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아베 때리기로 일관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과는 달리 요즘에 와서 보면 한일관계가 걱정된다면서 잘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와 논설을 싣곤 하는데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를 할 때가 종종 있는것 같다. 오늘 나온 임민혁 논설위원 칼럼만 해도 그렇다.
칼럼의 필자는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가 위안부와 징용공에 이은 또다른 한일관계의 뇌관이라고 했다. 뇌관은 잘못 건드리면 터지는 것으로, 이 문제는 자칫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갈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표현해놓고 정작 임 위원은 ‘두드리면 열린다’라는 주장을 폈다. 그의 글의 전체적 취지는 우리가 이미 정해진 일본해 명칭에 더 트집잡지 말고 한 발 물러서 한일관계 악화를 막자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트럼프가 ‘일본해’라고 발언했어도 그게 불변의 법칙은 아니니 계속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트럼프가 한국에 와서는 ‘동해’라고 말하게 만들자는 게 칼럼의 취지다.
이렇게 쓸 거면 조선일보는 그냥 한국과 일본은 단교하라는 사설을 쓸 것을 권한다. 칼럼은 또 ‘동해’ 표기가 병기 또는 단독표기되어야 하는 이유를 ‘국민 정서상’이라고 대고 있다. 그 국민 정서 탓에 한일관계가 파탄날 수 있음에 조선일보도 그간 우려가 많았으면서 국민 정서를 들먹이는가. 또 동해 표기의 당위성을 입증할 역사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외교력을 강조한다. 외교력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은 힘 세고 영향력 있는 놈이 맘대로 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한국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하는 논리가 되지 못한다. 일본해라는 명칭이 정립되는 데 별다른 불법적 요인이 없었는데 왜 그걸 한국이 힘으로 뒤집으려고 하는가.
글을 읽어보니 정부가 미국 언론사에 로비를 해서 동해 표기로 바꾸기 직전까지 갔음을 암시하는 내용도 있는데 쓸데없는 곳에 혈세 함부로 쓰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에서 한국의 주장을 관철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본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다. 위안부든 징용공 소송이든 한일관계에 있어서든 뭐든 다 그렇다. 정부는 일본을 설득할 생각은 않고 다른 나라들을 돌며 일본 때리기를 한다. 이번에 징용공 소송 중재위원회 설치도 안한다고 한다. 일본은 쓰러뜨려야 할 적이니 얘기하지 않겠다는 뜻처럼 읽힌다. 그래도 아직까지 한미일 안보협력을 말하는 일본은 태평양전쟁 치르고 나서 참을성 하나는 정말 잘 기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