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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극단적 선택-세 번 만에 성공한 자살 엄상익(변호사)  |  2019-08-19
명문고를 나오고 미국의 일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의뢰인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었다. 그는 장관을 지낸 분의 아들이기도 했다. 프라이드가 대단했다. 그는 재벌 회장인 장인과 싸우고 있었다. 그 싸움은 돌과 돌이 부딪쳐 푸른 불꽃을 튀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사위가 싸움에서 밀리는 형국이었다. 사위는 패배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늦은 밤 한강다리 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물 위로 떠올라 헤엄쳐 나왔다.
  
  그는 두 번째로 죽음을 시도했다. 호텔 방에 들어가 칼로 배를 가르다가 실패했다. 호텔종업원에 발견되어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가 세 번째 죽음을 시도했다. 병원의 옥상으로 올라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그는 죽지 않았다. 두개골의 일부만 깨졌을 뿐이었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입 속에 굵은 튜브를 꽂고 생명 보조장치에 매달려 누워있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도대체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천정을 향해있는 공허한 눈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물었다.
  
  “어때요? 이제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아요? 긍정하면 눈을 두 번 껌뻑거려 보세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또 한번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얇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떴다. 그의 의식은 투명하게 깨어 있었다. 몇 시간 후 그는 죽었다. 다음날 그의 영정사진 앞에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영정사진 뒤에서 그가 후회하는 표정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변호사를 개업한 한 친구는 수십억을 청구하는 사건을 맡았다. 그 서류들을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가 일주일쯤 후에 들추었다. 순간 그는 아찔했다. 시효가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의뢰인이 시효가 만료되기 하루 전에 와서 사건을 맡긴 것이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도 배상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그는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목이 매인 채 발견되었다. 나중에 법원에서 파악된 바에 의하면 그의 배상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정치인 노회찬, 정두언씨가 죽었다. 사업가 성완종이 죽고 연예인 전미선씨가 호텔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보도를 봤다. 몇 년 전 노회찬 의원과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개결한 양심을 가진 스타의식을 그에게서 읽었다. 자기가 만든 광화문의 높은 빌딩을 자랑하던 사업가 성완종씨에게서 성공한 사람의 프라이드를 봤다. 한겨울 찾아간 지인의 아파트에서 떡국을 가져다 주던 탈랜트 전미선씨의 모습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들은 인생 무대에서 주연급으로 캐스팅된 스타였다. 연출자는 주연급일수록 갈등과 고난 쪽으로 밀어넣는다. 주연들은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무대를 떠나 버렸다.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수명만큼 고통과 절망을 견디며 사는 것도 인간의 의무가 아닐까.
  
  목을 매 죽으려다가 실패한 친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나뒹구는 순간 너무 아프더라는 것이다. 다시는 자살 시도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차가운 물 속에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받는 고통의 시간이 살아서 고통받는 시간보다 수천 수만 배 더 길다고 한다. 사형수들은 평생 암흑 같은 감옥에 살아도 존재 자체가 행복이라고 한다. 마지막 순간 그들은 살고 싶어 할 것 같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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