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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수직적 인간과 수평적 속물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입에서 하나님을 찾는 소리가 뜸했다. 만날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 얘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엄상익(변호사)  |  2019-06-13
이십여 년 전 그 칼바람이 불던 추운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목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자신이 보호하던 전과자가 없어져 여기저기 찾아봤더니 차에 치어 시립병원에 행려병자로 누워있더라는 것이다. 부러진 뼈에서 고름이 나오는데도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그를 데리고 나와 다른 병원에 입원시키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보고 그곳으로 와서 입원비나 치료비의 보증인이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짧은 겨울 해가 떨어지고 일찍 자려고 누웠을 때였다. 한 시간 가량 지하철을 타고 변두리에 있는 병원에 가서 보증인으로 서명날인을 하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환자 옆에 그 목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랫동안 입원해야 하고 치료비가 많이 나올 것 같았다. 그 비용은 내가 교통사고를 낸 상대방을 찾아 소송을 통해 받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누워있는 중환자에게 가방 속에 들어있던 위임장을 꺼내 서명하라고 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환자는 서명하는 걸 꺼렸다. 순간 불쾌했다. 이쪽의 성의를 의심으로 대하는 것이다. 서명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했더니 마지못해 서명하면서 손짓으로 나를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가 내 귀에다 대고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소송을 해서 돈이 나오면 저 목사가 돈을 먹을 수 있으니 직접 주세요.”
  
  그는 물에서 건져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속담 속의 인간보다 더 치졸한 인격이었다. 범죄로 감옥을 드나들다 보니까 세상에 대한 의심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자기가 남을 속이고 법을 어기고 사는 게 버릇이 되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병원을 나와 그 목사와 나는 얼어붙은 속을 녹이기 위해 근처의 허름한 곰탕집으로 들어가 탁자에 마주 앉았다.
  
  “겨울 밤 자지도 못하고 저런 인간을 위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몰라요. 이건 선행(善行)이나 사랑의 낭비 아닌가 모르겠어.”
  내가 그 목사에게 푸념을 했다. 그 목사는 잠시 뭔가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침묵했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변호사님은 그 사람을 보고 이 일을 하십니까? 저는 위에 있는 하나님을 보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그 한마디에 나의 마음은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 목사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분이었다. 어린 시절 폭력 전과도 있었다. 하나님은 배우지 못한 그를 선택해서 성자로 만든 것 같았다.
  
  세월이 흘렀다. 하나님이 가난하고 학력이 약했던 그를 들어올리신 것 같았다. 그는 커다란 건물 두 동(棟)으로 되어 있는 큰 교회를 만들었다. 한국과 미국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신앙간증을 하고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됐다. 텔레비전에도 나오면서 사회명사가 됐다. 국회의원 장관도 만나고 검사장들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정부로부터 거액의 지원금이 그가 운영하는 단체에 지급됐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입에서 하나님을 찾는 소리가 뜸했다. 그의 설교도 변했다. 자신이 겪은 귀중한 체험을 버리고 신학자들의 학설과 주장이 빈번하게 인용되는 것 같았다. 박사를 자랑하는 목사들의 현학적인 설교를 따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만날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 얘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돈이 없어 단체를 운영하기가 힘이 든다는 불평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엄 변호사의 믿음은 캘빈주의와 너무 떨어져 있어요.”
  
  그는 한 단 위에서 나의 믿음을 질타하고 있었다. 목사와 사회명사라는 지위에 묶여버린 것 같았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그의 믿음이 꺼지고 차디찬 껍데기 신학(神學)지식이 그 자리를 대신한 느낌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존경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는 단체에서 신발을 털고 나왔다.
  
  나는 그를 참된 신앙의 벗으로 생각했었다. 학연(學緣)이나 지연(地緣)보다 신앙의 벗이야말로 평생의 벗, 아니 영원의 벗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이 서로 달라진 지금 이미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이십여 년 전 순수한 그의 믿음을 좋아했다. 그의 믿음과 삶은 수직적이었다. 그는 위에 있는 하나님을 믿고 인간의 도움이 없어도 당당했다. 그는 주위의 핍박이나 열악한 환경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평면적 수평적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지원금을 받는 정부의 감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지침에 그 영혼이 묶여있는 것 같았다. 법 규정에 묶여 그는 더 이상 자유인이 아닌 것 같았다. 성경에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다. 똑똑하다고 자랑하는 어떤 신학자도 참된 내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말하고 있다. 그가 다시 믿음 깊은 성직자가 됐으면 좋겠다.
  
  
삼성전자 뉴스룸
  • 무학산 2019-06-13 오후 12:12:00
    그래서 선현들은 사람은 조금 부족한 듯이 살아야 한다고 목 아프게 가르쳤겠지요
    성경의 부자 청년 이야기를 곱씹게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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