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보수 성향 유튜버 사이에서 제기된 ‘사전투표 조작설’로 총선이 끝난 지 두 달여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우파 진영은 어수선하다. 6월 중으로 예정된 법원의 재검표 결과가 나온 후에나 진정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역대 재검표에서 표 차는 줄어들지언정 결과가 달라진 경우는 없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3표 차이로 석패한 문학진(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재검표를 요청했었다. 당시 경기 광주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소속 박혁규 후보에게 3표 차이로 패하자 당선무효 소송을 벌였다. 법원의 재검표로 표 차가 3표에서 2표로 줄었을 뿐,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충남 당진 선거구에서는 뒤늦게 지역구 투표용지가 발견되어, 충남 선거관리위원회가 개표 당일 결과를 발표한 직후 3시간 동안 수작업 재검표에 들어갔다. 당락은 바뀌지 않았지만 표 차는 25표에서 9표로 줄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인천 부평갑 지역구에서 문병호 국민의당 후보가 26표 차이로 낙선하자 즉각 선거 무효소송을 제기, 재검표에 돌입했다. 표 차이가 26표에서 23표로 줄었지만, 역시 승패가 뒤집히는 일은 없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재검표로 줄어드는 표 차에 대해 “선관위가 무효로 판단한 표를 법원에서 유효표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한나라당 지지자들 압박에 재검표로 6억 날려
2002년 대선 때는 57만 표(2.3%)차로 패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자들이 개표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재검표가 이뤄졌다. 이회창 후보는 패배를 인정했지만 지지자들이 결과에 불복해 당을 압박했고, 이에 한나라당이 중앙선관위원장을 상대로 노무현 당선자 당선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재검표 결과 집계 오류는 1117표로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한나라당은 6억 원에 달하는 재검표 비용을 부담해야 했고, 당 지도부는 대국민 사과를 했으며, 서청원 당시 당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현재 미래통합당이 ‘사전투표 조작설’에 거리를 두는 것은 이런 경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8대 대선 때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개표 조작 의혹이 나왔다. 전자개표기가 해킹됐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을 골자로 좌파 방송인 김어준 씨가 ‘더 플랜’이라는 개표 조작 의혹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현재 보수 유튜버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더 플랜’ 개봉 후 당시 선관위는 18대 대선 투표지 재검표를 공개 제안했지만, 김 씨 측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21대 총선 선거·당선 무효소송 139건
대법원에 따르면 21대 총선 관련 선거나 국회의원 당선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소송은 총 139건이 접수됐다. 20대 총선 대비 10배가 늘었다. 국회의원 선거무효 소송 137건, 당선무효 소송 2건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12건은 소송 접수 이후 취하됐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유권자가 110건, 후보자 26건, 정당 2건, 기타 1건으로 분류됐다.
4·15 총선에서 결과에 불복해 증거보전신청을 한 미래통합당 후보는 24명으로 민경욱, 이언주, 김선동, 이은권, 박순자, 나동연, 박종진, 최윤희, 김소연, 박용찬, 박용호, 차명진, 김척수, 이성헌, 최현호, 경대수, 장동혁, 나태근, 심장수, 윤갑근, 강성만, 홍인정, 허용범, 익명요구 1명이다. 이들이 모두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 소속 남영희 후보는 인천 동구미추홀 지역구에서 171표 차이로 무소속 윤상현 후보에게 패해 재검표를 고심했지만 철회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지난 20년간 100표 이상의 재검표가 뒤집어진 경우는 없다. 잠시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후보의 삐뚤어진 눈 때문이었다, 제 눈과 머리를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보니 저의 판단은 착오였다”라고 밝혔다.
선관위, 개표 조작 의혹 제기 유튜버 고발
선관위는 “정확한 근거 없이 무모한 의혹만으로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사회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거운 법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이런 행위가 계속될 때에는 당사자 및 관련자 고발 등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혀왔다. 실제로 서울시선관위는 지난달 15일 송파구선관위 개표과정에 부당하게 간섭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한 유튜버를 서울동부지검에 고발했다.
이 유튜버는 송파구개표소 개표참관인에게 “투표함에 부착된 봉인지를 촬영해 전송하라”고 지시한 뒤, “전투표소 투표함 봉인지 서명과 개표장 투표함의 봉인지 서명이 다르다”라고 개표참관인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도록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유튜버와 함께 “서명이 다르다”고 주장했던 연루자 일부는 선관위 조사 과정에서는 ‘제대로 된 서명(이 맞다)’는 취지의 자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 유튜버는, 참관인에게 이의 제기를 종용한 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으며,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이 유튜버의 사례를 개표 조작 의혹의 근거의 하나로 인용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