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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용광로라면 당신은 神이 이 나라를 위해 보낸 匠人” 故이건희 회장 영결식 추도사 全文 金弼圭(前 KPK통상 회장)  |  2020-10-28

이건희 회장!

너무나 애통한 마음이어서 무슨 말로도 형언 못 할 순간입니다. 어찌 인간의 말로 이 애끓는 마음을 다 전하고,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홍 여사님과 아드님 그리고 두 분 따님들께는 정말로 여쭐 말씀을 찾기 힘듭니다. 

이건희 회장!

다시 한번 존경하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불러봅니다. 존경하는 마음이란 아시아의 변방에 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현대산업 기술의 총아인 전자산업에서 세계 챔피언으로 우뚝 세워 놓은 공로에 대한 고마움이요, 안타까운 마음이란 6년 넘어 투병해온 당신에게 의료과학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신의 손길이라도 내려와 어루만져 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해 왔던 마음입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건 1958년 봄, 서울 중구 을지로 6가에 있던 서울사대부고 강당 한구석의 레슬링 반에서였습니다. 7~8명의 신입생 레슬링반 지망자들과 상견례를 하던 중 유난히 피부가 희고, 눈이 깊고, 귀티가 나는 당신을 발견하고 내가 물어봤지요. 왜 하필 레슬링반을 지원했냐고.

당신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몇 년을 일본에서 살았는데, 당시 세계 프로레슬링 챔피언으로 모든 어린이들의 영웅이었던 역도산의 경기를 많이 보고 존경했기 때문에 레슬링이 하고 싶어졌다고요.

당시 우리 서울사대부고는 한국고등학교 레슬링의 챔피언이었고, 시합은 대부분 장충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마침 이 회장의 댁이 장충체육관 길 건너편에 있어 자연스레 댁에 드나들며 출전 준비도 하곤 했지요. 우리를 어머님이신 박두을 여사께선 따듯하게 돌봐 주셨고요.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철망으로 만든 우리 안에서 커다란 독일산 도베르만 두 마리가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 침대에서 놀고 있던 눈처럼 희고 작은 스피츠 강아지도 처음 보았습니다. 수년 전 홍라희 여사께 이 스피츠 얘기를 했더니 이 회장께서 15년이 넘도록 사랑한 개인데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오던 회장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하며 2층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습니다.

레슬링반에서 처음 만난 지 1년 후 3학년이었던 저는 졸업을 했습니다. 그 뒤 30~40여 년을 먼 발 치에서 당신의 전설적인 활약을 보며 내 일처럼 박수를 보내고 고마워하곤 했습니다.

당신은 마치 바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가끔 거칠고 빠르게 움직일 때도 있었지만 대게는 깊고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자신의 말은 아끼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과묵한 성품으로 언론에도 잘 나서지 않았습니다. 고요하고 깊은 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동창회, 결혼식, 장례식 같은 세상 모임에도 발길을 안 하는 까닭에 참으로 오랜 기간 사람들이 당신의 진면목을 보지 못 했습니다.

서울사대부고 은사님이신 한우택 선생님은 동창생들에게 그런 당신의 속 모습을 직접 보고 전한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한국럭비협회 임원 자격으로 1964년 동경올림픽에 참가하셨다가 이 회장의 배려로 이 회장 댁에 묵으면서 동경 구경을 며칠 더 할 수 있었답니다. 이 회장은 당시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이 회장의 방에 올라가 보니 각종 전자기기와 부품들이 한방 가득 했었다고 합니다. 그 방에서 이 회장은 라디오, 전축, TV 등 전자제품들을 조립하고,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밤을 새곤 했답니다. 후일 평생의 사업이 된 전자산업의 기본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귀국한 후 부회장 직함으로 일하실 때에도 많은 루머가 떠돌아다녔지요. 매일 매일 정상 출근을 안 하고 한남동 자택에서 무엇인가를 하신다는 소문이. 지금 생각하면 그때쯤엔 이미 반도체 산업에 천착해 후일 선대회장께 메모리반도체 산업에의 과감한 투자를 강력 진언할 준비를 하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즈음 은퇴한 일본의 우수한 기술자들을 댁으로 초치해 선진기술을 익히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오늘날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당신의 이런 치열함이 모태가 됐습니다.

요즘 미술이나 건축하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회자되는 루드비히 미스 반 데 로에(Ludwig Mies van de Rohe)의 말이 있습니다. “God is in the details.” 이 말이 이 회장 머릿속엔 “God is in the qualities”로 각인되어 있은 듯합니다. 당신은 입버릇처럼 “품질로 승부한다” “불량품은 암이다”라며 품질 지상주의를 주장하셨지요. 세상이 용광로라면 신은 하늘이 보낸 장인(匠人)이고, 대한민국이 용광로라면 당신은 신이 이 나라를 위해 보낸 장인인 것입니다.

대저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극복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성공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은 심리적 부담과 압박을 받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고 선대의 유업을 크게 융성시키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비를 이긴다 하기 보다는 아비를 능가한다는 것으로 효도의 첫걸음이라고 배운 말입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세계 각국을 둘러보아도 이 회장만큼 크게 승어부하여 효도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당신이 삼성을 100배, 1000배 키웠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그 성취의 크기를 수량으로만 가늠해선 안 될 것입니다. 성취의 내용과 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를 여행하며 맛볼 수 있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어떻게 수량으로 가늠 할 수 있겠습니까?

“삼성이 하면은 뭔가 다르다” 삼성을 칭찬하는 찬사 가운데 이보다 더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말은 없을듯합니다. 1976년 캐나다의 몬트리올 하계올림픽에서 건국 후 최초로 레슬링에서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여 온 국민을 열광시킨 뒤에는 레슬링 선수 출신인 당신의 삼성이 있었고요, 2010년 캐나다의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경악시키며 모태범 선수와 이상화 선수가 남녀 500m에서 각각 금메달을 동반 획득한 것도 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에서 회복하기 위해 직접 시작하셨던 승마도 후원하시었습니다. 이렇게 비인기 종목인 레슬링, 스케이팅, 승마 등을 후원하여 드디어 승마에서도 아시아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지요. 

올해로 삼성전자가 51주년을 맞았습니다. 한국의 자존심입니다. 삼성전자가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50여 년 전에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외치며 반도체의 불모지인 이 땅에 21세기의 기적 삼성전자를 심고 정성으로 키운 삼성가(家)에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올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 달러로 세계 5위라고 합니다. 미국 기업들을 빼면 독일, 일본의 유수 기업들을 제치고 가장 순위가 높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선 지난 100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당신의 삼성전자를 꼽았습니다. 참으로 거인의 위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선각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회장!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불꽃을 심어 주었으며, 그 빛은 영원할 것입니다.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선대회장의 어깨너머로 배웠듯이 당신의 어깨너머로 배운 재용 군이 이제부턴 당신 못지않은 열정과 선견으로 삼성의 새로운 역사를 탄탄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부진, 서현 두 분의 따님들도 유능한 경영자로 성장했으며, 무엇보다도 이들 뒤에는 당신의 보물 1호인 홍라희 여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또 인재(人才) 제일의 모토 아래 발굴하고 성장시킨 삼성가족들이 당신이 이룩해놓은 성취를 잇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불러보렵니다. 이 회장!

온통 치열함과 비범함으로 가득했던 당신의 삶에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당신이 남기신 공덕이 산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을 우리들이 보고 있습니다. 부디 천상낙원에서 영생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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