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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다단계에 속는 사람들 엄상익(변호사)  |  2020-08-12
한 다단계 사업의 강연장이었다. 검은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맨 오십대의 중후한 신사가 청중들을 향해 말했다.
  
  “좀 황당한 말을 해 보겠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물건을 이백만 원가량 구입했더니 물건을 주고 거기다 나중에 은행통장으로 삼백만 원까지 보내주더라 하면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세상에 물건 주고 돈 주고 그렇게 하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다 줘도 감당이 안 될 거 아닙니까? 그런 제 말이 사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그게 현실화되면 어떨까요?”
  
  이어지는 그의 말에 사람들은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나의 변호사 사무실로 몇 사람이 찾아왔다. 재래시장에서 계란장사를 삼십 년 했다는 아주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회장님의 연설을 들었슈. 딱 보니께 세상에 그런 훌륭한 사람이 없었슈. 나도 계란장사했지만 사업 얘기도 맞아유. 중간에 여러 명이 끼니까 산지에서 단돈 천 원짜리가 소매상에서 만오천 원이나 한다니께유. 이문을 중간놈들이 다 먹어유. 회장님은 우리들이 조직을 만들어 그 이문을 남 주지 말고 우리 회원끼리 나누자고 했어유. 서로서로 이익이쥬. 우리는 가족이라고 했어유. 그래서 우리 식구가 전부 가입했다가 쫄딱 망했어유.”
  
  “어떻게 망했는데요?”
  내가 물었다.
  
  “이문이 많이 남는다는 정수기를 받아 가지고 왔어유. 그런데 그게 팔리지를 않았어유. 회사에 물어보니까 안팔려도 나중에 그 정수기 값보다 훨씬 많이 쳐서 이문을 준다고 했어유. 기다렸쥬. 그랬더니 그 말대로 내 통장에 하루에 이만 원씩 또박또박 들어오는 거유. 원금하고 대비해서 계산해 보니까 시장판의 딸라 이자보다 높은 거예유. 그렇게 돈놀이하는 게 훨씬 낫겠더라구유. 그래서 한번 왕창 벌어볼려구 여기저기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꿔서 오억오천만 원을 그 회사에 가져다 넣었쥬. 그런데 하루에 이만 원 주던 돈이 어느 날부터 이천 원밖에 주지 않는 거유. 속았쥬.”
  
  이번에는 옆에 앉아 있던 육십대쯤의 점잖아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은행에 삼십 년 동안 근무하다가 지점장으로 퇴직한 사람입니다. 이건 물품판매라기보다는 펀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우연히 강연을 들으면서 그걸 펀드로 생각해서 가정해 봤죠. 이백만 원을 들여놓았더니 한 달 후부터 하루에 이삼만 원씩 통장으로 입금이 되더라구요. 한 달에 육십만 원이라고 치고 이억만 넣으면 육천만 원이 떨어지는 겁니다. 정말 대단한 이율이죠. 제가 은행에 있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계산해 봤어요. 컴퓨터로 시뮬레이션도 해 봤어요. 계산이 가능하다고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투자했죠. 주식투자 같이 들어오는 돈이 어느 기준 이하로 되면 발을 빼야겠다고 계산을 했는데 그만 물려버렸죠. 하루 만 원이 들어오던 게 갑자기 천 원으로 폭락한 겁니다.”
  
  그렇게들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얼마 후 나는 그 다단계 회사 근처의 미용실에 들어갔다. 사십대 중반쯤의 여성 미용사 혼자 하는 가게였다.
  
  “이 근처에 있는 다단계 회사의 회원들이 많이 오죠?”
  내가 미용사에게 물었다.
  
  “손님으로 많이 오시죠. 저보고 많은 사람들이 다단계 회사 회원으로 가입하라고 권해요. 그 회원이라는 사람들이 제가 사람들 머리를 자르는 걸 보면 자기네같이 회원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살 돈이 매달 떨어지는데 왜 힘들게 노동을 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저를 불쌍하게 보고 동정을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미용기술을 배워 이십여 년 동안 혼자 미용실을 해 왔어요. 내 노동으로 내 밥을 벌어먹는 게 좋지 가만히 앉아서 돈이 떨어지는 그런 건 싫어요. 세상은 그렇게 단번에 부자가 되게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미용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들은 욕심이라는 색안경이 끼거나 이기심이라는 색맹의 눈으로 세상을 본 것 같았다. 바르게 보는 눈이 없으면 표적을 잘못 겨냥한 것처럼 처음부터 비뚤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 내면에도 문제가 있었다. 정직한 땀으로 버는 돈이 진짜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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