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흔 생성 방향 알 수 없지만 창밖에서 쏜 것” 국과수 감정인이 헬기 사격을 추정한 사실상 유일한 논거는 전일빌딩 10층 바닥 탄흔의 탄도다. ‘10층 바닥 탄흔은 하향(下向) 탄도에 의한 탄흔인데, 전일빌딩 주변에는 10층보다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에 헬기 사격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감정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감정서를 본다. 〈원칙적으로는 ‘분화구상 탄환의 끝부분이 충격한 위치의 방향성’을 보고 탄흔의 생성 방향을 구분할 수 있으나, 전일빌딩 10층 바닥은 작은 돌멩이가 대리석에 붙어 있는 테라조로 시공되었는데 여기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돌멩이 모양에 따라 탄흔이 생기기 때문에 탄흔의 생성 방향을 판단할 수 없다.〉 바닥의 하향 탄흔 생성은 총알이 건물 외부에서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왔을 경우와 10층 방송실 출입문에서 창문 쪽으로 발사했을 경우로 상정해볼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인은 “탄도의 생성 방향을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출입문에서 창문 쪽으로 발생했을 경우는 배제하고 ‘창문 밖에서 실내로 들어온 탄흔’이라는 것을 전제로 논거를 세웠다. 전두환 측 변호인은 반박했다. “감정인의 감정 결과에 의하면 전일빌딩 10층 바닥에는 91개의 탄흔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격은 창문과 출입문 둘 중의 한 곳에서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테라조 바닥의 함몰의 형태가 일정하지는 아니하다 하더라도 91개의 탄흔을 조사하면 적어도 둘 중의 하나, 즉 창문 방향인지 출입문 방향인지 여부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화구의 형태만으로는 방향성을 알 수 없다는 해명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변명입니다.” 감정인은 또 창틀·바닥의 일직선 탄흔, 기둥·바닥의 일직선 탄흔이 창밖에서 들어온 흔적이라고 감정했다. 창틀과 기둥에 1차 탄흔을 생성하고 바닥에 2차 탄흔을 만들었다는 판단이다. 변호인은 탄환이 바위나 대나무 등의 딱딱한 물체에 부딪쳐 탄도를 이탈하는 ‘도탄 현상’으로 감정인 논거의 오류를 지적했다. “도탄은 발사체의 속도, 재질, 표적 입사각도와 출동하는 물체의 재질 등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튕겨져 나갑니다. 탄환은 단단한 물체에 충격하여 도탄이 될 경우에는 입사각과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기 때문에 절대로 직진할 수는 없습니다. 창틀과 기둥은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단단한 물체에 해당합니다.” 헬기에선 불가능한 상향사격 탄도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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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변호인 측이 전일빌딩 10층 천장 위 슬레이트에 상향사격할 경우 빌딩과 사격 지점 간 이격 거리 측정을 위해 그린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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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빌딩 10층 내부 기둥, 천장, 천장 위 슬레이트에서는 수십 개의 상향사격에 의한 탄흔도 발견됐다. 그중 창문에 가장 근접한 탄흔의 탄도는 수직에 가까운 것으로, 국과수 감정인은 재판부에 제출한 추가 감정서에서 70도의 상향탄도로 기록했다. 전일빌딩 10층 천장에 상향사격을 하려면 헬기는 10층보다 낮게 날아야 한다. 전두환 측 변호인은 “헬기 고도를 전일빌딩 5층 높이(13.4m)로 전제했을 때 70도의 상향사격이 가능한 사격 지점과 전일빌딩 간의 이격 거리를 측정하면 6.4m에 불과하다. UH-1H의 헬기 블레이드만 해도 10m가 넘기 때문에 이런 근접 비행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반론을 폈다. 오히려 이 상향탄흔의 존재가 헬기 사격이 없었음을 보여준 셈이다. 국과수 감정인은 ‘고도를 내릴 수도 있지만 같은 고도에서 동체의 기울기를 조절하면 상향탄도를 만들 수 있다’는 논지로 증언했다. 하지만 평생 UH-1H 헬기를 조종했고, 월남전에 두 차례 참전하였으며, 육군항공여단장을 역임한 백성묵 장군의 증언은 다르다. UH-1H가 호버링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비스듬하게 기울게 되면 실속(失速)하여 추락한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헬기는 블레이드의 회전을 통해 공기를 아래로 내뿜어 양력을 얻어 비행한다. 그런데 헬기를 기울이면 이 양력이 소멸해 추락하게 된다. 따라서 국과수 감정인의 증언처럼 헬기 동체를 기울여 상향탄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상향사격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국방부 특조위는 상향탄흔에 대해서는 조사결과보고서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감정인의 증언에 따르면,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외벽에는 탄흔으로 볼 수 있는 흔적이 10여 개, 실내에는 213개가 있다고 한다. 5·18 때 203항공대장이었던 백성묵 장군은 “만약 UH-1H 헬기에 장착된 M60 기관총으로 10층 방송실을 향하여 사격하였다면 90%는 전일빌딩 외벽에 맞았을 것이고, 실내로 들어간 실탄은 10%가 넘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과수 감정 결과와 반대되는 증언을 했다. 국방부 특조위 조사에서도 5·18 당시 505부대 헬기 조종사인 이병욱 대위는 “(헬기 사격으로는 전일빌딩 탄흔 분포 같은) 그런 피탄 흔적은 나올 수가 없다. 이런 것은 시험을 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직접 사격을 해보고 피탄이 어떻게 흩어지는지를 보여줘야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런 기둥에 한 발이 맞을까 말까 하는 것이 정상이다. 힘들다. 10층 전체에 퍼지거나 7층에서 10층까지 전 지역에 피탄 흔적이 발견되어야 설명이 된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특조위 조사결과보고서에 소수의견을 낸 최해필 장군(전 육군항공작전사령관)도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전일빌딩의 탄흔에 관해서도 높은 빌딩에 남아 있는 탄흔이라고 하는 이유만으로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이라고 주장하기에는 그 탄흔의 밀집도가 아주 조밀하여 헬기 사격 시 발생한 탄흔이 그렇게 밀집될 수가 없기에 반드시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전일빌딩 외벽 전체가 아닌 10층 실내에서만 집중적으로 발견된 탄흔은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건데,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정밀 사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야음 속에서 야간 사격장비 없이 95% 명중률? 국방부 특조위는 정황증거상 “계엄군의 상무충정작전에 참가한 UH-1H 헬기는 1980년 5월 27일 03시30분쯤 전일빌딩 옥상에 LMG(기관총)가 있다는 첩보에 따라 이를 무력화하고 같은 빌딩 내부에 있는 시민군을 제압하기 위하여 M60 또는 M16 총기를 사용하여 전일빌딩을 향하여 사격을 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측 변호인은 허점을 찔렀다. “계엄군 특공조가 상무충정작전에 따라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에 진입한 것은 1980년 5월 27일 04시 정각이고, 특히 전일빌딩에 대한 작전은 같은 날 04시40분에 진입 완료로 작전을 종료하였습니다. 광주광역시의 1980년 5월 27일 일출시간은 05시21분이므로 계엄군 특공조가 도청이나 전일빌딩에 진입한 시간은 밤이었습니다. 5·18 당시 UH-1H 헬기에는 야간 비행장치나 야간 사격장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컴컴한 어둠 속, 흔들리는 헬기에서 야간 사격장비의 도움도 없이 전일빌딩 10층 방송실을 향하여 사격해 10층 방송실 외벽에는 10여 개 남짓의 탄흔만 남기고 214발의 탄환을 실내로 명중시킬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국방부 특조위의 주장에 따르면 UH-1H는 전일빌딩 옥상의 기관총을 제거하기 위해 헬기 사격을 한 것이므로 옥상에서도 다수의 탄흔이 발견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방부 특조위가 신봉하는 국과수 감정인은 옥상에서는 탄흔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모래 위에 쌓은 ‘헬기 사격설’ ‘용납할 수 없는 반(反)인륜적 범죄행위’ ‘대량살상’ ‘학살’ ‘소탕’…. 국방부 특조위가 국군이 국민을 향해 헬기 기총소사를 했다며 내뱉은 말이다. 이런 끔찍한 일이 정말 있었나? 5·18 당시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들은 30여 년 동안 일관되게 “무장한 채 출동했지만 한 번도 쏘지 않았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해왔다. 국방부 특조위는 이들의 증언이 무장헬기 출동을 시인한 것이라면서 “무장한 헬기가 출동했으므로 헬기 사격이 있었을 것”이라는 비약적 논리구조를 만들어냈다. 구름이 끼었으므로 반드시 비가 왔다는 식의 억지가 국가 보고서에 기록되었다. 구두로 헬기 사격을 지시하는 상관에게 “사격 못 한다”고 대들고 “시키는 대로 하지 무슨 말이 많으냐”는 힐난을 들으면서도 정식 서면 명령서를 요구하며 끝내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는 헬기 조종사들의 영웅적 행동은 ‘구두 명령’에만 방점이 찍혀 “명령이 있었으므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논리 왜곡에 희생됐다. 국방부 특조위가 전일빌딩 헬기 사격의 근거로 삼았던 국과수 감정 결과는 바닥 탄흔의 방향이나, 과학적으로 바닥의 탄흔이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올 수 있는지 여부, 호버링하는 헬기에서 감정인이 추정하는 하향 또는 상향 탄도의 사격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전혀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 국과수 감정인은 재판장의 심문에 감정서와 상충하는 대답을 했고, 헬기 사격 결론을 도출할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제시할 수 없지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탄흔을 감정했다고 강변했다. 이런 허술한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국방부 특조위는 “(국군이) 대량 살상 능력을 갖춘 무장헬기까지 동원하여 사격을 하고 시민을 살상하는 행위”를 했고 이는 “집단살해 내지 양민학살의 의미”를 갖는다고 단정했다. 헬기 기총소사로 죽거나 다친 사람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고, 단 한 개의 헬기 기관총 탄피도 제시되지 못했다. 과거 국가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는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 결과뿐이다. 때문에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무너지면 22년 만에 극적으로 부활한 헬기 사격설의 망령도 소멸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감정서가 전두환 재판에서 긍정될 것인지, 부정될 것인지이다. ‘악의적 왜곡, 날조’는 누가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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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7일 헬기 사격설을 공식 발표한 이건리 5·18 특별조사위원장은 최근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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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은 당론으로 ‘5·18특별법’ 제정을 확정했다. 만장일치였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 왜곡, 날조에 대해 7년 이하 징역, 7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고 5·18 진상조사위 활동은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며 직원도 현재 50명에서 70명으로 늘린다’는 게 골자다. ‘5·18 진압에 가담한 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언제든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검찰부가 합동으로 5·18 관련 사건을 수사하고 “헬기 사격설은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 결정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치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도 5·18 사건을 재수사했지만,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적 차원의 조사에서 수차례 부정된 헬기 사격설을 부실한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법안전감정서에 의존해 뒤집었다. ‘악의적 왜곡, 날조’는 누가 하고 있나?
헬기 사격은 국방부 특조위 주장처럼 자위권 차원을 넘어 ‘국군에 의한 국민 학살’을 뜻한다. 국가 정체성과 정당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국방부가 이런 중대한 사안을 객관적 증거도 없이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발표하고, 아무런 반론도 없이 국가적 사실로 인정되어가고 있다. 집권 여당은 더 나아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법적으로 처벌하겠다고까지 나섰다. 거짓말을 비판하면 감옥에 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역사는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하며 어떤 경우든 정권이 재단해선 안 된다’는 걸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념전쟁은 독재 권력의 전조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적어도 역사 교육에서는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권력으로 밀어붙여 없었던 헬기 사격을 있었던 것으로 조작한다면, 한국은 전체주의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그런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다. 하느님도 과거를 바꿀 수 없는데 법률 기술자들이 과거를 창조하는 재주를 부릴지 전두환 재판의 귀추가 주목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