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서’라는 모토를 내건 서울올림픽 성공의 여파가 이듬해(1989년) 동유럽 공산권 붕괴의 한 촉진제가 되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확대시킨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한소(韓蘇), 한중(韓中) 수교로 이어져 북한의 배후를 차단하는 한편, 한국인의 활동반경을 범(汎)지구적으로 넓혔다. 김현희의 증언으로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불거졌다. 아직도 일북(日北) 수교가 되지 않는 이유이다. 일본의 북한노동당 공작기지인 조총련이 결정타를 맞았다. 이러한 긍정적 효과는 김현희를 생포하고 범행을 자백받아 유엔을 통하여 북한 정권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한미일(韓美日) 세 나라가 철석같이 공조(共助)한 덕분이다. 특히 한일(韓日) 공조가 인상적이다.
지금 북핵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공조하였더라면 벌써 북한을 비핵화(非核化)시켰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본 기자들은, 한국 외교부가 지난 3월 31일 공개한 약 1만 쪽 분량의 KAL858기 폭파사건 관련 외교문서를 분석하여 김현희 체포에 일본 정부, 특히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 직원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고 김현희를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조사하는 데도 일본 정부가 협조적이었음을 밝혀내어 지난 호에서 소개하였다. 이번엔 한미일 세 나라가 KAL858기 폭파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다루어 세계 앞에서 만행을 규탄할 수 있도록 협력한 막후 비화(祕話)를 소개한다.
레이건 대통령 일기에 등장한 김현희
최광수 전 외무부 장관. |
한국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1988년 1월 15일 수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 국가로 규정해 각종 제재를 가했다. 일본도 독자 대북(對北)제재를 단행했다. 이에 추가로 안보리 회의에서 대다수 국가가 북한의 테러행위를 규탄,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는 계기가 됐다. 64개국이 공식 규탄성명을 발표했고, 세인트 빈센트와 피지 두 나라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미국과 일본 등 8개국이 제재를 가했다. 김현희를 가짜로 모는 세력은 지금도 당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았으며, 한국의 주장을 지지한 국가는 미국밖에 없었다는 식의 거짓말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부 문서는 이들에게 매우 불리한 자료이다.
1988년 1월 14일 최광수(崔侊洙) 외무부 장관은 김경원(金瓊元) 주미(駐美)한국대사에게 전보를 보내 제임스 릴리 주한(駐韓)미국대사와의 면담 내용을 설명했다. 한국은 미국에 강력한 대북(對北) 조치를 요구했고, 미국은 수사 내용이 충격적이라며 협조를 약속했다. 관련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1. 14일 본직(本職)은 릴리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 KAL기 사건의 조사 결과를 15일 10시에 공표할 것이라고 통고하고 아래 사항을 알려주면서 미국 측의 적극 협조를 요청하였음.
가. 소위 자칭 마유미와 신이치는 고도로 훈련된 북한특공대이며 이들이 KAL858기를 폭파한 진범임을 마유미는 자백함.
나. 명일 발표 시에는 마유미도 동석할 것이며 아측으로서는 미국 등 우방국의 요청이 있을 시 미국 외교관 또는 수사기관과의 면회를 주선하겠음.
다. 국내 일각에서는 군사적 보복 주장도 없지 않으나 정부로서는 올림픽 행사, 남북관계의 장래 등을 고려하여 직접적인 실력 조치를 피하는 등 자제키로 함.
(중략)
마. 미국은 우방국으로서 국제테러리즘 방지라는 대의(大義)에서 아측의 외교적 제반 조치를 적극 지원해주기 바라며, 특히 15일 아측의 발표와 때를 맞추어 미 정부의 강력한 대북(對北) 규탄성명을 발표해주기 바람.
(중략)
2. 이상 본직의 설명에 대하여 릴리 대사는 충격과 이해를 표시하고 미국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다짐하였음. 다만 그는 발표 시기가 임박함에 비추어 그동안 국무성이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후 논평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인지는 자신이 없으나 최대의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하였음. (하략)〉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바쁜 중에도 일기를 꼬박꼬박 썼다. 한때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레이건 일기》 567페이지에는 안기부가 김현희를 세상에 드러낸 1988년 1월 14일 목요일에 쓴 일기가 소개돼 있다.
〈백악관 안보회의를 열었다. 한국의 스파이 이야기가 보고되었다. 바레인에서 잡힌 24세의 여성은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용의자인데 자신이 북한공작원이며 올해 열리는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자백을 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1988년 6월 28일에 쓴 일기에서도 서울올림픽을 언급하는 등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1988년 1월 14일 최광수(崔侊洙) 외무부 장관은 김경원(金瓊元) 주미(駐美)한국대사에게 전보를 보내 제임스 릴리 주한(駐韓)미국대사와의 면담 내용을 설명했다. 한국은 미국에 강력한 대북(對北) 조치를 요구했고, 미국은 수사 내용이 충격적이라며 협조를 약속했다. 관련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1. 14일 본직(本職)은 릴리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 KAL기 사건의 조사 결과를 15일 10시에 공표할 것이라고 통고하고 아래 사항을 알려주면서 미국 측의 적극 협조를 요청하였음.
가. 소위 자칭 마유미와 신이치는 고도로 훈련된 북한특공대이며 이들이 KAL858기를 폭파한 진범임을 마유미는 자백함.
나. 명일 발표 시에는 마유미도 동석할 것이며 아측으로서는 미국 등 우방국의 요청이 있을 시 미국 외교관 또는 수사기관과의 면회를 주선하겠음.
다. 국내 일각에서는 군사적 보복 주장도 없지 않으나 정부로서는 올림픽 행사, 남북관계의 장래 등을 고려하여 직접적인 실력 조치를 피하는 등 자제키로 함.
(중략)
마. 미국은 우방국으로서 국제테러리즘 방지라는 대의(大義)에서 아측의 외교적 제반 조치를 적극 지원해주기 바라며, 특히 15일 아측의 발표와 때를 맞추어 미 정부의 강력한 대북(對北) 규탄성명을 발표해주기 바람.
(중략)
2. 이상 본직의 설명에 대하여 릴리 대사는 충격과 이해를 표시하고 미국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다짐하였음. 다만 그는 발표 시기가 임박함에 비추어 그동안 국무성이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후 논평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인지는 자신이 없으나 최대의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하였음. (하략)〉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바쁜 중에도 일기를 꼬박꼬박 썼다. 한때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레이건 일기》 567페이지에는 안기부가 김현희를 세상에 드러낸 1988년 1월 14일 목요일에 쓴 일기가 소개돼 있다.
〈백악관 안보회의를 열었다. 한국의 스파이 이야기가 보고되었다. 바레인에서 잡힌 24세의 여성은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용의자인데 자신이 북한공작원이며 올해 열리는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자백을 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1988년 6월 28일에 쓴 일기에서도 서울올림픽을 언급하는 등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최광수 외무장관이 안보리 수사 결과 발표 하루 전인 1988년 1월 14일, 제임스 릴리 주한미국대사에게 사전 통보한 내용을 김경원 주미한국대사에게 전달하는 문서. |
美,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
김경원 전 주미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