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神이 준 선물로 즐기자>
택배로 블루베리 몇 통이 왔다. 철원의 동막골에서 온 건데 누가 왜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는 눈병에 효험이 있다는 블루베리를 내게 계속 먹이고 싶어 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재배하는 건지 누가 왜 보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동막골로 갔다. 인적이 드문 전방의 산비탈 숲이 우거진 곳에 컨테이너가 보이고 그 앞에 개간한 블루베리가 자라고 있는 밭이 보였다. 컨테이너에 노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인 듯한 노인을 만났다. 맑은 느낌이 드는 인상의 노인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 여든세 살입니다. 십여 년 전에 아내와 함께 이곳으로 들어와 블루베리 밭을 개간했죠. 철저히 유기농을 고집하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커피 대신 다른 대접을 해야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그는 컨테이너 앞에 있는 밭으로 우리 부부를 안내하면서 말했다.
“여기 달려 있는 불루베리를 배가 꽉 차도록 들고 가세요. 농약을 조금도 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드셔도 됩니다.”
가지마다 작은 포도송이 같이 짙은 보라색의 블루베리 열매들이 가득 달려 있었다. 밭의 밑바닥에는 왕겨가 두껍게 깔려 있었다. 안내를 하는 노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떤 다른 경력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침묵하는 그 표정의 뒤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초면에 이것저것 묻거나 대화할 사이는 아니었다. 내가 블루베리를 한 움큼 따서 먹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제 아내가 지금 아파요. 뇌는 멀쩡한데 그걸 말하는 근육으로 전달하는 신경체계에 이상이 있답니다. 그래서 말을 못하죠. 병원에 갔더니 언어훈련을 시키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지금은 제가 우리가 사는 컨테이너 안에서 매일 성경을 소리 내서 읽게 합니다. 그렇게 언어훈련을 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말은 안 하지만 그는 믿음이 깊은 사람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팔십대 노인 부부가 동막골이라는 최전방 깊은 산골의 산비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에둘러서 물어보았다.
“여기가 고향이십니까?”
“아닙니다. 원래 고향은 공주입니다. 그런데 은퇴를 하고 돌아가려고 보니까 고향은 제가 갈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고향 사람들의 눈총이 ‘젊어서는 우쭐대다가 늙고 힘이 빠지니까 오냐?’라고 빈정거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동막골로 온 겁니다.”
얼굴에서 느낀 대로 개결한 성격의 노인이었다. 철저한 삶의 철학이 있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깊은 산 속 수도승의 암자보다도 더 다른 경건한 기운이 컨테이너 주위에 감돌고 있는 것 같았다. 블루베리 밭 주변에는 그가 심어놓은 뽕나무가 많이 보였다.
“뽕나무에서 나는 오디 열매도 수확하십니까?”
그걸 파는 농장도 더러 보았다.
“그건 아니구요. 새들이 블루베리를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심은 겁니다. 오디가 더 달콤하니까 새들이 그쪽으로 몰려들어요. 그래서 유기농 블루베리를 보존하는 거죠.”
허수아비나 산탄총 대신 먹을 걸 베푸는 그의 인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서 블루베리를 조금 샀다. 그가 봉지에 블루베리를 넣어주면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냥 드리고 싶은 데 부끄럽게 돈을 받습니다.”
“무슨 말씀을요.”
내가 대답했다. 노인이 정성을 쏟고 수고한 데 비하면 싼 값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제가 육사 19기입니다. 사관학교 동기고 월남전에도 같이 참전했던 제 친구가 자기 변호를 한 엄 변호사님한테 블루베리를 보내주라고 해서 보낸 겁니다. 그 친구는 국정원장을 했지만 정말 ‘인간’이라고 불러도 되는 존재입니다.”
나는 돌아와서 내가 변호를 하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막골 농장에서 블루베리를 가꾸는 노인 부부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 노인은 재벌급 회사를 경영하던 대단한 인물인 것 같았다.
노년의 이병호 국정원장은 정치적 폭풍에 휘말려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꿋꿋이 버티는 걸 봤다. 구치소 의무실 앞에서 문신을 한 조폭들 사이에서 겸손한 노인으로 당당하게 서 있기도 했다. 동막골의 산 속에서 블루베리를 가꾸는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아픈 아내를 돌보면서 당당하게 홀로 있는 것 같았다.
내남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로 즐기지를 못한다. 그냥 참아낼 뿐이다. 간신히 끌고 다닐 뿐이다. 삶이라는 기차에서 내리게 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삶은 신이 내려준 선물인데 왜 즐기지 못할까. 삶은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게 아니라 그건 하나의 은총이다. 왜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조촐한 음식에 만족하며 삶의 가장 평범한 것들을 즐기면 모든 것들은 다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한순간 한순간이 다 감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명성이 있다면 또 권좌에 있다면 다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의 세계에서 성취한 것은 영원하지 않을까. 빼앗길 수 없을 것이다. 국정원장과 큰 회사를 경영했던 두 노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