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바튼 스웨임 논설위원은 5일 ‘폭력시위와 인텔리겐치아(지식인)’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사상을 가르치는 저명한 지식인 게리 사울 모슨을 인터뷰해 이와 같은 글을 게재했다. 모슨 교수는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 시위의 양상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당시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기득권으로서 혜택을 받은 지식인들이 對정부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점,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악인(惡人)으로 규정하는 행태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폭력시위를 언급, 사람들이 “시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것조차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이 악화되면 러시아 혁명 때처럼 일당 독재체제로 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글을 전문 번역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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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일어난 폭동과 1992년 LA폭동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두 사건 모두 끔찍한 비디오 영상으로 촉발됐고 이 나라를 정치와 이념적 성향에 따라 쪼개지게 했다. 그러나 두 사건의 차이점이 더욱 흥미롭다. 1992년에 있었던 폭력 사태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다음 발생했다. 로드니 킹이 구타를 당하고 체포된 것은 폭동이 발생되기 1년 전의 일이다. 올해 일어난 폭동은 미니애폴리스 경찰관들에 의해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지 며칠 되지 않아 일어났다. 1992년 폭동은 대부분LA의 가난한 지역이나 중산층이 거주하는 지역에 국한돼 진행됐다. 이번주에 일어난 폭동의 경우는 LA와 뉴욕은 물론,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폭도들은 부유한 길거리와 지역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큰 차이점은 합리화일 것이다. 좌파 엘리트 집단은 폭력 사태를 온 힘을 다해 변호하고 있다. 혼돈을 미화하고 경찰과 경찰을 지지하는 중산층을 비방한다. 공공기물 파손 행위 역시 과장을 해가며 변호하고 있다. 혁명과 계급투쟁이라는 이미지를 미국 전역에서 볼 수 있었다. (시위) 전문가들과 하층민들은 프티부르주아가 운영하는 가게들을 공격했다.
개리 사울 모슨(注: 노스웨스턴 대학교 교수로 러시아 문학 및 이념 전문가)은 경찰의 행동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대해 특별한 의견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지금 일어나는 정치적 움직임과 관련해 도발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그는 “나는 지금 상황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러시아와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당시의 지식인 모두는 정권에 저항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72세인 모슨은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도스토예프스키와 체호프, 톨스토이를 연구한 사람이다. 모슨은 지금은 레닌이 말한 ‘혁명적 상황’까지는 물론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법치가 실종된 폭력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는 도달했다고 했다.
러시아 짜르 시대 말기에 사회민주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와 같은 일부 정당과 단체들은 테러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모슨은 “(제정러시아 당시) 자신들을 입헌민주당이라고 부른 진보정당은 테러를 용납하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규탄하는 것은 거부했다”고 했다. “이들은 수감된 테러리스트들 전원이 석방돼야 한다고 했다. 이들 테러리스트들은 즉시 테러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그는 “진보 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고 했다. “테러 행위를 규탄하라고? 이는 우리 당이 도덕적으로 사망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교훈들은 지금의 시기에 매우 적절해 보인다. 모슨은 “어떤 사람이 실제로는 이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경우 악마와 같은 사람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어떤 일에 끌려가게 되는 사태. 나는 악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려고만 한다면 행하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지지하게 된다. 어떠한 도덕적인 힘이 작용돼 이를 멈추지 않는다면 이런 쏠림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고 했다.
모슨은 책이 빼곡히 진열된 그의 시카고의 집무실에서 영상통화를 통해 인터뷰를 했다. 러시아 혁명 시기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데 거의 평생을 바친 그는 당시의 러시아와 그가 살아가는 시기의 공통점을 저절로 찾게 된다고 했다. 이런 공통점이 항상 나타나거나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한 결과의 일부는 고민해볼 만한 사안들이다. 지금의 혁명가들 대다수는 매우 성공하고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콜린포드 매티스와 우루즈 라만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30대들이다. 이들은 경찰차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지르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매티스는 프린스턴 대학교와 뉴욕 대학교를 나왔다. 라만은 포담 대학교를 다녔다.
왜 엘리트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거기까지 오르게 한 체제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일까? 모슨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는 틀렸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위집단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부유한 기업인들이고 자신들은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을 갖춘 사람들이 최상위층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sia, 지식인)’라는 단어는 러시아에서 나왔다. 모슨은 “1860년부터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의 경우 이 단어는 교육을 받은 사람 모두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 급진적 운동에 가담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지식인들’은 무신론과 혁명, 그리고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를 신봉했다”고 했다.
모슨은 “이들은 자신들이 이론을 갖추고 있고 도덕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믿었다”며 “이들은 실용주의적인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맡는다면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은 이와 같은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념이 됐다. 잘못된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를 되찾아야 한다는 점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자신들을 기득권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개신교에서 출발해 평화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좌파 성향의 자유주의자가 다수인 미국 사회에서 러시아 혁명과 같은 야만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전체적인 폭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미국 사회가 너무 유순하지 않을까?
모슨은 오랫동안 고민한 뒤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 정도까지 하지는 않겠다는 것인지 그런 일에 거부반응을 덜 느낀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모슨은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가 더 이상 토론이 되지 않는 사회가 오면 위험한 일이 시작되는 단계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제대로 들을 수 없기 때문에 혁명적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중요한 논제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오직 하나뿐일까?”라고 했다. 또 ‘물론 그렇지만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까?”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일당(一黨)체제나 독재와 같은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한 정당은 항상 틀리고 한 정당은 항상 옳다면 옳은 정당 하나만 갖자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념적으로 나뉘어지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확신에 차 강조했다. 그는 “백인들이 흑인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을 때에는 흑인들이 하는 악마와 같은 일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매우 쉬웠다. 그러나 누군가와 같이 생활을 하게 된다면 이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념적으로 사람들이 갈라서게 되는 것을 봐왔다. 양측 모두 서로를 우스꽝스러운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역사적 필연성이 이 상황에서 작동할 수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인 문구들을 들을 수 있다. 어떤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시대가 마침내 찾아왔다”고 하고 반대하는 경우에는 “역사의 반대편에 서있다”고 말한다. 이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 사고(思考)하는 일이 된다.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방향은 우리가 믿는 정치적 신념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이런 생각은 지금의 고학력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슨은 “이것이 19세기말 러시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고 했다.
(모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이 있을까? 다가올 날들이 더 좋은 날들일까? 톨스토이와 알렉산드르 게르첸과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이와 같은 생각은 종교적 섭리주의가 역사인식에 반영된 것이라고 봤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판단들이 말이다.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것의 어려움은 개인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전쟁 상황을 예로 들면, 사람들이 ‘당신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이는 이미 과거의 일이다. 우리 파시스트는 미래를 위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미래를 위한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말이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사안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멈추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버리게 된다. ‘내가 어떻게 미래와 싸울 수 있겠는가? 파시스트나 공산주의자들에 저항할 수는 없다’고.>
나는 미국의 좌파들이 이러한 일방적인 발언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버락 오바마는 첫 번째 취임사에서 “낡아빠진 독단들이 미국의 정치를 너무 오랫동안 억압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모슨은 로널드 레이건 역시 비슷한 발언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레이건은1985년에 “혁명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과거의 지긋지긋하고 낡은 이념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지식인들의 사고 중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그들이 대변한다고 말한 소작농과 노동자들을 사실은 경멸했다는 것이다. 모슨의 설명이다.
<볼셰비키 정당에 노동자나 소작농이 얼마나 참여했는가? 극소수였다. 레닌은 ‘노동자계급은 노동조합의식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레닌이 한 유명한 말이다. 노동자들은 지식인들의 지도를 받아야 하며 완전하게 훈련돼야 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지시하든 이들은 이를 따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폭력적이든 말이다. 이들은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없으며 그냥 하면 된다. 이들은 마르크스가 표현했듯 ‘역사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계급과 소작농들에 대한 경멸을 보여준다.>
미국이 지난 한 주간의 폭동, 혹은 지난 3년간의 불신과 분노, 혹은 30년간 이어진 양극화로 인해 무정부 혹은 혁명적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추측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모슨은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을 예단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우만을 보면 러시아의 사례가 적용된다”는 표현만을 썼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지금 엄청난 경제위기와 질병에 따른 끔찍한 두려움,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폭동을 맞고 있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1년 전과 비교해보면 매우 빠르게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이런 쏠림 현상이 언제 수그러들지 알 수 없다. 이런 쏠림 현상은 계속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갈 수 있다. 모슨은 20년 전에 어느 누가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진보좌파 진영이 불필요한 구식의 사고라고 생각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겠느냐고 했다. 그는 “내가 한 소련 주민과 나눈 대화를 소개하면 학생들이 웃는 경우가 많았다. 그 소련 주민은 나에게 ‘우리에겐 당연히 언론의 자유가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했다. 이는 큰 웃음을 주는 말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이를 듣고 웃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