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인간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은 개인이 가진 모든 것을 마멸시켜서 전체와 균일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개인이 자신의 타고난 특질을 마음껏 배양하고 고양시키는 데에 있다. 개인이 노력해서 이룩한 모든 결과물에는 개인의 특성을 어느 정도 들어 있게 된다. 그래서 사회 속의 개인이 자신이 가진 고유의 개성을 발휘하게 되면 인간의 삶은 풍부해지고 다양화되며, 활력을 갖게 되고 고매한 사상에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하게 되며, 또 정서를 고양시키게 된다. 그리고 개인이 종족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 개성을 발달시키면 개인과 종족을 묶어주는 끈을 튼튼하게 하고 종족에 대한 소속감도 무한히 강화하게 된다. 개성의 발달에 비례해서 개인은 더욱더 많은 자긍심과 성취감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타인에게도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개인 자신의 삶은 보다 충만하게 된다. 개인 단위의 삶이 충만하게 되면 개인으로 이루어진 사회대중의 삶도 더 충만하게 될 것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삶을 영위하도록 허용해야 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런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각 시대의 가치는 후대에 의해 더 높이 평가될 것이다. 개성이 존재하는 한 전제정치도 최악의 결과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그 명칭이 무엇이건 간에 개성을 말살하는 체제는―神(신)의 뜻을 집행하든 인간의 명령을 집행하든―독재이다. 그래서 개성과 발전은 동일한 것이다. 충분히 발달된 인간을 양성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이 가진 특질을 배양하는 것뿐이다. 인간으로서 가능한 최선의 발달에 이르는 방법은 개인으로 하여금 그들이 가진 개성을 최대로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善(선)의 성취를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는 개성의 발달을 저해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질을 충분히 발전시킨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득이 된다. 그래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개인의 특질을 발전시키도록 허용하는 것이 발전시키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유익하게 된다. 성공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이 올 것이다.
人間事(인간사)에서 독창성이 가치 있는 요소라는 것은 그 어느 사람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는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뿐 아니라 한때는 진리였던 것이 더 이상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慣例(관례, practices)를 시작하고 인간의 삶에서 보다 더 啓明(계명)된 행동과 보다 더 좋은 취향과 인식의 본보기를 세우는 사람들이 항상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은 모든 관행과 방식(ways)에서 아무리 완벽한 수준에 도달해 있더라도 개선과 변화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유익한 혁신과 변화를 새로이 발견하고 만들어 낸다. 모든 사람이 이런 이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사람이 있어서 그들의 실험을 사회가 채택한다면 기존의 관행에 개선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창조적 파괴를 하는 이들 소수가 세상의 소금이다. 이들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흐르지 않는 웅덩이가 될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것들을 새로이 도입할 뿐 아니라 보호할 가치가 있는 기존의 것도 보존하고 발전시킨다.
만약 새롭게 해야 될 것이 없다면 인간의 지성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유를 묻지 않고 소나 말처럼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인간답지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신념(beliefs)이나 관행은 모든 사람에 의해, 장구한 세월에 걸쳐, 當然之事(당연지사)로 간주되어 변화나 혁신의 필요성을 깨닫는 기회가 드물어지기 때문에 퇴락하는 경향이 너무나 강하다. 지속적으로 항상 솟아나는 독창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믿음이나 관행이 단단한 전통으로 굳어지는 것을 예방하지 않는다면 국가나 사회는 최소한의 충격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비잔틴제국처럼 문명이 죽지 말라는 법도 없다. 퇴락한 전통의 족쇄를 진실의 망치로 깨뜨릴 수 있는 천재가 없으면 문명은 쇠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재는 항상 소수가 되기 쉽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천재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 천재는 자유의 풍토에서만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다. 천재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개인적이고 사회가 부과하는 소수의 규격에도 스스로를 맞출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관념과 관행의 속박이 적을수록, 그래서 개인의 자유가 보다 더 많이 보장되는 풍토에서 보다 많은 천재가 배출될 수 있다. 천재는 개인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 달리 말해서 개인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가 불변의 전통으로 확립된 문화풍토에서 천재가 많이 나온다. 〱J.S. Mill의 ‘자유론’〉
Churchill &; Orwell
6-1-32
Together in the mid-twentieth century these two men led the way, politically and intellectually, in responding to the twin totalitarian threats of fascism and communism. On the day that Britain entered World War Ⅱ, Churchill stated, 'It is a war, viewed in its inherent quality, to establish, on impregnable rock, the rights of the individual, and it is a war to establish and revive the stature of man.' Orwell expressed the same thought in his plainer style: 'We live in an age in which the autonomous individual is ceasing to exist,' he fretted two years later.
Orwell and Churchill recognized that the question of their century ultimately was not who controlled the means of production, as Marx thought, or how the human psyche functioned, as Freud taught, but rather how to preserve the liberty of the individual during an age when the state was becoming powerfully intrusive into private life. The historian Simon Schama has described them as the architects of their time. They were, Schama said, 'the most unlikely of allies.' Their shared cause was to prevent the ride of state murder that began rising in the 1920s and 1930s, and crested in the 1940s, from continuing to rise.
20세기 중엽에 이들 두 사람은 함께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두 개의 전체주의적 위협에 대응함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知的(지적)으로 길을 안내하였다.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날에 Churchill은 “그것은(전쟁)은, 그것의 내재적인 본질(quality)의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권리를 難攻不落(난공불락)의 磐石(반석) 위에 확립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진보(stature)를 확립하고 재생시키는 전쟁입니다.”라고 발표하였다. Orwell은 같은 사상을 보다 平易(평이)한 문체로서 표현하였다: 그는 2년 뒤에 “우리는 자율적인 개인이 존재하는 것을 끝내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초조하게 말하였다.
Orwell과 Churchill은 그들의 세기(20세기)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마르크스가 생각하였듯이 누가 생산수단을 지배하느냐 또는 Freud가 가르친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어떻게 기능하느냐가 아니고 국가가 개인의 私生活(사생활)에 강력하게 침범하고 있는 시대에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보존하느냐라는 것을 통찰하였었다. 역사학자 Simon Schama는 그들은(Orwell과 Churchill) 그 시대의 건축가들이라고 記述(기술)하였다. Schama는 그들은 “가장 있을 수 없는 동맹자들”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공유하는 목적(cause)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일어나기 시작해서 1940년대에 정점에 달한 살인 국가의 走行(주행)이 계속 증가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6-2-33
The heart of both men's stories is in the same crucial period from the rise of the Nazis until the aftermath of World War Ⅱ. In this period, when so many of their peers gave up on democracy as a failure, neither man ever lost sight of the value of the individual in the world, and all that that means: the right to dissent from the majority, the right even to be persistently wrong, the right to distrust the power of the majority, and the need to assert that high officials might be in error―most especially when those in power strongly believe they are not. As Orwell once wrote, 'If liberty means anything at all, it means the right to tell people what they do not want to hear'―most especially for him, facts that they did not want to acknowledge. He pursued that very specific right all his life.
두 사람의 이야기의 핵심은 나치스의 興起(흥기)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시기에 놓여 있다. 이 시기에, 그들의 너무나 많은 동료들이 민주주의를 패배한 것이라며 포기하였을 때 이들 중 한 사람도 이 세상에 사는 개인의 가치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결코 잊어버리지(lose sight of) 않았었다: 다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 심지어 영속적으로 틀릴 수도 있는 권리, 대중의 권력을 불신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고위 관리들이 오류에 빠져 있다고 주장할 필요성을―매우 특히 권력자들이 그들이 오류에 빠져 있지 않다고 믿고 있을 때―(결코 잊지 않았다). Orwell이 한때 썼던 것처럼 “만약 자유가 뭔가를 조금이라도 의미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특히 그에게는 사람들이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는 그 매우 특별한 그 권리를 일생동안 추구하였다.
6-3-34
At the first school Churchill attended, flogging was used freely, to the point of causing screaming and bleeding. 'How I hated this school,' Churchill wrote. Eventually his parents transferred him to that small, enlightened academy in Brighton where Churchill, who may have suffered from some sort of attention deficit disorder, wisely was allowed to pursue only the subjects that interested him, which he recalled as 'French, History, lots of Poetry by heart, and above all Riding and Swimming.' But even there, though happier, Churchill managed to be ranked last in the conduct.
Later in school, his housemaster found that Churchill was notable for 'his forgetfulness, carelessness, unpunctuality, and irregularity in every way.' Despite these flaws, as a teenager he somehow learned to write. 'I got into my bones the essential structure of the ordinary British sentence―which is a noble thing,' he wrote. His ability with the English language would become his major asset in both his careers, politics and writing. He would go on to publish some fifteen million words in his lifetime. But his formal education stopped there, and all his life he would have large gaps in his knowledge.
Churchill이 다녔던 첫 번째 학교에서는 매질이 비명을 지르고 피를 흘리는 정도까지 자유롭게 실행(used)되고 있었다. “나는 이 학교를 너무나 싫어했었다”라고 Churchill은 썼었다. 마침내 그의 부모는 Churchill을 Brighton에 있는 작고 계명된 학교(academy)로 전학시켰고, 아마도 일종의 주의결핍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may have suffered) Churchill은 현명하게도 이 학교에서 그에게 흥미를 주는 과목만 추구하도록 허락받았으며, 이 과목들은 “불어, 역사, 많은 詩(시)의 암송, 무엇보다도 승마와 수영”이라고 그는 회상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Churchill은 전보다는 행복하였지만 품행성적(conduct)은 꼴찌였다.
후에 학교 기숙사 舍監(사감)은 Churchill은 “그의 건망증, 부주의함,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 모든 면에서 난잡한 행동”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십대(teenager)일 때 여하튼 글쓰기를 배웠다. 그는 “나는 일반적인 영어문장의 기본 구조를 뼛속까지 집어넣었다―이것은 훌륭한 일이다”라고 썼다. 그의 영어능력은 그의 직업과 정치와 집필 양면에서 그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었다. 그는 일생동안 1500만 단어를 출판할 것이었다. 그의 공식교육은 거기에서(그 학교에서) 끝나게 되었고 그래서 일생동안 지식에서 많은 빈틈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6-4-35
Churchill emerged from school, he recalled, 'considerably discouraged.' His parents considered him not clever enough to become a lawyer, so he was shunted to the army, a common destination for dull offspring of the British aristocracy. The ground force was easier on the dim-witted than the Royal Navy, which was seen as more important to the defense of the island nation and so was more inclined to a meritocratic approach. But even with that low bar, it took three tries before Churchill was admitted to Sandhurst, the British army's academy for its infantry and cavalry branches. He was accepted into cavalry, for which competition was easier, as many young men could not afford the expense of keeping a line of horses and servants to tend them. As Churchill put it, 'Those who were at the bottom of the list were accordingly offered the easier entry into the cavalry.' The choice also appealed to Churchill's fondness for comfort and pageantry. Not only could he ride instead of walk, but also, he noted, 'the uniforms of the cavalry were far more magnificent than those of the Foot.'
Churchill은 “상당히 낙담한 상태로” 그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고 회상하였다. 그의 부모는 그가 법률가가 될 만큼 똑똑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는 군대로 돌려지게 되었는데 이런 일은 영국 귀족의 둔한 자손들의 공통된 운명이었다. 둔한 사람들에게는 지상군(육군)이 해군(Royal Navy)보다는 들어가기가 더 쉬웠는데 해군은 섬나라 방어에 더 중요하다고 간주되었고 그래서 해군은 실력위주의 모집방법(approach)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렇게 낮은 입학기준(low bar)에도 불구하고 보병과 기병을 위한 영국 육군사관학교인 Sandhurst 입교를 위해 세 번이나 시험을 쳐야 했다(three tries). 그는 기병과에 입학되었는데 이는 기병과가 많은 젊은이들이 軍馬(군마)와 군마를 관리할 하인들을 유지할 비용을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쟁이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Churchill이 언급한 바와 같이 “따라서 명단(the list)의 밑바닥에 있는 지원자(those)들에게 기병과에 대한 더 쉬운 입학이 제공되었었다.” 그 선택은 또한 안락함과 壯觀(장관)을 선호하는 Churchill의 마음에 딱 들어오는 것이었다. 도보(walk) 대신에 말을 타고 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병의 제복은 보병보다는 훨씬 더 멋졌었다(magnificent)”라고 그는 말하였다.
6-5-36
The novel (1984) begins with a matter-of-fact but disturbing statement: 'It was a bright cold day in April, and the clocks were striking thirteen.' That is, by the end of the sentence, the reader is being taken into a world that is different, probably gone very wrong. The second paragraph begins with the sentence, 'The hallway smells of boiled cabbage and old rag mats.' The ominous sense is then confirmed at the end of that paragraph, when the hero ―identified twice, each time as 'Winston'―passes captioned 'BIG BROTHER IS WATCHING YOU,' emphatically capitalized in the text.
By the end of the book's first page, it is clear that the author knows what he wants to say and how to say it. We are introduced to a world in which objective reality does not exist, or at least is deemed to be illegal by the all-seeing state. There is universal surveillance, conducted by 'the Thought Police' using 'telescreens' that simultaneously transmit and receive, and delicate enough to sense an accelerating heartbeat. 'It was even conceivable that they watched everybody all the time,' Orwell writes, foreseeing today's electronically omniscient state. Winston gazes out the window of his apartment and sees, a kilometer away, looming on the building of the Ministry of Truth, the three slogans of the Party: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
The author goes on to describe the other government departments: the Ministry of Peace, 'which concerned itself with war,' the Ministry of Plenty, and the Ministry of Love, responsible for police functions. This last one 'was the really frightening one. There were no windows in it at all.' These are the arms of the monster in Orwell's modern horror story.*
소설(1984)은 “4월의 춥고 맑은 날이었고 시계는 오후 1시를 치고 있었다”라는 평범하지만 불안한 말로서 시작된다. 즉 그 문장의 끝쯤에 가서 독자는 다르고(정상적인 세계와는), 아마도 매우 잘못되어 버린, 어떤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두 번째 節(절)은 “현관은 끓인 양배추와 낡은 누더기 매트 냄새가 나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러고 나서 그 節의 끝에 가서 주인공이―두 번이나 그때마다 'Winston'으로 확인되는데―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원본대로 대문자로 제작된 '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는 표어 옆을 지나갈 때 불길한 느낌이(이 소설의) 확인된다.
소설(the book)의 첫 페이지의 끝에 오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기를 원하며 그것을 어떻게 표현(say)할 것인가가 분명해진다. 우리는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고 혹은 적어도 全知(전지: 모든 것을 보고 있는)의 국가에 의해서 객관적 사실이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세계에로 안내된다. 전반적인 감시가 있으며 이 감시는 송수신을 동시에 하고 加速(가속)하는 심장박동까지 감지할 만큼 민감한 'telescreens'을 사용하는 사상경찰에 의해서 수행된다. Orwell은 오늘날의 電子(전자)적 全知(전지)국가를 예견하면서 쓰고 있다. Winston은 아파트의 창밖을 응시하면서 1km 떨어진 곳에 眞理省(진리성) 건물 위에 어렴풋이 보이는 黨(당)의 세 개의 슬로건을 보게 된다.
전쟁은 평화이다
자유는 노예의 신세이다
무식이 힘이다
저자는 계속해서 정부 部處(부처)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전쟁에 관여하는 平和省(평화성)과 풍요성(물자의 생산과 보급을 담당하는) 그리고 경찰 기능을 담당하는 愛情省(애정성)(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이 마지막 省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그 안에는 창문이 전혀 없다.” 이것들은 Orwell의 현대 공포소설에 나오는 괴물의 팔들이다.
6-6-37
For Winston, as for the author, the most significant act in life is not to speak out or to be published, but simply to observe accurately the world around him. Collecting the facts is a revolutionary act. Insisting on the right to do so is perhaps the most subversive action possible. Underscoring the connection, Winston does this and then writes emphatically in his diary, 'DOWN WITH BIG BROTHER.' He is especially provoked by the party's insistence that only it could determine what was real and what was not. 'The party told you to reject the evidence of your eyes and ears,' he thinks at one point. 'It was their final, most essential command.' But Winston, dangerously, is beginning to think for himself, writing in his diary, 'Freedom is the freedom to say that two plus two make four. If that is granted, all else follows.'
저자와 마찬가지로 Winston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은 거리낌 없이 말하거나 출판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 세계를 단순히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사실을 수집하는 것은 혁명적 행동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possible) 가장 큰 국가 顚覆(전복) 활동이다. 그 관련성(사실을 수집하는 권리와 전복활동 간의)을 강조하면서 Winston은 이런 활동(사실수집기록)을 하고 일기에다 “대형을 타도하자”를 강한 어조로(emphatically) 쓴다. 그는 당만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이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당의 주장에 특별히 화가 났었다. 그는 어느 순간에 “당은 너희들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증거를 거부하라고 말했었다”라는 말을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의 최종적이고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명령이었지.” 그러나 Winston은 위험하게도 “자유는 2 플러스 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이다. 만약 그런 자유가 허용된다면 다른 모든 자유도 따라온다”라고 쓰면서 독자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