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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기행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짜들이 판을 치는데 진짜 애국자는 여기에 있네” 문무대왕(회원)  |  2019-05-13

‘삼수회(三修會)’와 ‘상지회(尙志會)’ 회원 20여 명이 대구(大邱)와 경주(慶州)지역 인물기행(人物紀行)에 나섰다. 국가가 어려울 때 한 시대를 살다간 선각자(先覺者)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것이다. ‘빼앗긴 들에서 민족혼을 일깨운’ 시인(詩人) 이상화(李尙火·相和)의 고택(古宅), ‘일제치하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며 자주자강(自主自强) 정신을 실천한’ 서상돈(徐相燉)의 고택, ‘한국문단의 거봉’ 시인 박목월(朴木月·泳鍾)의 생가, ‘영화의 전설’ 신성일(申星一·강신영)의 유택(幽宅), 그리고 분단문학 소설가 김원일이 자라난 ‘마당깊은 집’ 등 역사에 남을 고택을 돌아보기로 했다.

대구시민들에겐 민족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의 선각자 서상돈의 고택은 하나의 자존심이요 자긍심으로 남아있었다. 위대한 민족시인 이상화가 마지막 숨을 거둔 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 84번지 고택이 2002년 재개발계획에 의해 철거위기에 놓였을 때 대구시민의 힘으로 지켜 내 2008년 8월12일 ‘상화고택’으로 개관됐다는 사실이 일행을 놀라게 했다. 개발만능주의에 맞서서 선각자의 고택을 지켜 낸 대구인(大邱人)들의 위대함에 모두 경의(敬意)를 보냈다.

“험난한 한국 근대사에서 준열한 자기비판과 불같은 저항정신으로 나라를 상실한 망국민(亡國民)들이 해야 할 책무가 무엇이며 지조와 참된 애국의 길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 줌으로써 이 땅에도 저항문학이 존재했음을 보여 준 실증인물”(홍보자료 인용), 이상화의 창작 산실(産室)을 지켜 내 후세에 교육현장으로 만들어 준 대구인들의 숭고한 정신에 감탄과 찬사를 보냈다.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J 교수는 일제치하 저항시인 세 명을 꼽는다면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인데 이상화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면서 저항문학의 백미(白眉)로 등장했다. 마지막 시(詩)가 된 ‘서러운 해조’의 집필현장이 잘 보존되고 있음은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했다.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며 자주자강 정신을 실천한 대구 출신 민족자산가 서상돈. 그의 고택에 새겨진 나라 사랑을 칭송하는 ‘국채보상가(國債保償歌)’를 읽으며 선각자 서상돈의 애국심에 고개 숙여 경배(敬拜)했다.

<애국심이어 애국심이어 / 대구서공 상돈 일세
일천 삼백만원 국채값자고 / 국채보상단연회 설립했다네
면실하는 마음 발양하니 / 대한 국민 분명하도다
지금 우리 국가 간난한데 / 누가 이런 열성 가질 건가
경상도 대구의 서공 등 / 사람마다 찬미하도다 … (하략)>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시인 이상화와 서상돈의 고택을 둘러 보고 돌아서는 일행들이 입을 모아 한 한마디는 “가짜들이 판을 치는데 진짜 애국자는 여기에 있네”였다.

대구 중구 계산동 일원에는 유명한 ‘약령시장’도 있고 ‘계산성당’ 등 가톨릭 관련 문화유산도 산재해 있었다. 또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많이 쓴 ‘김원일’이 어려운 청소년기를 힘겹게 헤쳐 나오며 자랐던 ‘마당 깊은 집’도 있었다. 한 지붕 밑에서 여섯 세대가 살아가며 겪어야 했던 부유한 위채 사람들과 곤궁한 아래채 사람들의 궁핍함 등 갈등과 상처의 시대 상황이 작품 속의 등장인물 ‘길남이’ 엄마의 입을 통해 묘사되고 있었다.

‘마당 깊은 집’으로 들어가는 담벼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길남아, 니가 크야 한다. 그래야 혼자 살아온 이 에미 과부의 설움을 풀 수가 있다.” 소설 ‘마당 깊은 집’ 길남 어머니>

일행을 태운 버스는 대구를 벗어나 어느새 경북 영천시 괴연동 630번지, 한 시대를 주름잡으며 영화의 전설이 된 신성일의 유택(幽宅)에 도착했다. ‘성일가(星一家) 가는 길’이란 안내판이 가르쳐 준 유택 입구는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시골길이었다. 모심기와 고추 모종을 옮겨심던 농부가 일손을 멈추고 친절하게 찾아가는 길을 알려 줬다. 대배우(大俳優)가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내려와 살았던 기와집이 덩그러니 솟아 있고 주인 따라 집을 지키던 백구(白狗) 두 마리가 옛정을 배신하지 않고 주인의 묘소를 지키고 있었다.

빨간 장미꽃으로 둘러싸인 봉분 없는 묘역의 ‘영화의 전설 신성일 여기에 잠들다’란 묘비명만이 화려했던 신성일의 일대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주인 없는 편지함에는 세월 잃은 영화 인생을 추모하며 어느 참배객이 육필로 써 놓고 간 가수 김정호의 노래 ‘나그네’의 한 구절 ‘머나먼 길 혼자 가는 나그네도 외롭구나’가 비에 젖은 채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수신인이 사라졌는데도 편지함에는 4월분 ‘상하수도 요금고지서’가 속절없이 갈 곳을 잃고 있었다.

석양의 비낀 노을을 안고 도착한 인물기행의 마지막은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시인 박목월 생가였다. 경주가 배출한 ‘한국문단의 거봉’ 박목월의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가 23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생가를 복원했다고 홍보자료는 소개했다. 박목월의 대표 시 ‘윤사월’의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가 생가 오른편 시야(視野) 저 멀리에 성큼 들어왔다. 목월(木月)은 이곳 생가에서 조지훈과 교우(交友)하며 ‘나그네’ 등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한반도 북쪽(평안도)에 소월(素月)이 있었다면 남쪽(경상도)에는 목월(木月)이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불후의 명작으로 남겼다고 J 교수는 해설했다. 시성(詩t聖)과 선각자(先覺者)를 찾아 나선 인물기행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하며 하루해가 저물었다.


삼성전자 뉴스룸
  • 지유의메아리 2019-05-15 오후 12:04:00
    문무대왕님 영남분이시네요 어쩜 경상도사람만 죽 열거하드니 내고향 평안도사람 소월님의 이야기로 구색 맞추시는가요 저는 오늘 동대문구에 사는데 모처럼 강남에 볼일이있어서 다녀오는데 옆에 앉은 노이이 78세라고해서 저는85세라고 말하고 이야기하든중 쌀값 이야기가 나와서 신문에보니 10년새 두배가뛰였다든데 내가볼땐 2년새에 두배반이나 뛰였드라 그 노인이 말하기를 신문이야 맨날 거짓말하지요 그래서 요지음엔 대통령께서도 알고하시는지 모르고 하시는지는 몰라도 거짓말을 많이하드라 했드니 이분이 하는말 대통령이야 거짓말 할 리가있나요 밑에 보좌관들이 거짓말하겠지요 이 말에 덧붙여서 하는말 참 가관입디다 거짓말이야 전두한 대통령이 많이했지요 나는 여기서 입문이 막히고 할말을 잊었다 그러면서 하는말 세상이 뒤집혀져야해요 하기에 벌서 많이 뒤집혀 졌지안았나요 했더니 더 뒤집혀져야 한다네요 그럼 공산국가 하자는겁니까 했더니 그건아니구요 하면서 말끝을 흐리데요 저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내렸어요 말하는 억양을보니 호남분이데요 문무대왕님 글 잘보았읍니다 저는 1935년 평북 용천에서 지주인 부친의 둘째아들로 태여나 1946년 신의주 노송동 해방 인민학교를 5년 졸업하고 이듬해 8월에 고향 산천 버리고 부모님과 우리 7남매 경의선타고 신의주에서 해주로와서 안내인의 도움으로 해주 앞바다에서 돗단배타고 새벽녁에 바다건너 경기도 청단군 팔악계라는 어촌으로 월남했어요 그리고 3년도않되여 정착도 하기전에 6,25 사변으로 부산으로 피난 아흡식구가 부산 서면에있는 적기 피난민수용소에서 장장5년간 살다가 서울에 다시올라와 지금 85세의세월을 보내고 있읍니다
  • 골든타임즈 2019-05-13 오후 12:01:00
    딴 여자와 눈이 맞아 조강지처를 배신하고, 딴 살림을 차리더니, 또 제 멋대로 기어 들어와선, 언제 그랬냐는듯, 온갖 잡소리를 지껄이며, 나라를 위해 일한다며 거품을 문다. 미치지 않고선 이러지 못한다. 배신자, 사기탄핵범, 이것들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한국당은 해산이 정답이다. 그들의 국회의원질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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