 협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김정은과 만나지 않고 북한을 때릴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더러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2차대전 후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일본을 풀어 준 것은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는 진영으로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왔다. 누구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요즘 미국이 일본과 가깝게 지내는 것도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중국이 북한을 비호하는 것은 결국 한미일 자유민주주의 국가 견제의 최선봉에 북한이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만 포기하면 일본 머리 위로 지나가는 미사일 실험을 하든 말든 내버려두는 그 따위 협상을 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 논객들은 이번 하노이 회담이 아베의 노력이 없었으면 트럼프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동결시키는 수준에서 타협했을 것이라는 그런 소리는 안 하는 게 그나마 모양새가 덜 부서지는 것이다.

    본문에서 조갑제 기자가 지적하였듯이 민주국가는 의회와 언론이 정권에 대하여 적절히 견제 역할을 한다. 그래 맞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트럼프로서는 애초부터 미국과 일본의 안보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선에서는 입맛대로 북한과 협상하기 힘들다는 걸 의미한다. 애초에 트럼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미국의 민주당과 이 당을 추종하는 언론들은 트럼프가 미국의 안보 이익에 위배되도록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떠들었던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좌파 언론들도 일제히 춤을 췄던 것이다. 북핵 문제에 있어 미국의 경우 언론과 민주당이 트럼프를 적절히 견제했다기보다는 트럼프 정권이 막강한 언론권력과 의회권력을 상대로 견제 역할 내지 방어를 잘 해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주 선진강국에는 국가적 안보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미국의 대통령이 되면 누구라도 최고의 정보를 받는다. 그런 양질의 정보를 받는 트럼프가 김정은 유리하도록 해줘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나는 처음부터 이 점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유리하게 해줄만한 이유로 노벨상을 노려서 그런 것이라고들 하던데, 그 부분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틈만 나면 오바마를 비판하면서 노벨평화상이란 것을 비꼬았기 때문이다. 내가 노벨상 수여위원이라도 그런 말 하는 트럼프에게는 상을 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 관련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도 속은 적 없고 문재인 정권도 모르는 문제가 없다. 그냥 각자의 처지와 셈법에 따라 큰 틀에서 가고 있을 뿐이다. 즉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든 말든 자기네 이념대로 북한이 좋아하는 대로 밀어붙이게 되어 있다. 원래 그런 속성을 지닌 집단이니까. 이는 상식 있는 시민들이라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기 전부터 알고 있던 부분이다.

    (4) 언론인이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넘어 대중을 한 방향으로 선동하거나 대중의 칭송을 너무 의식하면 안 된다. ‘내 말이 맞지? 내가 옳았지?’ 하면 뭐하는데. 쪼다 천 명의 칭송보다는 지혜로우나 침묵하는 시민 한 명의 기억 속에 덕이 있고 현명한 언론인으로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다. 건실한 언론인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지혜로운 시민 한 명에 의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국민은 정치 문제에 있어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트럼프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의 견제 이상이 되면 안 된다. 꼭 필요한 만큼 비판한다면 이는 자연히 견제의 성격이 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비판자의 예상과 다른 결론이 나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판이 적중해 제 역할을 하면 좋은 것이고 아니더라도 할 일을 한 것뿐이기에 손해는 없는 것이다.

    거부감에 기한 과도한 비난, 망하기를 바라는 수준의 악담을 늘어놓는 것은 보는 이에게 불안감과 피로감을 주고 본인에게도 나중에 또 다른 변명을 하게 만든다. 이 글도 좀 그래 보인다. 예측이 틀리면 그냥 넘어가면 된다. 대중은 그걸 쉽게 잊는다. 예측이 틀린 걸 만회하는 방법으로 또 다른 엉뚱한 논평을 하면 대중은 오히려 그런 허물들을 더 기억하게 된다. 스스로 작아져갈 필요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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