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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봉하마을 풍경(風景)-‘밟힘’과 ‘밟는 것’에 대하여 '(망월동의 전두환 기념비를) 밟으며 응징하는 것이 교육'이 된다면 '(노무현 묘역의 추모 보판을) 밟으며 추모하는 것도 교육'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문무대왕(회원)  |  2019-06-09
국내 최대의 습지(濕地) '우포늪'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봉하마을'도 돌아봤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알리는 이정표가 발길을 안내했다. 현충일. 하늘은 찌푸려 있었으나 초여름의 신록(新綠)은 싱그러웠다. 찾아 온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봉하마을은 어느새 추모와 관광이 혼재돼 있는 풍경이었다.
  
  서울 국립현충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느닷없이 역사갈등의 통합을 외치며 김일성 괴뢰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국군과 국민을 사지(死地)로 밀어붙이는데 동조한 변절자이자 6·25 전범(戰犯)인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추켜세웠다. 호국영령(護國英靈)과 국군, 국민들에게 염장지른 충격과 분노가 있었지만 봉하마을은 조용했다.
  
  주인 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私邸)인 현대식 건물과 함께 생가(生家)가 숲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생가는 슬레이트 지붕이 이엉으로 바뀌어 덮힌 본가와 아래채가 있었고 본가는 11평에 방 2개와 부엌, 아래채는 4.5평 부속가옥이었다. 진흙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초가(草家)로 단아하게 복원돼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덟 살까지 살았던 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墓域)도 성역의 단촐한 모습으로 꾸며지고 다듬어져 잘 관리되고 있었다. 묘비명(墓碑銘)이 눈길을 끌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생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語錄)이다. 제단(祭壇)에는 참배객이 헌화한 국화 몇송이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는 2009년 5월23일 새벽, 그날의 극단적 선택이란 충격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 방문객들도 말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추모의 글과 마음만 전해지는 인거유정(人去留情), 그대로였다, 사람은 가고 정(情)만 남은 인간사(人間事)의 덧없음이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한 것은 묘역에 깔아 놓은 추모보판(步板)이었다. 땅바닥에 깔아 놓은 수많은 보판에는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등 고인(故人)에 대한 칭송과 추도(追悼)의 마음이 실명(實名)의 글로 새겨져 있었다. 비에 젖고 밑창이 닳고 해진 신발에 밟히며 마모(磨耗)돼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고인을 추모하고 사랑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령을 괴롭히고 서글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노무현재단'과 '노무현의 사람들'은 고인에 대한 애도(哀悼)의 마음을 어째서 이렇게 소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의구심도 들었다.
  
  해마다 5월이면 모여들어 울고불고 슬퍼하던 사람들이 정작 추모의 글을 새긴 판각(板刻)은 땅바닥에 깔아 놓고 함부로 밟고 다니도록 왜 방치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발 밑바닥에 밟힐 때마다 아프다며 신음하는 고통의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듯 환청으로 들려 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시 前 미국 대통령도 밟고 지나갔고 문희상 국회의장과 정세균 전 의장, 이해찬을 비롯한 유시민과 수많은 국회의원, 장·차관, 정치인, 정치지망생들의 친노세력들도 '추모보판'를 밟으며 지나갔다.
  
  한명숙 전 총리가 태극기를 밟고 헌화조문하는 사진 한 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비 맞고 밟히는 '추모보판'이 아니라 비 맞지 않고 짓밟히지 않을 '추모의 벽'을 만들 생각은 들지 않았는가?
  
  현충원에 '현충 추모의 벽'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워싱턴 .D.C의 한국전 참전용사 묘역에 세우려 했던 '추모의 벽'을 문재인 정권이 중단했다가 다시 거론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특히 광주 망월동 묘역 입구에 묻혀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기념비'에 대해 '역사적 가치가 있으니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밟으며 응징하는 것도 교육'이라는 6월7일자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밟고 지나가는 의미'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했다.
  
  '밟으며 응징하는 것이 교육'이 된다면 '밟으며 추모하는 것도 교육'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해찬과 현 이사장 유시민의 생각은 어떤가? 해마다 찾아오는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忌日)을 맞아 검은색 조복(弔服)과 검은 넥타이 차림의 사람들이 발걸음도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며 '노무현 추모의 보판'을 밟고 지나다닌 사람들도 '밟으며 추모하는 것도 교육이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가?
  
  밟히는 것은 아프다. 짓밟히는 것은 더욱 아프다. 밟는 자는 갑(甲)이고 밟히는 자는 을(乙)이다. 밟는 자는 강자(强者)요, 밟히는 자는 약자(弱者)다. 살아 있는 자는 강자요, 죽은 자는 약자다. 살아 있는 권력은 강자요, 죽은 권력은 약자로 탄압받기 일쑤다. '밟힘'과 '밟는 것'에 대한 생각이 봉하마을을 떠나올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비에 젖으며 닳고 해진 신발 밑창에 밟히고 있는 그 아픔, 그 수모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밟고 지나가게 만든 자도 그들이요, 밟히며 몸부림치는 자들도 그들이다. 밟고 밟히며 공생하는 그들의 묘한 생존법칙은 위선과 가면의 탈이 아닐까.
  
  '노무현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전 대통령 노무현'을 책으로, 영화와 웹으로 ,전기(傳記)로, 어록(語錄)을 통해 역사 속의 인물로 다듬고 가꾸어 가고 있다. 숲속의 한 그루 살구나무에 열린 '노오란 살구'가 탐스런 모습으로 잘 가라며 '안녕'의 손짓을 해줬다.
  
  
  
  
삼성전자 뉴스룸
  • 뱀대가리 2019-06-14 오후 2:55:00
    뇌물 먹고 조사과정에서 자살한 사람을 영웅화 하는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다.
  • love 2019-06-10 오전 12:24:00
    '전두환 전 대통령 기념비'에 대해'밟으며 응징하는 것도 교육'이라면 '밟으며 추모하는 것 또한 교육'이니까, 노무현 추모보판도 구두발로 열심히 마르고 닳도록 짓 밟아주리라 ! 역사를 가지고 장난치는 네놈들 소원대로!
  • stargate 2019-06-09 오후 2:21:00
    추모를 받아야할 사람과 추모를 받지 않아야 할 사람이 뒤 바뀐 나라에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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