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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수상과 한 최후의 인터뷰/ 2013년 3월2일 총리 관저 “일본은 한반도의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통일 지지” 趙甲濟  |  2020-08-28
⊙ “일본은 한반도의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통일 지지”
⊙ “미국의 핵우산 신뢰. 일본의 핵무장은 없다”
⊙ “미국과 일본은 독자적으로 對北금융 제재 강화”
⊙ “다케시마 문제 해결 위한 武力 사용은 있을 수 없다”
⊙ 식민지 및 침략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 “계승할 것”
⊙ “집단 자위권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가 가진 것”
⊙ “내가 극우적이라면 세계 국가들도 모두 極右국가”
⊙ “상호방문 늘어야 국민감정 해소”
⊙ “(외교문제 해결책으로) 政經분리, 武力불사용, 국민친선 원칙 찬성”
지난 3월 2일 아베 일본 총리(오른쪽)는 필자와 8년 만에 다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가 이뤄지기까지


한국 대선보다 사흘 빨랐던 작년 12월 16일 일본 총선에서 대승하여 3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은 일본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59세)는 일본을 무서운 속도로 바꿔놓고 있다. 총리 취임 후 석 달 동안 그는 국가개조(國家改造) 차원의 전면적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나라 분위기를 일신하였다. 침체되었던 경제가 활기를 되찾고, 소원하였던 미일(美日)관계는 정상화되고, 정치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그의 지지율은 70%를 넘는다. 지난 3월 초 도쿄에서 만난, 서울특파원을 지낸 한 일본 기자는 “일본인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지도자를 믿게 된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워낙 빨리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여론의 반응까지 좋으니 평소 비판적이던 아사히신문까지 순해졌다. 문제는 아베의 건강이다.”

아베 총리는 2007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1년 만에 그만둔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자가 정치인의 건강까지 걱정해 주다니!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탈(脫)디플레 전략은 일본은행에 의한 금융완화(통화량 공급 확대) 정책을 핵심으로 한 성장전략이다. 물가상승률이 2%가 될 때까지 공공투자 확대, 구조혁신, 임금인상 독려 등을 통하여 수출과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도 계속 하기로 했다. 아베가 집권하면 이런 정책을 펼 것이라고 예상한 시장의 반응으로 총선 전부터 주가(株價)가 오르고 엔화 가치는 떨어져 기업의 수익 구조가 개선되고 있다. 지난 2월 아베 총리는 워싱턴을 방문,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 민주당 정권 시절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틈이 벌어졌던 두 나라 동맹관계의 정상화를 확인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선언하였다.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분쟁에 미일(美日)동맹 강화로 대응하려고 한다. 미국도 여러 차례, 센카쿠 열도를 중국이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은 미일동맹의 작전 대상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두 개의 갓끈

아베 총리의 강경한 대중(對中) 자세와는 달리 대한(對韓) 자세는 박근혜(朴槿惠) 정부 출범을 계기로 ‘화해 모드’로 돌아서고 있다. 당선과 취임을 전후로 하여 두 전직 일본 총리(아소 및 후쿠다)가 박 대통령을 찾아와 만났고, 아베 총리도 박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교를 강조한다.

그는 기시 노부스케(외할아버지·총리 역임)-사토 에이사쿠(기시의 동생·姓이 서로 다른 것은 기시가 어릴 때 양자로 간 때문. 총리 역임)-아베 신타로(아버지·외상 역임)-아베 신조(아들)로 이어지는, 일본 보수정치의 본류를 대표하는 정치 명문가(名門家) 출신이다. 이 집안은 메이지유신의 주력이었던 조슈번(藩), 즉 지금의 야마구치 현 출신이다. 아베는 이 지역이 배출한 여덟 명째의 총리.

아베 총리는 과거엔 친한파(親韓派)로 분류되었던 정치인맥에 속한다. 기시는 퇴임한 뒤에도 일본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다. 그는 박정희(朴正熙)의 근대화 열정에 감동하여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을 막후에서 지원하였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그의 동생 사토 총리 시절에 성사되었다.

아베 총리도 자민당 간사장 및 고이즈미 내각의 관방장관 시절 북한 인권 문제를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함께 국제적으로 제기하고 대북(對北)제재를 강화하는 데 앞장서는 등 한국의 보수층에 우호적이었다. 일본의 보수는, 영토 및 역사 문제에선 일본 좌파보다 더 국가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작년 여름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독도방문 이후 한국의 일각에선 이들을 ‘극우’(極右)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 일본 전문가는 “국민들의 70% 지지를 받는 아베를 극우라고 하면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극좌라고 부르지 않을까? 더구나 아베는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 및 침략을 깊이 사죄하는 입장이지 않느냐”라고 했다.

아베 총리는 한일관계의 2중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북한정권 편을 드는 일본의 좌파는 과거 문제에선 한국 편이고, 한국의 자유민주 체제를 지원해 온 일본의 보수파는 독도와 역사 문제에선 강경하다(그래도 일본의 한국 통치를 변호하는 보수 정치인은 거의 없다). 작년 여름 이후엔 북한정권을 경계하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는 한일 두 나라의 보수파가 서로 공격적으로 변했다.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생전(生前)에 김일성의 전략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김일성은 한국을 양반이 쓴 갓에 비유하곤 했다. 갓을 양반의 머리에 묶어두고 있는 것은 두 개의 끈이다. 하나는 한미동맹, 다른 하나는 한일우호 관계. 두 갓끈을 잘라버리면 대한민국이란 갓은 바람에 날아갈 것이란 이야기였다. 한미-한일 이간질에 의한 한국 고립화가 가장 중요한 대남(對南)적화전략이다.”

아베 총리는 올해 여름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 양원의 다수 의석을 확보한 다음엔 헌법개정을 통하여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개명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명문화하는 이른바 ‘정상 국가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 정책이 성공하여 국민 지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2005년 아베 씨가 자민당 간사장 대리 시절일 때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해 《월간조선(月刊朝鮮)》 5월호에 전문이 실렸다.


“한국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총리 관저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아베 총리(오른쪽). 필자의 왼쪽은 통역을 맡은 니시오카 쓰토무 도쿄기독교대학 교수.
이런 인연도 있고 해서, 작년 가을 자민당 총재이던 그를 인터뷰하기로 하고 12월 초순으로 날짜도 잡았으나 그 사이 중의원 선거가 있어 인터뷰가 연기되었다가 지난 3월 2일 오전, 총리가 된 그를 도쿄 시내 총리 관저(청사의 일본식 표현-편집자 주)에서 만나게 되었다. 총리 취임 이후 한국 언론과 하는 최초의 인터뷰였다. 질문의 통역은 일본인 납치자 구출 운동의 지도자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교수(도쿄기독교대학)가 했고, 총리의 답변은 녹음하여 와서 번역하였다. 인터뷰는 한 시간 진행되었는데, 아베 총리의 발언은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이 정확하였다.

—우선 인터뷰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작년 12월에 인터뷰 날짜가 잡혔는데, 일본 중의원 선거일이 결정되는 바람에 연기되었습니다.

“지난번 인터뷰 신청 때는 자민당 총재였는데, 이번에는 일본 총리대신 자격으로 인터뷰하게 됐습니다. 이곳은 서재 겸 수상 집무실입니다. 수상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아마도 총리대신으로서는 저를 포함해 다른 총리 때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며칠 전 총리께선 국회 시정연설을 통하여 한국에 대하여 이런 요지의 언급을 하였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을 축하한다. 21세기에 걸맞은 미래지향적이고 중요한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해 협조한다”고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미래 관계에 관한 총리의 전체적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로 일한(日韓)관계는 지극히 중요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본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도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습니다. 즉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데 있어 일본과 한국, 그리고 미국 등 3개국이 연계해 나가는 것이 지극히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봐도 일한(日韓)이 긴밀히 연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한의 인적 교류도 연간 550만명에 달합니다. 경제관계에 있어서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됐습니다.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늘 염두에 두면서 장래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두 나라의 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한 것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국회에서는 보정예산(補正豫算)을 심의 중이었고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고 보고 있었습니다만, 심의를 중단하면서까지 아소 부총리 겸 재무대신을 취임 축하를 위해 파견했습니다.”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한 “武力 사용은 있을 수 없다”

—시정연설에서 총리께선 “힘에 의한 현상변경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호소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영토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무력(武力) 불사용의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보편적 가치에는 법의 지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바다는 자유로운 바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한 질서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을 각국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접적 표현으로 질문한다면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은 무력(武力)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다케시마에 관한 생각을, 나는 되풀이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는 무력을 통해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일절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이 그러한 수단을 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 제소한다는 방침은 유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분쟁지역화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문제에 냉정하게 평화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독 제소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 문제를 법에 따라 냉정하게,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해 나간다는 생각에 근거해 검토 준비를 진척시키고 있습니다. 이후 여러 정세를 종합적으로 감안·판단해서 적절히 대응해 가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어제 한국에서는 3·1절 행사가 있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미래의 한국과 일본 세대에게 역사 문제라는 짐을 넘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영토 문제 이외에 역사 인식에 관해서도 일본과 한국·중국 사이에는 이견(異見)이 있습니다.

“저는 한국인들에게 필설(筆舌)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런 과거를 안게 만든 것 등, 그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대단히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 인식의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면, 정치 문제화, 외교 문제화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정치가들은 미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무라야마(村山) 담화는 계승하고, 고노(河野) 담화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후 개정하겠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압니다.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태도에 불만이 많은 한국인들은 고노 담화가 무리하게 수정된다면 명성황후 시해, 간토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등 본격적인 역사논쟁을 벌이려 할 터인데, 관계 악화가 걱정됩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고통스런 과거를 안게 된 분들에 대해 지금까지의 총리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생각입니다. 대단히 마음이 아픕니다만, 이 문제에 대해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역시 이것도 역사의 문제입니다. 전문가나 역사가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선상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전문가나 역사가의 말을 관방장관이 먼저 들어보는 걸로 하고 있습니다.”


“戰後 70주년 담화도 생각 중”

—무라야마 담화는 과거에 대하여 일본이 총론적으로 사과한 것이고, 고노 담화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과인데, 만약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면 한국인들은 ‘총론 사과-각론 변명’이라고 생각하여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말하면, 전후 50년을 기해 내놓은 담화입니다. 또 전후 60년에는 고이즈미(小泉) 총리가 담화를 내놓았습니다. 고노 담화는 이른바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고방식을 당시 관방장관이 진술한 것입니다. 이에 기초해 지난 6년 전 아베 정권 시기에 각의결정(閣議決定)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러한 것도 염두에 두면서, 금후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전문가나 역사가의 의견을 듣자는 것입니다. 어쨌든 간에 우리는 이것을 외교 문제나 정치 문제로 삼는 것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총리께선 2015년에 맞게 되는 전후 70주년 담화를 준비하고 계십니까?

“전후 70년이 되어서는 70년째의 담화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담화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제가 담화를 내놓을 기회가 된다면 숙고해서 작성하려 합니다.”

—북한정권에 의한 일본인 납치자 문제의 해결은 일북(日北) 수교의 전제 조건입니까?

“납치 문제의 해결, 다시 말해 납치 피해자의 귀환, 귀국, 그리고 납치 문제에 관한 진상 규명, 실행범의 인도 등, 이러한 것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일본과 북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국교정상화는 없습니다.”

—실행범(實行犯)의 인도까지 요구하는 것입니까?

“그래야 납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을 납북한 범인으로서 한국에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김대중 정부 시절 북송된 신광수(辛光洙)도 인도 대상입니까?

“신광수는 당연히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미 그를 특정(特定)하고 있습니다.”

※ 무라야마 담화=1995년 8월 15일 전후 50주년 기념일에 당시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내각 총리대신이 내각회의의 결정에 근거, 일본이 태평양 전쟁과 전쟁 이전에 행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이다. 아베 신조 현 총리는 제1차 총리 재임 시절이던 2006년 10월 5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하여, “아시아의 나라들에 대해 큰 피해를 주고 상처를 준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면서 “나라로서 표명한 그대로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정부로서든 개인으로서든 계승해 간다고 밝혔다.

※ 고이즈미 담화=2005년 8월 15일 전후 60주년 기념일에 당시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총리대신이 각료회의 결정을 통해 발표한 담화문으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담화에서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표명함과 동시에 지난 전쟁에 있어서 내외 모든 희생자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아시아 국가들과의 상호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고노 담화=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이다. 당시 고노 관방장관은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 요청에 의해 설영(設營)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면서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표명했다.

“일본의 핵무기 보유는 없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핵(核)미사일 실전(實戰)배치가 임박하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한국에선 미국이 1991년에 철수한 전술핵 재배치 및 공동사용권 보장, 미사일 방어망 구축, 선제 타격론, 자위적 핵무장 등 다양한 대응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핵우산 보장을 믿을 수 없다는 의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당방위적 핵무장론에 대하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일본은 자체 핵무장 없이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방어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일본은 아시는 것처럼 NPT(핵비확산조약)조약을 비준한 나라입니다. 체약국(締約國)으로서 비(非)핵무기국으로서 핵무기의 수령 혹은 제조 등을 하지 않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기 때문에, NPT 체제하에서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일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기초해 북한에 대해 억지력을 발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미・한(日美韓)이 확실히 제휴를 해서 북한의 핵무장 시도를 포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착실히 정비해 나가려 합니다. 일미동맹 관계의 유대를 강화해 나감으로써 억지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미(日美)관계, 또는 한미(韓美)관계가 강화되는 것, 그 위에 안전보장 부문에 있어서도 일한(日韓)관계가 강화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망의 일환으로 엑스 밴드 레이더를 교토부의 단고(丹後)반도에 배치한다고 하는데, 이는 북한의 미사일을 막기 위한 조치인가요?

“현재 배치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당연히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강화시켜 가려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을 포함시켜서입니다.”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방어에 있어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선 중요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은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도 된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일미(日美) 안보조약의 대상 및 공동대처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의 보복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의미는 현재 일미관계는 매우 강고하며, 북한의 핵실험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전화 회담에서 핵우산 문제에 대해 일본 국민들에게 안심하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미국은, ‘확대억지’(擴大抑止·일본이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으로 일본을 지킨다는 약속・미국은 대한(對韓)방위공약에도 같은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편집자 주)와 관련해서도 그것은 부동(不動)한 것이라고 늘 말하고 있습니다. 억지력을 효과적으로 만들려면 탄도미사일 방어(BMD)를 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한반도 통일 지지”

2006년 10월 9일 방한한 아베 당시 일본 총리 부부가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對北)제재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유엔 안보리의 제재와는 별도로 두 나라가 독자적 대북 압박 정책을 펴기로 합의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제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지금은 사무적인 사안들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UN결의를 따르는 것도 필요하지만, UN결의와는 별도로 이미 일본의 독자제재를 결정했습니다만, 일미(日美)가 협력해 제재를 실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과거에는 방코델타아시아(BDA)의 계좌를 동결했었습니다. 그때도 일미가 협력을 하고, 일본도 다른 국가들에 협력을 호소했습니다. 이러한 금융제재를 포함하는 추가적 제재를 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한도 당시 제재로 인해 데미지(damage)를 받았기 때문에, 대비는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이런 부분을 감안해 북한이 ‘지금의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정도의 제재를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제재가 효과가 있으려면 북한 지배층의 해외 계좌를 개인별로 동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도 특정 개인 계좌에 대한 제재는 실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개인, 단체를 더 추가하게 될 것입니다만 이러한 것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행해 나가면서, 일・미・한이 협력해 실태를 정밀히 조사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를 서로 교환해서 효과적인 제재를 생각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북한이 저지른 핵개발, 강제수용소 등 인권탄압과 납치 등 국제범죄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려면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통일을 통하여 북한정권을 소멸시키는 길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 자유통일에 대한 총리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북한에선 정말로 인권이 탄압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어 민주적이며 자유롭고,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통일국가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수많은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유지할 수 없고, 인권이 현저히 침해받고 있는 북한의 상황에 대해 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極右라면 세계 나라 모두가 극우”

—한국의 언론은 대체로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일부 언론은 현 일본정권을 극우라고 표현하기까지 하는데,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도 이기면 자위대 명칭 변경 및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한 개헌을 시도할 생각입니까?

“저의 정책 자체가 극우적이라고 종종 한국의 매스컴으로부터 비판받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정권에서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킨 것, 그리고 지금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된 해석의 검토를 시작한 것, 또한 자민당이 헌법을 개정한 후 자위대의 명칭을 국방군으로 바꾸기로 결정을 한 것들에 지적을 받았습니다.

과거 서울대학교에서 소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제가 방위청을 성(省)으로 승격시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함으로써 일본을 극우적인 군국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까? 한국의 방위를 담당한 정부기관은 다른 부처보다 격이 낮은 기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도 채택하고 있거나 그렇게 하려고 하는, 안전보장 체제와 비슷하게 되려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명칭에 있어서도 한국도 군대입니다. 저의 주장이 극우적이라면 세계 국가들 모두 극우국가가 됩니다.”

—한자(漢字)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동북아의 한·중·일 세 나라는 외교적 갈등과는 별개로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항구적 공존공영(共存共榮)을 위하여 국가 간 문제해결 방식에서 정경(政經)분리 원칙이라든지, 군사적 해결방식의 배제 등 최소한의 안전판을 만들 필요는 없을까요?

“군사적 선택지(選擇肢)를 배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동의함으로써 3개국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의 안정감이 보다 향상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국경을 접하거나 하면 여러 가지 과제, 혹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압력을 가한다든지, 경제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그것을 발동시킨 국가 자체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므로 서로 삼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중국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에 투자해 또는 수출해 큰 이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중국도 일본의 투자로 고용을 확보하고 있으며, 일본만이 만들 수 있는 반제품을 수입, 가공해서 수출함으로써 큰 이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서로 훼손하는 것은 양국에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실을 서로 이해하는 것은, 중한(中韓)관계에 있어서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응을 지도자가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호방문 늘어야 국민감정 해소”

—저는 기본적으로 한자문화를 공유하는 한·일·중,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는 역사 문제, 영토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나 미래를 위해 협조함으로써 영토 문제, 역사 문제의 갈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경분리, 무력사용 배제, 국민친선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나 자신도 기본적으로 전(前) 편집장의 생각에 찬성합니다. 우선 군사적인 선택지를 배제해야 합니다. 경제는 서로 필요한 관계입니다. 일・중・한이 경제관계를 강화해 나가는 것은 각국의 국익 증진에 서로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과제가 발생해도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냉정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또한 일한(日韓) 사이에서도 지금 문화교류가 활발합니다. 오늘 텔레비전을 보면 아시게 될 텐데, 한국 드라마가 많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K-pop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것에서부터 서로에 대한 이해가 진행되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의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시아의 청년들을 일본에 초청하는 ‘제네시스 2.0’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제네시스 2.0’ 계획에 따라 한국에서도 4000명의 젊은이들을 일본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문화의 교류, 사람의 교류, 젊은이의 교류를 더욱더 활발하게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지난해 8월 이후 한일 정부 간 갈등이 과거와는 달리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반감으로 악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엔저(低)의 영향도 있겠지만 최근에는 한국에 입국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습니다. 두 나라의 정치 지도층이 책임지고 이러한 국민 감정의 악화를 막을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장의 상세한 수치까지는 아직 알고 있지 않습니다만, 작년엔 351만명의 일본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전년 대비 7% 증가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왕래가 늘어나면 양국관계도 안정되고, 이해도 늘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스컴 등으로부터 얻는 정보만으로 상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대방 국가를 방문해 그 나라의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판단을 통해 인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 한국의 반일적(反日的) 분위기, 또는 일본의 반한적(反韓的) 분위기가 해소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가도록 저 자신도 노력해 나갈 겁니다.”


“사소한 발언이 외교 악화시킬 수 있어 나도 주의”

—작년 한일관계 악화의 계기가 된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천황(天皇) 관련 발언은 사실관계가 잘못 알려진 면이 있습니다. 이(李) 대통령의 그 발언은 준비되거나 계획된 발언이 아니었습니다. 교사들 모임에서 예정에 없던 질문을 받고 한 이야기였습니다. 언론의 제1보는 발언 내용을 잘못 전달한 일종의 오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정치인들이 과민, 과잉 반응을 하여 사태가 악화된 면이 있습니다.

“귀하도 매스컴의 일원이십니다만, 어떻든 언론은 계획되지 않은, 준비되지 않은 발언을 끌어내려 합니다. 외교에선 그러한 사소한 것이 계기가 되어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도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과는 서울시장 시절부터 몇 번 만난 적도 있어 기본적으로는 사람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일본에 와 보니 분위기가 많이 변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기 부양책 덕분인지 경제가 살아나고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아베 총리의 지지율도 높아졌습니다. 궁금한 건 금융완화, 즉 통화량 팽창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인위적 부양책이 단기적인 것인지, 장기적으로 견지할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10년 이상 디플레이션(물가안정, 금리안정, 소비둔화 등)을 겪으면서 불황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금융정책에 대하여 설명드리면 물가상승률 2%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시키기 위해 일본은행은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기동적인 ‘재정 출동’(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과감한 공공투자)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여러 번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번의 ‘보정예산’은 상당한 대규모이지만, 우선은 디플레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모든 정책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도 아직 디플레 중이므로 바깥에서 보면 큰 변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루빨리 경제를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올리고 싶습니다. 성장전략을 추진하면서 규제완화도 하고 혁신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을, 해외투자가와 비즈니스맨들에겐 가장 일하기 쉬운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의 비즈니스맨이나 기업에 있어서도 일본이 투자선(投資先)이나 기업활동을 하기 쉬운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다.”


“朴 대통령과 신뢰관계 구축, 새로운 시대 만들고 싶다”

1971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기시 노부스케(가운데) 전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기시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다.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부탁합니다.

“나의 지역구는 조선통신사가 처음 상륙한 시모노세키로서, 조선통신사의 비(碑)를 세울 때 이곳 출신 정치인으로서 참석했습니다. 한국에선 김종필(金鍾泌)씨가 참석, 훌륭한 휘호를 남겼습니다.

시모노세키는 부산과 자매도시로서 매년 ‘부산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나는 지역구 출신 정치인이므로 늘 맨 처음 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일본에서 한글 표기가 가장 많은 도시인데, 모든 표지판에 한글이 병기(倂記)되어 있습니다. 그런 곳이 저의 지역구입니다.

역시 지금부터 일본도 한국이 필요하고, 한국도 일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주면 합니다. 지금부터 더욱 일한(日韓)관계를 발전시키려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나는 정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대단한 고난을 극복해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싶습니다.”

—저는 박정희 전기를 썼는데,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박 의장이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1961년 11월에 만나 인연을 맺었고,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피살되어 국장(國葬)이 치러졌을 때 일본 측 조문단장으로 오셨더군요. 총리께선 2006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유세 중 피습되어 입원하였을 때는 사람을 보내 위로의 뜻을 전했습니다. 양국을 대표하는 정치 집안 출신으로서 미래의 한일관계를 잘 이끌어주셨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모가 암살되고 본인도 습격을 받아 얼굴에 상처를 입었는데 그런 어려움을 겪고도 고난을 극복한 분입니다.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관방장관 시절엔 함께 식사를 한 적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과 신뢰관계를 구축하여 일한(日韓)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安在鴻 연설
 
기자는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끝날 때 준비한 마지막 질문 아닌, 연설 하나를 일본 총리에게 소개했다. 약간의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
 
1984년 여름 나는 도쿄 부근 가와사키역에서 모리타 요시오씨(森田芳夫)를 만났다. 당시 72세의 이 노인은 서울의 한 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로 있었다. 여름방학을 틈타 고향에 돌아와 있었다. 그가 우방협회(일제 시절 한국 거주 일본인들 모임)의 지원을 받아 쓴 ‘조선終戰의 기록’(1964년 출판)은 1038쪽에 달하는 大作이다. 한국에 살던 일본인들이 1945년 패전 뒤 철수할 때까지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뺄 수 없는 자료로 현대사 연구에 古典이 돼 있다.
 
모리타 씨는 군산에서 났다. 合倂(합병) 전에 벌써 한국에 건너왔던 아버지는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京城帝大(경성제대)를 나왔으며 그의 아내도 한국에서 난 일본인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 거류민 단체에서 실무를 보다가 귀환, 일본 외무성에 들어가 패전 뒤의 철수관계 조사원으로 일했다. 1965년의 韓日국교 정상화 1년 전부터 駐韓(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하기 시작, 1975년에 참사관으로 퇴직할 때까지 줄곧 한국 생활을 했다. 퇴직 뒤 바로 서울의 한 대학교 일본학과 교수가 되었으니 그의 한국 생활기간은 일본 생활의 세 배나 된다.
 
“책을 쓰면서 저의 생각도 많이 정리되었습니다. 역시 힘에 의한 지배는 좋지 않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억지로 합쳐졌지만 헤어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본의 가장 큰 책임은 한반도의 분단입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게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만, 항복을 결정한 御前(어전)회의가 8월9일이 아니라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진 8월6일에 열렸다면 소련은 참전의 시기를 놓치고 38선도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8월9일 御前회의에서 決死抗戰(결사항전)의 주장이 이겼다면 소련 기갑부대는 부산까지 남하했을 것이고, 미군은 인명손실을 막으려고 상륙을 포기, 한반도는 赤化(적화)되었을 것입니다.”
 
모리타 씨는 이것만은 꼭 기사에 써달라면서 설명했다.
 
“책을 쓰면서 제가 감격에 못이겨 눈물을 흘린 자료가 있습니다. 8월15일 오후 3시 경성방송국을 통해 安在鴻 선생(建準 부위원장)이 한 연설 대목입니다.”
 
나는 아베 총리에게 “끝으로 역사적 연설을 하나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한국에 살던 일본인들이 이 연설 덕분에 많은 생명을 구하였다고 고마워합니다”면서 모리타 씨로부터 들은 연설 내용을 읽어주었다.

 ‘(끝으로 국민 여러분께서는 각별히 유의하여 일본 거주민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40년간의 총독 통치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조선·일본 양 민족의 정치 형태가 어떻게 변천하더라도 두 나라 국민은 같은 아시아 민족으로서 엮이어 있는 국제 조건 아래서 自主·互讓(자주 호양)으로 각자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일본에 있는 500만의 조선동포가 일본에서 꼭 같이 수난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조선에 있는 백 수십 만 일본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총명한 국민 여러분께서는 잘 이해해 주실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아베 총리는 경청하더니 “아주 훌륭한 연설입니다”고 말하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도쿄 방송 인터뷰 팀이 장비를 갖고 들어오고 있었다.
 
박근혜-아베 통화

지난 3월6일 아베 총리는 朴槿惠 대통령과 최초의 전화 통화를 가졌다. 총리는 '일본과 한국을, 21세기에 어울리는 미래지향의 관계로 발전시켜야 하므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은 '韓日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파트너이므로 역사문제가 다음 세대에 짐이 되지 않도록 미래지향의 관계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두 사람은 또 北核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로 합의하였다. 지난 3월8일 새벽 아베 총리는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번 제재가 유엔헌장 7조에 근거한 구속력 있는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北核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도 똑 같은 위협이므로 韓美日(한미일) 세 나라가 연대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날 일본 방위청은 미군이 추가 배치하기로 한 미사일 탐지 엑스 밴드 레이더의 설치 장소를 동해에 면한 단고(丹後)반도로 결정, 미국에 통보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北核(북핵) 대비 安保(안보)협력’이 영토 및 역사관의 차이를 어느 정도 희석시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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