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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사촌 여동생의 강인한 영업정신 "피하지 않고 그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어요. 그랬더니 진짜 머리를 뜯더라구요. 그냥 꾹 참았어요. 그랬더니…" 엄상익(변호사)  |  2020-07-30
돈은 얼마나 있으면 될까
  
  ​오십대쯤의 여인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었다.
  “상가를 하나 사두려고 부동산소개소를 갔다가 거기서 소유자를 만났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소개료를 주기가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직접 소유자를 찾아가 그 상가를 샀어요. 그랬더니 소개업자가 알고 펄펄 뛰더구만. 내가 잘못한 겁니까?”
  
  그 여성은 이익을 보는 것만 알지 윤리를 모르는 것 같았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속물들이 세상에는 많았다.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세요?”
  내가 물었다.
  
  “절을 하고 있어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절이라뇨?”
  “경치가 좋은 곳에 멋있게 절을 지었어요. 스님을 한두 명 고용해서 절을 하면 시주 돈을 짭짤하게 벌 수 있어요. 그걸 하는 거죠. 더러 천도제를 지내주기도 하고.”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다른 법무사가 작성한 계약서를 주면서 자기가 거래하려는 다른 부동산의 계약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각 외로 품값을 넉넉히 주는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해 건네주는 날이었다. 계약서를 받는 그녀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전에 만든 계약서는 뒤에 이런 종이가 있는데 왜 똑같이 하지 않는 거에요?”
  
  나는 그 말에 속으로 화가 났다. 나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법률서류는 창작품이자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녀가 그걸 짓밟는 것이다. 나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하면서 그냥 가시라고 했다. 그녀가 갑자기 불쾌한 표정이 되더니 이렇게 내뱉었다.
  “다른 사무실보다 돈을 더 준 건 그만큼 서비스를 더 받을려고 한 건데 이게 뭐야?”
  
  그게 그녀의 영혼의 상태인 것 같았다. 돈을 주면 갑질을 당연히 해야 한다는 천박한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여 년을 넘게 강남의 유명백화점에서 전자제품을 판매해온 사촌 여동생이 있다. 그 여동생이 한번은 이런 얘기를 했었다.
  
  “백화점에서 판매를 하다 보면 정말 정도가 넘게 갑질하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요. 명품을 주렁주렁 달고 와서 과시를 해요. 자기를 알아달라는 거죠. 물건을 사가고 나서도 전화를 걸어 생트집을 거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한 번은 물건을 사 간 사람이 전화를 걸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답변을 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너 이년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머리를 다 뜯어놓을 테니까’라고 소리치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말해줬어?”
  내가 사촌 여동생에게 물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고 공손하게 대답했죠. 삼십분쯤 후에 그 여자가 씩씩거리고 오더라구요. 내가 피하지 않고 그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어요. 그랬더니 진짜 머리를 뜯더라구요. 그냥 꾹 참았어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그 여자가 나한테 최고의 고객이 됐어요. 다른 고객들을 여러 명 소개해 줬어요.”
  
  “갑질하는 고객들한테 그렇게 참는 게 힘들지 않았어?”
  나는 사촌 여동생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나하고 같이 백화점에 입사한 여직원들이 그런 일들 때문에 거의 다 나갔어요. 지금 입사 동기가 나를 포함해서 딱 두 명이 남았어요.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난 그런 일을 당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속으로 내가 잘못한 게 없다면 무릎 한번 꿇는 게 뭐가 힘들어요? 얻어 맞아도 괜찮아요. 그런 게 영업인데 뭐.”
  
  사촌 여동생이라고 해도 거의 딸 같은 나이였다. 그 강인함에 나는 감탄을 했다. 사촌 여동생도 또 나도 돈이 필요해서 더러 그런 수모를 겪는다. 돈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왜 필요하고 얼마나 있으면 될까. 나는 매일 아침 백년 전 한 노인이 쓴 책을 읽는다. 그 속에서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금전은 속인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필요하지. 그러니까 속인에게 속박되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돼. 하나님 안에서 일하면 그 정도는 반드시 주어진다고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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