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일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을 놓고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사일이 맞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고 오늘 동아일보가 전했다. 한미 당국이 ‘발사체’라는 표현을 쓰며 평가를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민간 전문가들은 “한국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라는 냉정한 분석과 함께 더 강도 높은 추가 도발이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놨다는 것이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비확산국장은 6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1차 분석 결과 북한 발사체의 실제 비행거리는 220km, 사거리 450km라는 결과가 나왔다”며 “한국을 사정권에 둔 매우 위협적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발사가 이뤄진 직후 연기가 궤적을 그리는 위성사진을 CNN에 공개하고 “이런 정황들은 발사체가 단거리 탄도미사일임을 시사한다”고 분석한 전문가이다.
루이스 국장은 地對地 형태라는 사실만으로 공격용인지 방어용인지 말할 수 없다는 국가정보원 설명에 대해 “미 본토를 겨냥한 소련의 미사일(FF18)도 地對地였다”며 “射距離가 수 백 킬로에 달하는 단거리탄도미사일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설명은 비상식적(crazy)”이라고 비판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한 발의 미사일과 여러 발의 로켓탄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이 △신형 미사일을 실험해야 할 필요가 있고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대외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평택 기지에 도달하는 미사일 발사로 미국에 ‘미군을 공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등의 세 가지 목적으로 발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데이빗 쉬멀 제임스 마틴 비확산센터(CNS) 선임연구원과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의 조슈아 폴락 수석연구원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유도장치의 여부, 발사대의 형태 등 여러가지 정황을 볼 때 미사일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미 의회에서는 對北제재와 관련해 강경론이 재점화 되고 있다. 공화당 소속 팻 투미 상원의원은 트위터에서 “북한은 선의로 협상하고 있지 않으며 우리는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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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이 수년 전 발간한 회고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정신나갔다'라고 평가했다. 회고록 ‘임무(Duty)’에서 그는 2007년 11월 서울에서 盧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며, "나는 그가 반미적(anti-American)이고 아마도 약간 정신나갔다(a little bit crazy)고 결론내렸다"고 썼다. 게이츠는, 盧 전 대통령이 “아시아의 최대 안보위협은 미국과 일본”이라고 지적했다"고 공개했다. 李明博 전 대통령에 대해선 2010년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리라 대화)에서 만났다며, "나는 정말 그가 좋았다"고 했다. "정신력이 강하고, 현실적이고, 매우 친미(親美)적이었다"는 것이다. 2010년 11월 발생한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 게이츠는 “(한국측에서) 보복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원래 (한국의) 보복 계획은 군용기와 포화가 동원되는 등 과도하게 공격적(disproportionately aggressive)이었지만 미국과 중국이 각각 한국과 북한을 상대로 확전되지 않도록 개입했다”고 밝혔다.
부시 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사 라이스도 회고록에서 韓美정상회담을 통하여 관찰한 노무현의 행태를 “괴상한(bizarre)", “예측불능(unpredictable)"이란 단어를 사용, 혹평했다. 라이스도 李明博을 호평했다. 게이츠와 라이스는 그러나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김정일 앞에서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고, 北核 문제를 변호하고 다닌다고 말한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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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부 시절 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사 라이스는 작년에 나온 회고록 '최고의 명예'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을)읽기 힘든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때로는 반미(反美)성향을 보여주는 말들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서 “방한(訪韓) 때 노 대통령은 나에게 강의를 했는데, 남한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제외교 무대에선 설령 反美 성향을 갖고 있더라도 이를 숨기거나 외교적 언사로 포장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과 적(敵·북한)의 동맹국인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먼저 韓美동맹을 해체하고 중립(中立)을 선언해야 한다. 말도 되지 않는 균형자론 강의를 들어야 했던 학자 출신 라이스의 울분이 회고록에서 묻어 나온다.
그는 “다음 해엔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erratic nature)을 집약한 사건이 있었다”고 썼다. 미국인이 상대방에게 ‘erratic nature’라고 말한다면 주먹다짐이 일어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9월 호주 시드니 APEC 정상회담에 참석, 부시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기자들 앞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북관계를 정상화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해 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2005년 9월 19일의 6자회담 합의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기자회견에서 부시는 충실하게 그 말을 되풀이했다.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질문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부시 대통령께선 지금 한국전쟁 종전 선언을 언급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시 대통령, 그렇게 말했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盧 대통령의 참견에 다소 놀랐지만 앞의 설명을 반복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해야만 미국은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또 요구했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라이스는 “모두가 당혹했다”고 적었다. 충격을 받은 통역자가 통역을 멈추고 있으니, 노무현 대통령은 그녀를 보고 계속하라고 밀어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좀 퉁명스럽게 말했다.
“더 이상 분명하게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한국전쟁을 끝낼 것을 학수고대합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그의 핵무기를 없애야만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한국 측 통역이 끝나자마자 부시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인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생큐, 서!”라고 말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했다. 노무현은 웃으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감사했다. 라이스는 “그는 그 순간이 얼마나 괴상했는지(bizarre) 모르는 듯했다”고 썼다. 라이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예측불능 행태(unpredictable behavior)를 알고 난 이후엔 솔직히 말해서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게 되었다.”
그는 국무장관으로서 처음 2년간은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을 통하여 노무현 대통령을 ‘통역했다’(interpret)고 썼다. 노 대통령의 언동(言動)을 이해할 수가 없어 반 장관이 해설을 해 주었다는 뜻인 것 같다.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옮긴 뒤엔 송민순(宋旻淳) 장관을 상대했는데, “그는 능력이 있고, 폭 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비정통적인 생각에 反論을 제기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라이스는 그러나 “(사실은 한국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북한의 도발이 한국의 입장을 강경하게 만들었다. 對北제재에 대하여 韓美 간 균열의 여지가 없었다”는 취지의 설명을 덧붙였다. 김정일의 도발로 노무현 정권이 왼쪽으로 가려야 갈 수가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시드니 정상(頂上)회담은 노무현-김정일 회담(10월4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그때 노무현 정권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이란 이벤트를 만들려고 애썼다. 그해 12월 대선(大選)에서 이명박 후보를 꺾기 위한 카드였다는 의심도 샀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유리한 논평을 끌어내려고 무리를 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은 그해 10월 4일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10·4 선언에 합의하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남과 북은 현 정전(停戰)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미국은 ‘검증 가능한 핵 포기’ 이후에만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노무현 정권은 그 조건에 대한 언급 없이, 즉 핵 포기와 상관없이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오해를 줄 만한 합의를 해 준 것이다. 미국이 기존 입장을 견지, 종전선언 구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