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에 이런 기사가 있다 “다이애나의 수줍은 이 미소 39년 만에 다시 우리에게 왔다.” 우리에게 와서 좋냐? 바람둥이 여편네가 죽은 할애비보다 반갑냐?
저 여자는 영국 왕세자빈이면서도 인류를 위해 공헌한 바도 없다. 성실하게 살아서 노인을 흐뭇하게 하지도 않았고 아름답게 살아서 젊은이에게 교훈이 되지도 않았다. 도리어 분의(分義:자기 분수에 맞는 도리)를 잊고 허영된 생활을 즐겼다. 만족할 줄을 모름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어쩐 일인지 듣도보도 못하던 다이애나의 결혼식을 중계방송했다. 길가던 우리도 TV 판매 가게의 쇼윈도를 통해 구경했다. 그녀는 평민이었다. 영국 왕실이 평민과 결혼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로써 그녀는 한 손엔 영국 왕세자빈 감투를 또 한 손엔 스타 뺨치는 인기를 거머쥐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궁벽하고 구석진 곳에 사는 우리도 들떠서 그녀의 결혼식을 보았다. 그녀에게는 하늘이 내린 복이었다. 그 행운을 아끼고 가꾸며 길이 보존할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참람하여 자신의 출신과 처지를 망각하고 맨날 왕자에게 대들고 다투었다. 끝내는 대놓고 바람을 피웠다. 보란 듯이 바람을 피우고 귀가하다가 터널 벽을 들이받고 교통사고로 죽었다. 역시 평민은 평민이었던 것이다. 그가 죽은 지 이미 40년이 되었다. 조선일보가 느닷없이 그녀의 사진 한 장을 놓고 즐거워하고 있다 이유가 뭔가?
가수나 배우가 불륜을 저지르면 언론과 무대는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숱한 세월이 흐르고 본인이 사과를 한 연후에 어쩌다가 무대를 내주기는 했다. 그랬지만 이전의 인기를 되찾지는 못했다. 무대를 내주지 않은 것은 바르게 살라는 무언의 가르침이요 인기 회복을 못한 것은 하늘의 벌이리라. 다이애나는 세계가 보는 데서 부부 싸움을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한 적도 없고 불륜을 범한 것에 대해 고개를 숙인 적도 없다. 조선일보는 뭐가 그렇게나 반가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