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가장 친했던 친구 하나는 인물이 두드러지게 좋았다. 키도 크고 운동 능력도 뛰어나서 육상 선수로 전국 소년체전에 시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부유한 집안 형편, 좋은 성격에 정의감도 강했고 공부도 잘했다. 싸움은 몇 개의 학교를 통틀어 가장 셌다.
친구에게는 누나 8명이 있었다. 3대 독자였던 아버지가 아들 하나 놓으려고 애쓰다가 딸 8명을 낳았다고 한다.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주말마다 만났고 방학 때도 늘 함께 했다. 그런 친구와 나에겐 남모르는 고통이 있었다. 둘 다 격정적인 기질이 있고 아픔의 무게도 비슷하여 가까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염세적인 면이 있었다. 중학교 때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생각에 빠졌다. 죽음이 별 것 아니라는 그런 생각.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무(無)이고 허상일 것이다. 너와 내 눈에 지금 보이는 것은 너와 내가 존재함으로 해서 보이는 허상일 수 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의식 없는 깊은 잠을 자듯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일 뿐일 것이다. 스님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결국 윤회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우주 속으로 흩어져 사라지게 해달라고 하는 것일 테다. 우리가 생물적 본능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뿐이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내 부모, 내 친구들이 슬퍼한다는 것도 내가 살아 있어 그렇게 인지하니까 드는 나만의 생각일 뿐이지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결국 온 우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위와 같은 식의 얘기를 우리는 중2, 중3 무렵에 수도 없이 했다. 그런데 마침 친구가 희귀병을 앓게 되었다. 개그맨 이동우가 걸렸다는 망막색소변소증이었다. 서서히 시력이 나빠져 결국 맹인이 되어 버리는 무서운 병이었다. 가뜩이나 친구와 나는 마음의 고통이 많았는데 그때 더욱 절망했다. 눈이 아직 보일 때 친구는 일반 고등학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맹(盲)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갑자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던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나에게 교련복까지 일일이 사주었다. 그런 사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며칠 후인가 친구가 내게 여러 번 연락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나는 친구의 연락을 제때 받지 못했다. 나도 방황할 때라 어디론가 잠시 여행 중이었다. 다녀오니 친구의 누나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친구가 죽었다고 했다. 자살이었다.
친구는 부모가 자살한 것을 알면 슬퍼할까봐 긴 여행을 가는 것처럼 하고선 신탄진 쪽 어느 국도 부근에서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몸을 완전히 태우면 누구인지 신원을 알 수 없을 테고 부모는 그냥 실종된 것으로 알 것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불타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달려와 불을 끄고 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주머니에서 장애인 수첩을 발견한 병원 측에서 친구 가족에게 연락했는데, 친구는 병원에서 나를 그렇게 찾았다고 한다.
그 뒷이야기는 이만 줄이고, 당시 나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늘 같이 죽자고 한 것에 영향을 받아 친구가 자살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같이 죽자고 해놓고 결국 삶의 애착 때문에 나는 버젓이 살아있으니 스스로 위선자, 비겁자라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쏟은 말들 때문에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나는 살인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잘생긴 아들 하나 놓으려고 딸 여덟을 나은 친구 엄마를 생각하면 정말 괴로웠다.
그렇게 친구를 보내고 10년이 넘도록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20대 중반이 되기도 전에 친구만큼 가깝던 이를 또 2명이나 잃었다. 한 선배는 사고로 죽었지만 한 여인은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떠났다. 그리고 훗날 나는 내 무릎 아래 하나를 앞세웠다. 나보다 아내가 죄 많은 사람이라는 소릴 들을까봐 입을 닫고 살았지만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원한을 사지 않으려고 굳게굳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나의 삶은 다툼의 연속이었고 정적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원치 않았지만 늘 분쟁이었고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삶의 투쟁 순간마다 최대한 공평하게, 원만하게 일을 끝내려 했다. 그러다보니 오해도 많이 샀다. 고집이 아닌데 고집 부린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뜬금없이 이런 얘길 꺼내는 것은 박근혜라는 인물이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집스럽고, 자기 중심적이고 권력욕에 차 있지만은 않았으리란 생각에서이다. 졸지에 혈육을 그렇게 흉하게 두 차례나 잃은 사람의 마음은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가늠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고통을 겪은 이들에겐 권력이나 재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헛되고 헛된 것일 뿐.
아마 박근혜라는 인물에게는 모든 일을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하겠다는 신앙 같은 신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가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늘 지나간 나날을 돌이킬 만한 일이 있어 잠시 상념에 잠겨 있다가 불쑥 써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