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하면서 성폭행의 변호를 맡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죄가 밉고 세상이 돌을 던져도 변호사는 일단 의뢰인 편이 되어야 했다. 미성년의 고등학생이 고시원 옆방의 여성 옷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경우가 있었다. 그 여성이 방으로 들어오라고 유혹을 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 고교생의 인생은 해가 돋기도 전에 먹구름이 끼어 버린 것이다. 지하철에서 너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앉아있는 여성을 보고 유리막에 반사되는 모습을 보고 몰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중년의 교수도 봤다. 변호사로서는 바지춤에 끈적끈적 묻어있는 소년의 욕정도 이해하고 중년의 호기심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성폭행 피고인을 변호하는 기법중의 하나는 피해자로 되어 있는 여성을 살피고 혹시나 묵시적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은 아닌지 법정에서 확인하는 작업이다. 택시기사가 뒷자리에 앉은 여성을 성폭행한 비슷한 형태의 두 사건이 있었다. 증언하러 온 피해자의 형태가 달랐다. 한 여성은 가만히 있다가 그 현장을 벗어나자마자 경찰에 신고했다. 기소된 택시기사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변호사가 물었다.
“제가 피해자라면 저항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텐데 왜 안 했나요? 정말 피해를 당한게 맞나요?”
이상했다. 오히려 닥친 그런 상황을 즐기는 여성들도 더러 있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택시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의 두 번째 케이스는 피해 여성이 택시 의자에 부착된 기사의 인적사항을 사진으로 찍어 친구에게 보내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사안이었다. 성폭행범의 변호사가 법정에서 피해자라는 여성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가 피해자라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 그렇게 용감하게 친구에게 알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피해를 당한 게 맞나요?”
법정에서 보면 판검사나 변호사들은 피해자들의 태도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옆에 사람들이 있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면 저항해야 한다는 공식이었다. 나 역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온 여성의 한 마디로 그런 편견이 증발해 버린 적이 있었다. 법정에서 변호사와 피해여성의 신문과 답변 내용은 대충 이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리치면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사람들이 있었죠?”
변호사가 물었다.
“그랬어요.”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옷을 벗었다면서요?”
“벗었죠.”
“폭행을 당하지는 않았죠?”
“맞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성폭행을 당한 거 맞나요?”
그 순간 증인으로 나온 여성이 변호사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변호사 아저씨, 그 놈이 발정난 개처럼 눈알이 시뻘개져 있어서 말을 안들으면 맞아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냉큼 벗은 거예요. 내가 미쳤다고 버텨요?”
그 한 마디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것 같았다. 나는 피해자에 대해서는 어떤 도식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달랐다. 어떤 여성은 문제가 노출되고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을까봐 침묵하는 경우도 있었다. 꽃뱀 소리를 듣기 싫은 여성도 있었다. 피해 여성마다 입장이 달랐다. 법률가들의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는 고정관념이 범죄를 보지 못하는 맹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