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지들이 틈틈이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 그걸 들추면 신작 시와 소설들이 수줍은 듯이 하얀 종이 위에 나타난다. 그걸 쓴 사람으로서는 시인이나 문인이라는 고결한 명칭이 부여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단편소설을 써서 문학지에 기고했다. 집으로 우송되어온 문학지를 보니까 문학계에서 원로로 이름이 나있는 평론가의 비평까지 실려 있었다. 작품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 얼마 후 한 여성 소설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 작품이 선발되어 그 원로에게 평가되기를 원했는데 나 때문에 그 기회를 놓쳤다는 원망이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본인한테서 들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그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젊어서 화장품 외판원을 하면서 세상을 구경하고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을 들고 소설가협회 회장을 찾아가 추천을 부탁했다. 그녀는 그렇게 소설가가 됐다. 마흔 살 쯤 되자 그녀는 자신이 벌어서 산 집을 팔고 조그만 오피스텔로 옮겼다. 그 차액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남은 여생을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녀는 매일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출근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도서관 옆 언덕에 있는 공원 잔디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는 게 자신의 낙이라고 했다. 문학계에서 이름이 나지 못하고 들꽃같이 살아도 진실한 문장 하나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 시절 박연구라는 분의 수필집을 읽은 적이 있다. 바위 사이에 숨어있는 앵초같이 평생 조용히 수필을 쓰다가 돌아가신 분이다. 그 분의 수필집이 서점 귀퉁이에서 먼지를 함빡 뒤집어쓰고 있는데 비해 인기여성 탤런트가 남자들과 섹스를 한 이야기를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 걸 보기도 했다.
수도자 같은 느낌이 드는 작가들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등신불을 쓴 김동리 씨는 문학계의 전설로 되어 있다. 그의 아들 김평우 변호사에게 아버지의 솔직한 문학인생에 대해 물어보았다. 유명한 다른 작가 한 사람은 인터뷰에서 어느 날 일어나 보니까 유명인이 되어 있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말은 잘 믿어지지 않았다. 김동리 씨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십대 말에 세계문학전집을 가지고 사천의 다솔사라는 절로 들어가 2년간 수도생활 하듯 방에서 그것만 읽었대. 그러니까 어느 순간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감이 오더라는 거지. 세계문학전집에서 본 글의 구조 속에 조선의 현실을 대입시키면 되겠구나 하는 거였대. 그렇게 해서 스물한 살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詩)가 당선되고 스물두 살 때 조선중앙일보에 소설 ‘화랑의 후예’가 당선됐지. 둘 다 일제 시대였어.”
그 시절 문인이라면 가난을 그림자처럼 끌고 사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아들인 김평우 변호사는 아버지의 가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시대 유명하던 시인 정지용 씨가 고기 한 근을 사들고 와서 어머니에게 건네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고기찌개가 안주로 나오지 않더래. 정지용 시인이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나와 부엌을 들여다 본 거야. 어머니가 그 고기를 보면서 가만히 있더래.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고기반찬을 먹은 지 하도 오래돼서 어떻게 요리하는지 모르겠다고 어머니가 대답하더라는 거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이 그랬어.”
외국 작가들도 순례길이 비슷한 것 같다. 헤밍웨이는 타고난 천재작가로 알려져 있고 사냥총을 든 부유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달랐던 것 같다. 그는 스물두 살 때부터 몇 년간 파리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궁핍하게 살았다. 빈민가에 살면서 점심을 먹지 못하고 공원에 가서 앉아 있기도 했다. 음식냄새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식당이 없는 골목길로 멀리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는 노트 한 권 연필 두 자루가 그 시절 필요한 것의 전부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옥탑방 창가에 서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하지 마, 넌 지금까지도 늘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쓸 거야. 네가 할 일은 오직 진실한 문장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써 봐.”
그는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고백하고 있다. 문학의 길을 가는 작가들한테서는 순교 같은 숭고한 향기가 풍긴다. 문학적 성취란 고독과 가난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버릴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혜인지도 모른다.
나도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꿈만 꾸며 세월의 강을 흘렀다. 노인이 된 지금 다른 사람들의 잘 쓴 글들을 보면서 절망한다. 문학적 재능은 역시 하늘에서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 쓰는 방법으로 습작보다 기도를 선택하기도 한다. 작은 수필 하나를 쓸 때도 기도한다. 능력 부족이지만 글 쓰는 행위 자체가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그분께 부탁드린다. 예술적 능력은 없지만 대신 진실한 마음이 담긴 한 문장이 나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