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은 어디에 있나?
淸태종의 편지
1637년 음력 1월2일 淸(청)의 태종이 포위당한 남한산성 내 조선왕 仁祖(인조)에게 보낸 편지는 그 내용이 직설적이고 당당하다.
<짐의 나라 안팎의 여러 왕들과 신하들이 짐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다는 말을 듣고, 네가 이런 말을 우리나라 군신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저 황제를 칭함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우면 匹夫(필부)라도 天子(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방자하고 망령된 것이다.
이제 짐이 大軍(대군)을 이끌고 와서 너희 八道(팔도)를 소탕할 것인데, 너희가 아버지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너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두고볼 것이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모된 자가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들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니, 억조중생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네가 할 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분명하게 고하라. 崇德(숭덕) 2년 정월2일>
조선조 엘리트의 수준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폐부를 찌른다. 明의 배경만 믿고 나를 황제라 부르지 못하겠다고 도발했으니 그 明의 구원병으로 나를 막아보라. 만약 明軍이 오지 않으면 너는 오만과 誤判으로 백성들을 파멸로 이끌고 들어간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충 그런 뜻이다. 청태종의 이 직격탄은, 황제 호칭을 거부하여 참혹한 겨울 전쟁을 부른 仁祖와 그 신하, 특히 명분론의 인질이 된 척화파의 무능한 국방태세에 대한 조롱이다.
상황을 전쟁으로 몰고간 척화파 사대부들은 淸에 반대함으로써 자신의 지조를 높이는 데만 신경을 썼지 그런 외교가 전쟁을 불러 국가와 백성들을 파멸로 몰고갈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눈을 감았고 전쟁을 불러놓고는 전쟁 준비에도 반대했다. 구제불능의 이런 신하들은 패전한 뒤에도 존경을 받았고 애써 淸과 협상하려 했던 주화파 최명길 등은 대대로 욕을 먹었다. 이런 조선조는 병자호란 때 망했어야 했다.
1637년 음력 1월29일 남한산성에서 농성중이던 인조는 주화파 최명길을 淸軍 진영으로 보냈다. 최명길은 淸에 대한 강경론으로 병자호란을 부른 책임이 있는 오달제 윤집을 데리고 갔다. 청태종은 두 사람에게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두 나라 사이의 盟約(맹약)을 깨뜨리게 했느냐"고 물었다.
오달제가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300년 동안 명나라를 섬겨왔소. 명 나라가 있다는 것만 알 뿐 청나라가 있다는 것은 모르오. 청국이 황제를 참칭하고 사신을 보내왔으니 諫官(간관)의 몸으로 어찌 화친을 배척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라고 했다. 윤집은 "우리나라가 天朝(명나라)를 섬겨온 지 이미 300년이나 되어 의리는 임금과 신하요, 정은 아버지와 아들이오. 더 할 말이 없으니 속히 나를 죽여주시오"라고 말했다.
두 충신의 말은 기개가 있으나 답답하기 그지 없다. 漢族(한족) 나라 明에 대한 충성과 일편단심만 보일 뿐 자신들이 불러들인 전쟁으로 죽어나가고 있던 백성들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망해가는 明에 대한 일편단심은 在野(재야) 선비가 해야 할 일이지 在朝(재조)의 관리가 할 일은 아니었다. 국제정세에 대한 無知(무지), 외교와 군사에 대한 無知, 백성들에 대한 무관심만 보여주는 조선조 엘리트의 수준이다.
현실이 명분을 배반하다
민족사의 극과 극을 이야기하라면 對唐(대당) 결전으로 唐軍(당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민족통일국가를 완성한 문무왕, 김유신 등 7세기의 신라 지도부가 최상이다. 최악은 사대주의와 위선적인 명분론에 혼을 빼앗겨 할 필요가 없는 전쟁을 초대하여 王朝(왕조)도 民生(민생)도 도탄으로 밀어넣었던 仁祖 시대의 집권세력이다. 신라 지도층과 인조 시절 지도층은,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신라 지도층의 성격은 개방, 활달, 文武(문무)겸전, 풍류, 자주, 명예, 오기, 자존심, 품격으로 표현된다. 인조 지도층의 성격은 편협, 명분, 위선, 독선, 무능, 文弱(문약)으로 표현된다. 신라는 국가와 불교가 기능을 분담했다. 국가가 종교에 복종하지도 종교가 국가에 이용만 당하지도 않았다. 신라와 불교는 각기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상호 협력하였다. 흔히 신라 불교를, 호국 불교라고 말하지만 통치 이데올로기화된 불교는 아니었다.
조선조 시대에는 朱子學(주자학)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정치가 주자학을, 주자학이 정치를 이용하면서 전례가 없는 수구성과 명분성과 위선성을 보여주었다. 정치와 철학이 결탁하면 정치는 생동감을 잃고 철학은 흉기가 된다. 주자학적 명분론이 부른 전쟁이 병자호란이었다.
척화파의 대의명분은 근사하였다. 하늘 아래 황제가 두 사람이 될 수 없고, 事大의 대상이 둘일 수 없다는 의리론이었다. 문제는 이런 명분론이 현실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할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은행 잔고가 바닥 났는데 호화주택을 지으려 하였으니 不渡는 필연적이었다. 현실이 명분을 배신하였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일본의 경제보복을 불렀다. 병자호란처럼 자초한 면이 크다. 징용자 배상판결로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을 무시하고 2015년의 박근혜-아베 최종합의 정신도 이를 적폐로 몰아 깬 것은 문재인 정부였다. 이렇게 하면 보복이 들어줄 줄 알고 준비하였어야 했다. 인조가 청에 대하여 황제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 뻔함에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당한 것처럼 문재인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인조 조정이 황제 호칭을 거부한 논리는 주자학적 명분론에 기초한, 明에 대한 의리와 淸의 실력에 대한 輕視인데, 문재인 정권의 민족주의로 위장한 무조건적 反日종족주의와 유사하다.
仁祖反正의 명분은 광해군이 명과 後金 사이에서 실용적인 줄타기를 한 것을 明에 대한 배신으로 몬 것인데,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부의 실용적 對日정책(종군위안부 최종합의)을 적폐로 몬 것과 비슷하다.
문재인 정권은 敵인 김정은 정권을 친구처럼, 우방국인 일본을 敵처럼 대하다가 남한산성에 고립된 느낌이다. 아베가 청태종처럼 "귀하가 그토록 받들던 김정은이 당신을 구하러 올 것인지 두고 보자"고 냉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청와대에선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자는 의견이 나온다는데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을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한일관계의 개선을 그토록 요청하였을 때는 무시하다가 일이 터진 다음에 도움을 요청하는 문재인의 손을 과연 잡아줄까?
백제, 고구려, 고려, 조선은 모두 외교실패로 망하였고, 신라와 대한민국은 羅唐동맹과 韓美동맹으로 통일을 이루었고 번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망한다면 외교 실책 때문일 것이다. 외교의 실패의 충격과 내부 분열이 겹치면 망한다. 문재인 식 선동 정치는 국경을 넘어서서 국제사회로 나가는 순간 失效된다. 國力만이 통하는 국제사회에서 國力을 넘어서는 말장난이나 만용을 부리다가는 殘高를 넘어서는 수표를 끊을 때처럼 외교부도가 나는 것이다. 병자호란을 부른 조선조의 주자학 선비정치인들과 일본의 보복을 자초한 문재인 정권 세력은 위선적 명분론의 포로가 된 점에서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지식풍토는 좌파 600년에 우파 6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