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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쌍화점(雙花店)'과 가을타는 여인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똥개'들, 시대착오적 계몽군주…국민은 분초(分秒)도 놓치지 않고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문무대왕(회원)  |  2020-10-24
소슬(蕭瑟)바람 불어오니 가을을 타는 여인은 외로움과 쓸쓸함에 우울증이 도졌나보다. 홋치마 치맛폭 속으로 스며드는 쌀쌀한 기운이 여인의 깊은 계곡을 감싸 도니 언덕배기 두둑의 무성했던 잡초도 무서리에 시들고 말았구나. 늦가을 가뭄으로 수량(水量)이 줄어들어 산골짜기 소수력발전소(小水力發電所)의 터빈을 돌리는 물레방아도 멈춰섰네. 폐경(閉經)을 훨씬 넘긴 가을 타는 여인은 꿈도 야물딱지게 가임(可妊)의 망상(妄想)에 사로잡혀 있네. 반백초로(半白初老)의 일월춘추(日月春秋)에도 버리지 못한 색욕(色慾)과 권욕(權慾)은 불타고 있네. 가을 타는 욕정녀(慾情女)는 오늘도 찬 서리가 내리기 전에 '끝물고추'라도 따서 황홀한 체취(體臭)를 냄새 맡으려 발버둥치고 있네. 참으로 그 모습이 탐욕스럽고 추하기가 정말 가관(可觀)이로구나. 이 방(房), 저 방,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그 몸부림이 색음괴성(色音怪聲)이라, 그 요상하고 음탕한 신음소리가 다름 아닌 지랄발광(發狂) 같다는 소문으로 온 나라 안을 시끄럽게 휘저으며 떠돌아다니네. 그 옛날 여말(麗末)의 "쌍화점(雙花店)"이 오늘에 환생(還生)한듯하다고 저잣거리 여인들이 수군거리고 있네.
  
  2008년 12월에 방영된 영화(映畵) ‘쌍화점’의 줄거리는 이렇다.
  
  <격정의 고려말, 공민왕과 호위무사 '홍림', 원(元)나라의 억압을 받던 고려말, 친위부대 건륭위의 수장 '홍림'은 대내외적 위기에 놓인 왕을 보필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후사(後嗣) 문제를 빌미로 원(元) 나라의 무리한 세자책봉(世子冊封) 요구는 계속되고, 정체불명의 자객(刺客)들이 왕의 목숨을 위협하자, 공민왕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선택, 엇갈린 운명. 왕의 명령이라면 목숨처럼 따르는 '홍림', 공민왕은 고려의 왕권(王權)을 넘겨 줄 자신의 원자(元子)를 얻기 위해 '홍림'에게 왕후와의 대리궁합을 명해 왕후가 임신하기를 바라는 허황된 연극을 연출시킨다. 충격과 욕망이 엇갈린 그날 밤, 세 사람의 운명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금기(禁忌)의 사랑과 역사의 광풍에 휘말린 이들의 대서사시가 시작된다(네이버 자료 인용).>
  
  한마디로 요약하면 후사(後嗣)가 없는 왕(王)이 왕권(王權)을 계승할 왕자(王子)를 얻고자 호위무사에게 왕녀(王女)와의 하룻밤 불륜의 사랑을 윤허(允許)한다. 어리석고 노쇠한 왕의 무기력에 쾌감을 느끼지 못해 온 왕녀(王女)는 젊음의 싱싱함과 교접(交接)한 뒤 매일 밤 호위무사를 궁궐로 불러들여 엽색행각(獵色行脚)을 일삼는다. 호위무사의 정력과 왕녀의 몸부림이 연출하는 '섹스파티'는 궁성(宮城)의 밤 정적을 깨트린다.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는 왕의 초췌하고 나약한 행색이 망해가고 있던 고려왕조(高麗王朝)의 처참한 시대 상황처럼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고려 말 궁궐에서 벌어진 지랄발광의 사육제(謝肉祭)는 고려의 국운(國運)을 무너뜨린 기폭제가 됐다. 비록 색욕과 권력욕이란 다름은 있지만 고려 말기와 오늘의 시대 상황이 다른 게 무언가? 잠꼬대나 하고 있는 멍텅구리들에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쓰라린 역사를 기억하는 자에겐 번영이 있을 것이고, 망각과 착각 속의 어리석은 무리에겐 파멸이 있을 것이다. 지랄발광은 개지랄을 낮추어 말하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잘난 척하는 짓거리가 몸에 밴 자들의 경거망동”을 말한다.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은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세월이 장차 저묾 것임을 알고, 병 속의 물이 어는 것을 보고 천하가 추워짐을 안다(見一葉落而知歲之將暮, 觀甁中之氷而天下之寒)"고 했다. 나뭇잎 하나 떨어짐이 인간 세상의 저묾을 예고하는 선현(先賢)들의 경구(驚句)라면, 저묾은 어두움이요, 몰락(沒落)이고, 파멸(破滅)이 아닌가?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경고는 없을 것이다.
  
  또 당나라(唐)의 문록(文錄)에는 "산속의 스님은 날짜 세는 법을 모르니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온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전하고 있다(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 상황을 캄캄한 암흑의 동굴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한 잎 나뭇잎 같은 존재들은 어떤 자들인가?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서글프고 몹쓸 소인아첨배(小人阿諂輩)들인가? 아니면 도둑이 던져준 고깃덩어리를 처먹느라고 정신을 잃어버린 채 도둑이 들어와도 짖지 않는 똥개(糞犬) 같은 자들인가? 미련하고 아둔한 믿을 수 없는 시대착오적 독한 계몽군주(啓蒙君主)인가? 독재군주인가? 원(元)나라 때의 중국과 시진핑의 중화인민공화국은 달라진 게 있는가? 예나 지금이나 그놈이 그놈들 아닌가? 정신 차릴지어다. 온 국민은 분초(分秒)도 놓치지 않고 눈을 크게 부릅뜨고 "지랄발광하는 현장탐색(現場探索)"을 지켜볼 것이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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