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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평양은 '남한 586 좌파' 버렸다? 류근일(조선일보 前 주필)  |  2019-09-02
’김정봉의 안보 포커스’란 유튜브 매체가 주목할 만한 보도를 했다. 북한의 ‘우리민족끼리’가 ‘남조선 진보세력’을 비난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렇게 나올 것으로 예측했지만, 그 시점이 이렇게 이를 줄은 몰랐다.
  
  ‘김정봉의 안보 포커스’에 의하면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진보세력은 '민주'를 앞세워왔지만 실은 미제 승냥이보다 더 추악한 자들, 조국은 형편없는 놈, 문재인은 이른바 진보세력의 허수아비”라는 식으로 내리쳤다고 한다. 남한 좌파에 대한 평양의 남한 보수진영 뺨치는 혹독한 비판이자 단죄였다.
  
  이건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북한 김정은 정권은 문재인을 허수아비 대표로 내세우고 있는 386 NL 좌파 집단을 더이상 자신들의 파트너로 치지 않기로 했다는 첫 신호라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얼마 전에 문재인을 ‘겁먹은 개’라고 욕했을 때부터 감지된 바 있다.
  
  북한 노동당 정권은 원래 자기들만이 전(全)한반도의 유일무이한 혁명지도부라고 생각하지,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대등한 상대가 되거나 제2의 지위를 갖는 독립적 타자(他者)의 존재 같은 건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유일사상 체제, 유일 절대권력 체제다. 하늘 아래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발상이다. 있다면 달 같은 위성 정당 또는 우당(友黨)이라는 이름의 허수아비 배역만 있을 수 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박헌영의 남노당,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장성택을 숙청한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숙청된 자들이 감히 2인자 행세를 했거나 딴 주머니를 차는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김가 신정체제는 남한과 관련해서도 이곳엔 한시적인 이용대상만 있을 뿐, 대등한 파트너 따위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용대상일 뿐인 남한 좌파가 주제파악을 하지 못한 채 자기들이 무슨 독립적인 변수라도 된다는 양 착각하고 행세할 때는 그 무엄함을 평양으로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 좌파가 과연 평양에 대해 그런 무엄함을 드러내 보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자신 있는 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이 그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이 미-북 관계 개선과 관련해 자기들에게 더이상 쓸모가 있지 않다고 간주하자마자 북한은 “오지랍넓게 중재자니 뭐니 주제넘게 놀지 말라”며 문재인의 역할을 용도폐기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권으로서는 야청 하늘의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파문(破門)이라뇨, 정말 너무하십니다….
  
  그렇다면 평양은 이제 누구를, 어떤 세력을 자신들의 새로운 하위 우군으로 지정한 것일까? 그들은 아마도 문재인 정권의 무대 위 실권파보다 더 혁명적이고, 평양과 관계가 더 밀접한 요소들일 것이라 추측된다. 대충 알 만하지만 지금으로선 구체적인 거론은 유보하겠다. 아스팔트와 지하에는 거리의 폭민(暴民)을 선동하고 조직하고 조종하는 반(半)합법적 혁명 네트워크가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대중적 거대 합법조직에 침투해 그런 집단의 극렬하고 준(準) 폭력적인 투쟁을 고취하고 있을 것이다. 일반 대중의 일상의 불만과 욕구를 자극하면서.
  
  때마침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를 고비로 대중적 지지를 급속히 상실해가는 추세에 있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문재인 정권은 이제 쓸모가 없다” “차제에 더 혁명적인 파트너로 바꾸겠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건 물론 더 지켜봐야 할 가설이다.
  
  어쨌든 문재인 586 정권은 이제는 평양까지도 욕지거리를 해대는 아주 곤혹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곤경에 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어쩌다가 이리 됐노? 남한 자유국민과 평양의 동시적인 배척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정권, 이걸 본인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류근일 2019/9/1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i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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