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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노인을 위한 교회는 없다? 엄상익(변호사)  |  2020-06-21
이십대 말경이다. 종교가 없던 나는 밤하늘 저쪽에 있을 것 같은 하나님에게 간절히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조건부로 약속을 했었다. 양심상 그냥 은혜는 받지 않겠다는 어린애 같은 마음이었다. 하나님이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나는 약속한 대로 교회를 찾아 나섰다. 천주교가 무엇인지 개신교가 무엇인지 교파가 무엇인지 모를 때다.
  
  여의도에 있는 유명한 교회에 가 보았다. 수천 명이 앉아있는 거대한 공연장 같아 보였다. 단 위에 있는 남자가 목이 가득 쉰 소리로 “마귀야 물러가라”라고 외치며 허공을 향해 종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마귀가 있다면 단번에 잡아먹힐 것 같은 약한 모습이었다. 그 바늘 같은 팔뚝으로 마귀를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다음 주일 차를 타고 압구정동을 지나가는데 한 붉은 벽돌 건물 위로 십자가가 보였다. 그 건물 쪽으로 차를 꺾어 주차장에 정차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에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하나님이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다시 차를 타고 그 동네를 지나가다가 골목길에서 새로 지은 아담한 석조건물을 보았다. 그 앞에 차를 세우고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따스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그 건물 전체에 충만해 있는 것 같았다.
  
  신도들이 조용히 예배를 보고 있었다. 그 제일 뒷자리에 앉아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십 년쯤 흘렀다. 교회 신도들끼리 패가 나뉘어 싸움이 있었다. 하나님의 기운인 성령이 이미 교회 건물에서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수액이 다 빠진 고목 같다고나 할까.
  
  얼마간 교회를 가지 않다가 집에서 가까운 동네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신도들의 분위기가 따뜻하고 화목했다. 역사학 전공이라는 목사는 지성적이고 부지런했다. 이번에는 교회 뒷좌석에서 관찰자같이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막상 참여하려니까 내게 그런 일은 주어지지 않았다. 교회 주방일을 도우려고 들어갔다가 쫓겨났다.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하는 일에 갔는데 고참 신도로 보이는 사람이 나보고 버려진 나뭇가지를 모아 산에 가져다 버리라고 하는데 그 태도가 석연치 않았다. 함께 하는 즐거운 교인의 노동이 아니라 감독이 일꾼에게 하는듯한 태도였다. 교회의 주요사업에는 끼워주지 않는 것 같았다. 말들은 안 하지만 그저 돈만 내면 역할이 끝날 것이라고 그 표정으로 알려주었다. 특별헌금을 내지 않는 노년의 인생들은 그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것이라고 자조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대형교회로 옮겼다. 우선 가까웠기 때문이다.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끝이 나고서도 혼자 그 교회 기도실에서 하나님을 찾았다. 그런데 그 교회는 핵폭탄급의 싸움에 휘말리고 있었다. 목사파와 장로파로 나누어 진흙 밭의 개싸움을 하고 있었다. 사랑과 협동이 있어야 할 교회가 증오와 반목으로 가득 찼다. 세상의 악랄한 술수가 그대로 들어와 있었다. 화려한 유리 건물 속의 멋있게 디자인된 무대 위에 하나님은 없을 것 같았다.
  
  또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교회는 나같이 노년에 속한 사람들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지난번 동네교회에서 같은 노년그룹의 신도 몇 명이 지하실에 있는 방을 조금 오래 썼다가 부목사한테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정말 싫어하는 눈길이었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 삼십대부터 이십 년간 듣던 노목사의 설교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 목사가 자신에 대해 이런 간증을 했다.
  
  “북한에서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끌려가기 전날 밤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간수에게 부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고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의외로 그 간수가 허락을 하고 풀어줬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니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나는 갑자기 강한 의문이 들었다. 어떤 장소에서든 간절히 기도한다면 바로 그곳이 거룩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바울도 감옥 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했었다. 베드로도 그랬다. 특정한 건축물만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곳이라는 목사의 생각과 나의 의견이 다른 것 같았다.
  
  중환자인 남편의 병간호를 하고 있는 아내가 굳이 다니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해야만 하나님은 들으실까? 그 아내가 동이 터 오르는 병원의 창 앞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바로 그곳이 신성한 곳은 아닐까. 하나님을 섬기고 찬송하며 영광을 드러내는 곳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지하철 안이든 내가 앉는 곳 서는 곳 모두가 신성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몸이 성전(聖殿)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영(靈)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나는 마음교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믿음의 젖먹이 시절 교회에 나가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었듯이 조직화, 제도화한 교회도 그 역할과 소명이 있다. 그러나 젖을 뗀 다음에는 혼자 가는 마음교회도 필요할 것 같다. 노인이 되어서도 젖꼭지를 물고 젊은 목사가 젖을 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아닌 것 같아서다.
  
삼성전자 뉴스룸
  • 북한산 2020-06-24 오후 9:55:00
    엄선생님, 저는 교회를 다니다가 불교로 돌아섰습니다.그 이유는 체험입니다. 즉 참선을 하다보니 기독교 보다 더 넓고 자연스러운 편안한 세계가 있다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 1 2020-06-22 오후 8:27:00
    "우리의 몸이 성전"!!! 하나님의 영이 내몸에 들어 오셨기 때문에 내 몸이 성전"으로 교회를 가지고있다" 감사! 감사!! 감사드리며 아멘! 아멘!! 아멘!!!
  • 정답과오답 2020-06-21 오전 9:56:00
    대한민국에서 본 유일한 예수님의 신자 같습니다
    지나간 세월 그 어디에도 본적 없는
    부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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