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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長 노릇 못할까 걱정하는 80대 선배에게 엄상익(변호사)  |  2020-06-30
​법조인 모임에서 나이 팔십이 된 선배가 걱정을 한다.
  
  “부동산도 팔면 양도소득세로 뜯겨 소득이 반토막 나고 돈가치도 떨어지는데 이러다가 가장 노릇을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야.”
  
  그 선배는 선량한 부자였다. 부모 대부터 부유한 집안이었다. 온유한 성품에 일생을 성실하게 산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모든 축복을 받은 듯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부자집에 태어난 데다가 총명하고 성격도 인격도 훌륭했다. 인색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평생 크고 작은 덕을 베풀기도 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얼마 전 내가 은행 지점장과 의논했어. 어떻게 하면 재산을 보존할 수 있느냐고? 금을 사둘지 달러로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뭐냐고 그랬더니 지점장 말이 지금의 상황으로는 방법이 없다는 거야.”
  
  나는 그 선배가 너무 염려를 하는 것 같았다. 나이가 여든 살이면 이미 경제문제나 가장 노릇에서는 떠나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나이면 신선이 되어서 저세상에 한 발을 걸쳐놓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변호사로 사건을 맡았던 한 부자 노인의 생각이 겹쳐서 떠오른다. 가난했던 그는 돈을 모으고 또 모았다. 욕망과 걱정이 그에게 속삭였다. 늙으면 누가 도와줄 것인가를. 그러니 돈을 모으라고 했다. 마침내 그의 창고가 재물로 가득 찼다. 은행예금만 해도 수십억이었다. 그 외 부동산과 주식도 넘쳐났다.
  
  노년을 편하게 즐기면서 먹고 마시려는 순간 그에게 죽음의 천사가 와서 ‘이제 가자’라고 했다. 최고의 의술을 가진 의사도 수술해 고칠 수 없는 폐섬유증에 걸린 것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순간 욕망에 속았다는 걸 알았다. 그는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바다에 던지고 싶다고 했다. 마당에 쌓아놓고 불을 지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쓸쓸한 바람이 부는 바다가 보이는 산비탈에 있는 그의 묘지를 꽃 한 송이 들고 찾아간 적이 있다. 그의 비석에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사이에 마지막에 던지듯 돈을 기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래도 그건 의미 없는 벼슬 자랑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하나님은 돈이나 지위 명예보다는 이 세상에서 작더라도 어떤 좋은 일을 했느냐고 물으실 것 같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내게 다가온 크고 작은 사건들은 나름대로 진리의 씨앗을 하나씩 물고 왔던 것 같다. 타락한 부잣집 아들과 여배우 사이에 난 딸아이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처녀인 여배우가 임신을 했다고 해서 연일 주간지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딸을 모른다고 했다. 광대 기질을 가진 엄마는 늙어가면서 경제력이 없었다.
  
  부자인 아버지의 딸이고 스타 어머니의 자식이어야 할 그 아이는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하루 종일 편의점이나 음식점에서 뛰어야 한다고 했다. 밤새도록 냅킨을 접어야 한다고 했다. 그 부모의 무책임한 부산물이자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내 또래였다. 그 시절 부자친구들 사이에 그런 흐름이 있었다. 섹스는 말한다. 청춘은 덧없이 흐른다고. 즐기자고. 그건 희생자를 만드는 또다른 탐욕이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더러 애욕의 뒤치다꺼리를 해 봤다. 현대판 첩을 네 명이나 두고 여러 집 살림을 하는 사장도 있었다. 경쟁적으로 돈을 달라는 첩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회사 돈을 자꾸만 불법적으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즐기면서 행복하자는 그들은 점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행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주님은 사건을 통해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를 물으셨다. 한번 나를 먹고 나를 마셔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것 같았다. 내면에 숨겨진 진짜 보물을 보게 되면 세상의 욕망과 탐욕은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모임에서 만난 가장 노릇을 걱정하는 선배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는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면 어떻겠느냐고. 너무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세상에 애착이 강하면 하늘로 끌려 올라가는 인력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재물과 세상에 대한 애착 때문에 땅에도 있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지도 못하고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도 불행할 것 같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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