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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뒷골목의 삼십 년 국수가게 엄상익(변호사)  |  2021-06-21
갑자기 고교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 달 전 그의 처가 죽어 장례식장을 갔다가 온 적이 있다.
  
  “잘 있냐?”
  그가 짤막하게 안부를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칠십 고개를 바라보는 혼자 된 노인의 외로움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별 일 없다. 그런데 너는 아내가 가고 나서 여러 가지로 힘들겠구나.”
  전화 저편에서 나이 먹고 아내가 없는 방에 혼자 있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마음의 정리가 돼가는 것 같아. 밥하고 국을 끓이고 음식을 만드는 건 내가 전문이었고 그 밖에 청소나 세탁같은 내가 젊어서부터 해왔으니까 크게 불편한 건 없어.”
  
  하기야 그는 음식을 만드는 일에는 남이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장인(匠人)이었다. 그는 삼십대에 일찌감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압구정동의 뒷골목에 허름한 국수집을 차렸다. 그는 칼국수와 전골로 인생의 승부를 보겠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결심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최고의 명문이라는 중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세상은 그 학교를 나오면 판검사나 변호사 의사 교수가 되는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 방면이 아니더라도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임원이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건물 지하의 작은 국수집을 그는 장소도 옮기지 않고 삼십 년간 묵묵히 해 나왔다. 그가 국수 가게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찾아가 국수를 먹은 내게 이런 하소연을 했었다.
  
  “값싼 국수 한 그릇 먹으러 들어와서 왜 주차장이 없느냐고 불평하는 손님이 있어. 뒷골목 작은 가게가 어떻게 주차를 해줄 수 있겠어? 그리고 어떤 손님은 국수가 짜다고 불평을 하는 거야. 그런 때면 내가 그 손님 앞에서 그 국수를 꼭 먹어봐. 하나도 짜지 않았어. 그 손님의 입맛이 특이한 거지. 수많은 사람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었어.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거지. 그런데 힘든 건 대기업 임원을 하는 친구가 와서 딱하다는 표정으로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 거야. 내가 회사를 다니다 임원을 하지 못하고 나온 걸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 스스로 나온 건데 말이야.”
  
  자존심 강한 그가 어떤 마음의 고난을 겪는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학 시절부터 덩치가 크고 눈알이 부리부리한 그는 한 주먹 했었다. 친구들이 모두 무서워하고 기가 죽었다. 요즈음 아이들 말로 하면 그는 중고등학교에서 속칭 ‘짱’이었다. 까탈스러운 손님들을 보면 한 주먹 날리고 싶을 때가 많았을 것이다. 세월의 강이 흐르고 우리가 오십대 말쯤의 강가에 도달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상에 서브를 하고 있는 그 국수집을 찾아갔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대기업의 임원을 하다가 퇴직한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 자기네도 이런 국수집을 하고 싶은데 그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사정하는 거야. 이 국수집도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 말이야. 제대로 된 국물을 뽑는데 이십 년이나 걸렸어. 그리고 단골손님이 형성되는 데도 오래 걸리고 말이야. 하여튼 나는 요즈음 행복해지고 있어. 양평이나 양수리 같은 데 체인점을 낼 계획을 하고 있어.”
  
  해가 지면 양지가 음지가 되고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지는 것 같이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우리 인생은 바다가 보이는 넓은 강의 하류에 도달했다. 상처를 하고 혼자 지내는 그가 뜬금 없이 전화를 한 것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들놈이 여섯 달 전부터 주방에 들어가 국물을 뽑는 걸 배우고 있어. 이제 이 국수 가게를 아들한테 물려줄 예정이야. 아들놈도 처음에는 뜨악해하다가 이제는 하겠다고 그래.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중이야.”
  
  작은 국수 가게지만 그의 아들은 귀한 보물을 상속받는 셈이었다. 아버지가 삼십 년간 닦아온 기술과 단골손님들을 장벽 없이 이어받는 것이다. 그 친구가 덧붙였다.
  
  “내가 자주 찾아가는 의원의 원장 선생님은 아들에게 그 의원을 물려주려고 전국에서 제일 뒤처지는 의대라도 보내서 아들을 의사로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했어. 그래서 그 아들을 그 의원의 사무장으로 일하게 하고 있어.”
  
  그건 변호사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가업을 이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격시험이라는 장벽을 아이들이 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국수가게 친구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봐 친구 부럽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일하는 모습이 얼마나 뿌듯한 거야? 다음에 아들이 만든 국수 먹으러 갈게.”
  
  그렇게 인사를 해 주었다. 그리고 보니까 예수도 아버지 목수직업을 물려받았다. 베드로도 어부의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런 게 아름다운 모습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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