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주 크루즈 선 ‘로스타루미너스’호는 어느 새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파도가 넘실거리는 푸른 지중해로 들어섰다. 베네치아까지 이제 항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 배를 타고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다. 승객의 대부분은 유럽의 노인들이었다. 인생의 짙은 황혼을 맞이한 그들의 삶을 보는 기회였다. 그들은 젊은 날의 뜨거웠던 기억을 노년의 시간이 씻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저녁이면 신사복을 입고 댄스 플로어에서 한 스텝 한 스텝을 삶의 흔적으로 만들려고 하듯이 정성들여 바닥에 찍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바래고 고목 등걸같이 주름진 노인이 칵테일을 한 잔 옆에 놓고 무심히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청춘의 산맥을 넘고 장년의 강을 넘어 노년의 산기슭에 도달한 과거의 흔적이 나이테 같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사이에 낀 몇 쌍의 한국인 노인 부부를 보았다. 배의 3층 갑판쪽에 휠체어를 탄 칠십대쯤 되어 보이는 남편과 그 뒤에 서 있는 그의 부인을 보았다. 늙은 남편의 얼굴에는 우수와 고독의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그 부부는 남들의 접근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같은 한국인이라고 모이지 않았다. 보랏빛 노을인 고독한 노년의 산자락에서 각자 개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팔십대 부부와 잠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젊었을 때 저는 명동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운동을 참 많이 했어요. 남들이 미스터 코리아에 나가라고 할 정도로 몸이 좋았죠. 나이가 들면서 당뇨 증세가 나타나고 근육들이 다 빠져나갔어요. 서울에 더 이상 살 필요도 없어서 수지로 아파트를 옮겼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넉 달 동안 가는 세계 일주 크루즈선에 한번 올라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죽을 각오를 하고 떠난 거죠. 외국인들이 가득 찬 배에 타고 보니까 음식들이 짜고 달고 입에 맞지 않아요. 팔십이 넘은 병든 내가 이 안에서 감기만 걸려도 나는 죽을 위험이 많아요. 항구에 도착해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에 죽을 거니까요. 그 각오를 하고 여행을 떠났어요.”
모두들 절실한 사연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안 듣는 척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또다른 칠십대 부부가 있었다. 독특한 사람들이었다. 남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하고 같은 한국인들조차 멀리했다. 밥을 먹을 때도 따로 숨듯이 떨어져 앉았다. 어느 날 갑판에서 바짝 마르고 얼굴이 검은 남자와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철저한 보수 꼴통이예요. 나는 부자가 됐어요. 그런데 왜들 그렇게 부자를 미워하는지 모르겠어요. 예수를 믿어 보려고 해도 성경이라는 게 부자를 미워하라는 책 같더라구요.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이 나 이외의 신(神)을 섬기지 말라고 했어요. 얼마나 오만한 하나님입니까? 그런 종교를 왜 믿는지 모르겠어요. 처녀가 아이를 낳는 일이나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일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면 증명될 수도 있겠죠.”
그들 부부는 배움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 같기도 했다. 그들의 신앙은 육적(肉的)인 건강 하나인 것 같았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배 안을 끊임없이 돌고 또 도는 것 같았다. 한번은 배의 갑판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책을 가득 가지고 배에 타지 않았으면 무료할 뻔했어요. 저는 책을 워낙 많이 읽는 사람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저는 독서클럽에 가입해서 책을 읽어 왔어요. 그런데 말이죠, 톨스토이는 왜 그렇게 부자라는 데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거죠? 저는 그런 죄의식이 전혀 없어요. 내가 왜 죄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내면이 공허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 공허를 세계 일주 크루즈선을 타고 메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인간은 끝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한다. 왜 그럴까? 그 모두가 잃어버린 본향(本鄕)을 찾아 헤매는 건 아닐까. 나는 그곳은 지구가 아니라 하늘 저쪽에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지구를 돌면서도 인간 내면의 공허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6·25전쟁의 피난길 폐허 속에서 빨간 몸뚱이 하나로 세상에 던져졌다. 얼마 후가 될지 모르지만 빈 손으로 세상을 훌쩍 떠날 것이다. 노년의 산기슭에서 부자라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배를 타고 인도양을 건너오면서 다른 사람의 얼굴에 반사된 나의 허무한 인생을 돌이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