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박근혜 정권 시절이었다. 북한의 핵 개발이 성공하고 서울이나 인천공항에 핵폭탄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우리 집도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정부의 발표가 있으면 바로 앞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평생 전쟁을 두려워하고 사는 셈이었다. 어떤 부인이 나의 법률사무소로 상담을 하러 왔었다. 그녀는 사업을 하는 준재벌급 아버지를 둔 속칭 금수저 출신이었다. 부자인 그 집은 미국에도 집과 예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와 자식들은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사태가 벌어지면 나는 미국 시민이니까 미국에서 비행기를 평택이나 서울공항으로 보내서 미국으로 보내 주겠죠? 문제는 집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미군 부대나 공항까지 어떻게 가느냐에요.”
그녀는 껍데기만 한국인이지 속은 미국시민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엄 변호사는 어떻게 하실 거에요?”
그녀가 물었다.
“저는 여기서 죽을 겁니다.”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참 이상한 사고를 가진 분이네요.”
그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속에는 빈정거림도 들어있었다. 대한민국 부유층에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저는 여기서 나라를 지키면서 싸우다가 죽을 겁니다. 이미 살 만큼 산 나이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이년 반쯤 흘렀다. 권력 내부를 김일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주사파가 잡고 있어 나라가 사회주의로 넘어간다는 위기의식들이 팽배했다. 문재인 정권은 일본과 각을 세우면서 한일 정보협정인 지소미아를 파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한미동맹에 매달리는 태도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미국에 재산을 가지고 있는 한 육십대 부인과 만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자식들도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국에 그냥 붙어야만 살 수 있대요. 문재인이 왜 미국을 멀리하려고 하는지 몰라요. 죽으나 사나 우리는 그냥 미국에 붙어야 해요.”
나는 그 말에 화가 벌컥 났다.
“붙다니 어떻게 붙어야 하나요? 붙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는 미국인에게 시집을 가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정말 좋아하지 않을까. 병자호란 때 청군이 침략해 들어왔을 때였다. 부잣집 마님들이 청군의 노리개가 됐다. 그들 앞에서 춤을 추고 수청을 들었다. 청군의 장수들은 그런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말을 태워 데리고 다녔다. 그 견마잡이는 남편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길을 가면서도 서로 네 탓이라고 욕을 하며 싸우는 모습이더라고 적혀 있었다. 그게 우리들의 일그러진 역사고 못난 조상이었다. 왕은 청의 장수를 향해 얼어붙은 강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통을 박았다. 그 유전자가 계속되는 것 같다. 나는 영혼마저 미국에 굴복하는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