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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 하루 전 워싱턴 시내에서 겪은 이야기들 주방위군과 펜스로 둘러싸인 의회 인근의 철통보안 金永男  |  2021-01-2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 오전 백악관을 떠나 플로리다로 갔다. 바이든은 이날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며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됐다. 언론들은 이날 연설을 높게 평가했다. 일부 언론은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질 바이든 영부인,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 등이 보라색 계열의 옷을 입고 온 점에도 관심을 가졌다. 민주당의 파란색, 공화당의 빨간색을 융합, 통합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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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주방위군 2만 5000명이 집결, 의회 인근에 바리케이드를 쳐놨다는 뉴스가 방송에서 계속 나왔다. 1월 6일 있었던 의회 폭력 사태 이후 경계수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일부 음모론자들은 트럼프의 마지막 한 방을 위해 이들이 소집됐다는 황당한 주장도 내놨다. 외부인이 워싱턴에 들어오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지하철 일부 역을 닫았다고 했다. 의회 인근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바리케이드가 쳐진 곳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근무를 위한 필수인원이라는 증명서 같은 서류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19일 오후 1시, 워싱턴의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의회로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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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통행이 제한된 곳이다. 의회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가 사실상 모두 통제됐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나는 시내에서 차로 30분, 지하철로 40분 떨어진 버지니아 지역에 살고 있다. 지하철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기에 택시(우버)를 타기로 했다. 차를 가져갔다가는 더 헤맬 것 같았기 때문이다. 60대 백인 기사의 차에 탔다. 그는 버지니아 쪽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다리는 모두 막혔다고 했다. 서남쪽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메릴랜드주로 돌아서 워싱턴 북동쪽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기사는 여기까지가 자기가 들어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위치라며 의회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내려줬다. 의회의 동쪽 면이 먼 발치에서 보였다. 의회로 들어가는 모든 길과 공원에 펜스와 바리케이드가 쳐있었다. 시내는 한산했다. 무장한 군인들은 바리케이드 안에서 외부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서너 명씩 한 조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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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군은 검문소 여러 개를 몇 블락을 사이에 두고 운영했다. 이곳을 지나가는 차량을 세우고 운전자의 신원과 목적지를 확인, 뒷자리와 트렁크에 실린 짐을 확인했다. 총 검문시간은 약 1~2분이었다. 군부대나 보안시설이 아닌 시내 길거리에서 이런 상황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나가는 행인을 검문하지는 않았고 차가 없어 도로에서 걷는 사람들에게만 인도 위에서 걸으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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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워싱턴에서 오바마 2기 행정부 취임식을 본 적이 있다. 며칠 전부터 시내는 미국 전역에서 온 여행객들로 붐볐다. 당시에도 언론은 많은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라고 했었다. 이번에는 과격 시위대의 등장에 따른 충돌을 우려해 통행을 제한했다. 취임식 하루 전 워싱턴 시내에는 일반 시민이나 여행객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전세계에서 온 기자들이었다. 코로나 여파로 여행객도 줄고 출근을 하는 회사원이 줄어든 것 역시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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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의 동쪽에서 기차역인 유니언 스테이션을 지나 계속 서쪽으로 걸었다. 코로나 등의 이유로 참가인원이 제한된 내셔널 몰 잔디밭에 성조기를 꽂아놓은 것을 보고 싶었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계속 막혀 북쪽으로 돌아서 가야 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해질 때까지도 서쪽으로 못갈 것 같아 지하철 역이 열린 곳이 없는지 찾아봤다. 근처에 있는 역 두 곳을 가봤는데 다 닫혀 있었다. 반대 쪽에서 걸어오는 행인에게 혹시 열려 있는 지하철역을 봤느냐고 물었다. 그는 “40년 동안 이곳에 살았는데 이런 일은 처음 본다. 행운을 빈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방위군에게도 지하철역 연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의회 반경을 뜻하는 출입제한 지역에 있는 역은 다 닫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나를 여행객으로 생각했는지 그는 (여행에?) 불편을 줘 미안하다고 했다. 일부 방위군은 워싱턴에 처음 온 사람들 같기도 했다. 물어봐도 지리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휴식을 취하던 어떤 군인들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워싱턴 풍경 사진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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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약 1시간을 걷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맥주집을 발견했다. 야외에서 한 3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나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야외에 테이블을 잡고 혼자 앉아서 조금 쉬었다. 주변 사람들은 거의 다 기자들이었다. 삼각대와 카메라들이 거의 모든 테이블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맥주를 먹다가도 헬기 소리가 나면 다시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이를 찍었다. 미국 기자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내부 출입을 승인받은 출입기자단이 아닌 것 같았다. 사용하는 언어를 들어보니 유럽에서 온 기자들이 많아 보였다.
 
30대로 보이는 동양인 남성 한 명이 이 맥주집에 들어왔다. 자리를 정해주는 웨이터가 잠깐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그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아니다, 한국인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괜찮으면 동석해도 되느냐고 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는 교토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박사 과정 학생이었다. 바이든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 워싱턴을 처음 와봤는데 의회나 백악관 어느 곳도 가까이 가서 보질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Biden, Harris라는 글이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취임식을 보러 왔다는 그의 열정이 놀라웠다. 그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일본이 어떤 정책을 펴야하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나는 어두워지면 더 워싱턴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아 그만 일어나겠다고 했다. 4시 30분이었고 해가 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그 역시도 알겠다고 했다.
 
그는 숙소를 약 30분 떨어진 메릴랜드에 구했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간다고 했다. 그는 구글 지도를 열심히 찾더니 열려 있는 지하철역이 있을 것이라며 차이나타운 쪽으로 같이 걸었다. 그곳도 닫혀 있었다. 그는 한 15분 떨어진 역에 걸어가보겠다고 했다. 구글 지도상에는 열린 것으로 나온다고 했다. 나는 우버를 불러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으나 그냥 계속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곳에서 나는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 집으로 가는 노선이 다니는 역까지는 2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열려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10분 정도를 북쪽으로 걸어 접근제한 지역에서 빠져 나왔다. 빠져 나와서 우버를 켜니 그제서야 영업 중인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기사를 불러 15분 정도를 기다린 뒤 차에 올라탔다. 요금은 평소의 두 배정도로 뛰어 있었다. 기사는 젊은 흑인 여성이었다. 그는 바이든이 승리해 너무 행복하다며 오는 40분 내내 트럼프 욕을 했다. 오늘 바이든 취임 연설의 키워드는 ‘통합(unity)’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미국 정치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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