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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日이 철석같이 공조, 유엔안보리에서 북한정권을 단죄하다! 30년만에 공개된 외교문서, 대한항공 폭파사건 막후의 외교血戰 비화(1) 趙甲濟/金永男  |  2019-05-20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858기 폭파사건(115명 사망, 대부분 귀국행의 중동 근로자)은, 북한 정권이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하여 저지른 것이었다. 그 파급효과 면에서 세계적인 사건이다. 범인 김현희(金賢姬)가 생포됨으로써 북한 정권의 소행임이 밝혀졌다. 미국과 일본 등 자유 진영이 북한 정권을 테러집단으로 규탄, 고립시키면서 서울올림픽은 공산국가들까지 참가하여 세계의 축복 속에서 열렸다.
 
  ‘벽을 넘어서’라는 모토를 내건 서울올림픽 성공의 여파가 이듬해(1989년) 동유럽 공산권 붕괴의 한 촉진제가 되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확대시킨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한소(韓蘇), 한중(韓中) 수교로 이어져 북한의 배후를 차단하는 한편, 한국인의 활동반경을 범(汎)지구적으로 넓혔다. 김현희의 증언으로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불거졌다. 아직도 일북(日北) 수교가 되지 않는 이유이다. 일본의 북한노동당 공작기지인 조총련이 결정타를 맞았다. 이러한 긍정적 효과는 김현희를 생포하고 범행을 자백받아 유엔을 통하여 북한 정권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한미일(韓美日) 세 나라가 철석같이 공조(共助)한 덕분이다. 특히 한일(韓日) 공조가 인상적이다.
 
  지금 북핵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공조하였더라면 벌써 북한을 비핵화(非核化)시켰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본 기자들은, 한국 외교부가 지난 3월 31일 공개한 약 1만 쪽 분량의 KAL858기 폭파사건 관련 외교문서를 분석하여 김현희 체포에 일본 정부, 특히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 직원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고 김현희를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조사하는 데도 일본 정부가 협조적이었음을 밝혀내어 지난 호에서 소개하였다. 이번엔 한미일 세 나라가 KAL858기 폭파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다루어 세계 앞에서 만행을 규탄할 수 있도록 협력한 막후 비화(祕話)를 소개한다.
 
 
  레이건 대통령 일기에 등장한 김현희
 
최광수 전 외무부 장관.
  한국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1988년 1월 15일 수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 국가로 규정해 각종 제재를 가했다. 일본도 독자 대북(對北)제재를 단행했다. 이에 추가로 안보리 회의에서 대다수 국가가 북한의 테러행위를 규탄,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는 계기가 됐다. 64개국이 공식 규탄성명을 발표했고, 세인트 빈센트와 피지 두 나라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미국과 일본 등 8개국이 제재를 가했다. 김현희를 가짜로 모는 세력은 지금도 당시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았으며, 한국의 주장을 지지한 국가는 미국밖에 없었다는 식의 거짓말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부 문서는 이들에게 매우 불리한 자료이다.
 
  1988년 1월 14일 최광수(崔侊洙) 외무부 장관은 김경원(金瓊元) 주미(駐美)한국대사에게 전보를 보내 제임스 릴리 주한(駐韓)미국대사와의 면담 내용을 설명했다. 한국은 미국에 강력한 대북(對北) 조치를 요구했고, 미국은 수사 내용이 충격적이라며 협조를 약속했다. 관련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1. 14일 본직(本職)은 릴리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 KAL기 사건의 조사 결과를 15일 10시에 공표할 것이라고 통고하고 아래 사항을 알려주면서 미국 측의 적극 협조를 요청하였음.
 
  가. 소위 자칭 마유미와 신이치는 고도로 훈련된 북한특공대이며 이들이 KAL858기를 폭파한 진범임을 마유미는 자백함.
 
  나. 명일 발표 시에는 마유미도 동석할 것이며 아측으로서는 미국 등 우방국의 요청이 있을 시 미국 외교관 또는 수사기관과의 면회를 주선하겠음.
 
  다. 국내 일각에서는 군사적 보복 주장도 없지 않으나 정부로서는 올림픽 행사, 남북관계의 장래 등을 고려하여 직접적인 실력 조치를 피하는 등 자제키로 함.
 
  (중략)
 
  마. 미국은 우방국으로서 국제테러리즘 방지라는 대의(大義)에서 아측의 외교적 제반 조치를 적극 지원해주기 바라며, 특히 15일 아측의 발표와 때를 맞추어 미 정부의 강력한 대북(對北) 규탄성명을 발표해주기 바람.
 
  (중략)
 
  2. 이상 본직의 설명에 대하여 릴리 대사는 충격과 이해를 표시하고 미국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다짐하였음. 다만 그는 발표 시기가 임박함에 비추어 그동안 국무성이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후 논평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인지는 자신이 없으나 최대의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하였음. (하략)〉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바쁜 중에도 일기를 꼬박꼬박 썼다. 한때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레이건 일기》 567페이지에는 안기부가 김현희를 세상에 드러낸 1988년 1월 14일 목요일에 쓴 일기가 소개돼 있다.
 
  〈백악관 안보회의를 열었다. 한국의 스파이 이야기가 보고되었다. 바레인에서 잡힌 24세의 여성은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용의자인데 자신이 북한공작원이며 올해 열리는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자백을 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1988년 6월 28일에 쓴 일기에서도 서울올림픽을 언급하는 등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최광수 외무장관이 안보리 수사 결과 발표 하루 전인 1988년 1월 14일, 제임스 릴리 주한미국대사에게 사전 통보한 내용을 김경원 주미한국대사에게 전달하는 문서.
 
  美,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
 
김경원 전 주미대사.
  1월 19일, 김경원 대사는 최광수 장관에게 미 국무부 한국 담당관들과 만나 들은 내용을 보고했다. 미국이 다음 날인 20일 북한을 테러국가로 공식 규정하는 등 제재에 나서겠다는 내용이었다.
 
  〈1. 당관(當館) 정 참사관과 송 서기관은 국무부 던롭 한국과장 및 무소멜리 북한 담당관 및 대(對)테러국 관계관과 각각 접촉, 대북(對北)응징 조치를 협의하고 미측이 조속 단호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재차 요청함.
 
  2. 이에 대해 던롭 과장은 금일 오전에 개최된 국무부 간부회의에서 슐츠 장관이 동건(同件)을 우선 과제로 취급,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하며, 이에 따라 관계 부서 간 협의를 긴급 진행하고 있으며, 명 1.20 국무부 정오 브리핑 시 강력한 대북규탄과 함께 아래와 같은 대북제재 등 포괄적 조치를 발표토록 준비 중이라고 설명함.
 
  가. 87.3 미측이 개정한 미-북한 외교관 접촉 지침을 1.20자로 철회함.
 
  나. 1.20부터 미국 개최 학술대회 참가를 위한 북한인 입국을 금지하고 기타 북한인의 미국 입국을 엄격히 제한함.
 
  다. 북한을 1.20자로 테러국가로 공식 규정함. (리비아, 시리아, 쿠바, 이란, 남예멘에 이어 6번째)
 
  라. 북한의 테러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세계 모든 반(反)테러 국가들이 이러한 규탄여론 조성에 동참하고 국제기구 등에서의 테러 응징에 협력할 것을 요청함.〉
 
  미국 측은 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뒤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북규탄 결의안을 추진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국은 “소련은 과거 포클랜드(Falkland) 전쟁 시 영국이 제안한 유엔 안보리 ‘알젠틴(아르헨티나)’ 규탄 결의안에 예상과는 달리 기권하는 등 거부권(veto) 사용을 자제한 사례도 있으므로 결의안 추진 시 내용을 국가 테러리즘 규탄에 역점을 둬 소련의 기권을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美, 韓에 안보리 제기 권유
 
  최광수 장관은 이때부터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고민 중 하나는 안보리 의제 채택을 위해서는 15개의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주미(駐美)대사에게 전보를 보내 미국이 의제(議題) 채택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은 한국에 도움이 될 조언은 계속하지만 미국이 너무 앞장서서 안보리 의제 채택을 도우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뉘앙스의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1월 28일 김경원 대사가 최 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1. 안보리 제기에 관한 본부 방침 결정을 2.5(금)까지 연기하였음을 금 1.28(목) 정 참사관이 국무부 고스넬 한국과장 대리에게 통보한바, 미측은 안보리 제기 여부 및 방식을 하루속히 결정해야 할 사항이며, 미국이 의장국이 되는 2월로 넘어가게 되면 동건이 한미 간 문제로 축소될 우려가 있음을 재차 강조하였음.
 
  2. 국무부 측은 또한 만약 한국 측이 동건을 안보리에 제기하지 않고 조용히(LOW-PROFILE) 넘어가게 되면 한국 측의 조사발표에 대한 자신감에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음.〉
 
  1월 29일 최 장관에게 보고된 전보에 따르면, 고스넬 국무부 한국과장 대리는 중국과 소련을 너무 압박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고스넬 과장은 “한국이 결의안 채택을 시도할 경우 중국과 소련은 올림픽 참석 발표로 북한 입장을 실추시킨 데 이어 결의안에 대해 지지(支持) 내지 기권할 경우 북한에 또 다른 일격을 가하게 된다는 곤란한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두 나라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중국과 소련이 원하는 북한의 테러행위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의 설명도 했다.
 
  미국은 얼마 후 유엔 안보리 회의 소집 등의 문제에 있어 한국을 적극적으로 돕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더욱 확실히 했다. 소련과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과 중동 문제 등 복잡한 현안들이 있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사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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