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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일종의 장애(障碍)일지도 모른다” 美 베테랑 기자와 80세 老학자의 前生 추적 동행기(4) - 30년 전 신문기사와 전생 대상자 가족의 증언으로 확인된 대니얼의 주장 金永男  |  2022-05-14

스티븐슨 박사가 갖고 있는 대니얼의 서류 폴더에는 “사고 당시 신문기사를 확인할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전생을 기억한다는 대니얼의 가족과 대니얼의 전생 대상자로 보이는 라시드 카데기의 가족 모두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고 내용을 스크랩해놓지 않았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당시의 신문기사를 찾아나섰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사고의 발생 시점은 1968년인데, 내전 등으로 인해 살아남은 메이저 신문사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계속 운영되고 있는 신문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과거 신문을 보관해놓은 곳이 없었다.


슈로더와 스티븐슨 박사, 그리고 그의 통역사 마지드는 이들이 머무는 숙소 인근에 있는 ‘르주르(Le Jour)’라는 신문사에 과거 신문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바로 이 신문사로 향했다. 보관실은 매우 작은 규모였고 남자직원 두 명과 여자직원 한 명이 사무업무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마지드는 이들에게 1968년 7월 10일 베이루트 해변에서 발생한 라시드 카데기 교통사고에 대한 기록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 직원이 보관실에서 파일 하나를 가지고 나오더니 이를 오래된 마이크로필름 리더기에 돌렸다. 그는 7월 11일자로 된 신문파일을 빠르게 돌려보고서는 카데기 사고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무뚝뚝하게 말했다고 한다. 마지드가 이 남성에게 무언가 말을 하자 그는 짜증이 난 듯한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마이크로필름 리더기를 들여다보고서는 다시 고개를 가로지었다.

 

마지드는 신문사를 빠져나오며 슈로더에게 “그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것 같다”며 “그가 얼마나 빨리 돌려보는지 봤느냐”고 했다. 그리고서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슈로더는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신문사 보관실이 살아남은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일 참혹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레바논에서 카데기의 교통사고와 같은 기사가 실렸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마지드는 갑자기 “좋은 소식이 있다”며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교에 과거 신문기사가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돼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학생증을 갖고 있다며 도서관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호텔로 먼저 들어가 서류를 확인하겠으니 두 명만 대학교에 가보라고 했다. 슈로더와 마지드는 신문기사가 보관된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르주르 신문사와는 전혀 달리 잘 정리돼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마이크로필름 리더기도 신식이었다고 한다.


보관실 직원은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발행된 신문 여섯 개의 필름을 건네주고서는 천천히 확인해보다 가라고 했다. 슈로더가 리더기를 돌리고 마지드가 신문의 내용을 확인했다. 신문을 계속 넘겨도 카데기의 기사가 나오지 않아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을 무렵, 마지드가 갑자기 “찾았다”라고 소리쳤다.


기사에는 작은 사진이 하나 실려 있었다. 지붕이 뜯길 정도로 박살난 피아트 차량 주변에 경찰들이 모여 있는 사진이었다. 마지드는 기사의 내용을 슈로더에게 번역해주기 시작했다.

 

<(베이루트) 마나라 콘리치 인근에서 어제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탑승자 한 명이 숨졌다. 이브라힘이 피아트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고 차량의 주인인 라시드 카데기가 동승하고 있었다. 이브라힘은 한 차를 추월하기 위해 과속을 했고 차가 전복됐다. 카데기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슈로더는 무언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마이크로필름 리더기 화면에는 다니엘 지르디가 태어나기 18개월 전, 그리고 그가 교통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기 3년 전 일의 기사가 떠있었다. 아이가 했던 이야기와 겹치는 이야기도 많았다. 해변, 과속, 운전사 이브라힘, 피아트, 그리고 과속을 해 한 차량을 추월하려고 했다는 내용까지.


슈로더는 “다른 차량을 추월하려고 했다니, 대니얼이 했던 말과 똑같다”‘고 소리를 질렀다. 마지드는 갑자기 “잠깐만”이라더니 “번역을 너무 빨리 하다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차량을 추월하려고 했다는 내용은 없고 ’커브길‘을 과속해서 지나가려고 했다고 돼 있다”고 했다.

 

슈로더는 “다른 차량에 대한 이야기가 기사에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없었다고 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대니얼의 이야기와 일부 다른 내용도 기사에 담겨있었다. 대니얼은 차량이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이라고 했으나 사진을 보면 컨버터블 차량이 아니었다. 지붕이 거의 뜯겨나간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지붕이 있는 차량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또한 라시드가 차량의 주인이라고 기사에 나와 있지만 대니얼은 이브라힘의 차였다고 했었다고 한다.

 

마지드는 “기사가 잘못된 것 같다”며 “라시드 카데기의 가족은 그가 차를 소유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슈로더와 마지드는 기사를 복사해 다시 호텔로 향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기사의 내용을 설명하는 마지드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문서로 된 기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후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라시드 카데기의 어머니인 문타하를 만나러 호텔을 빠져나왔다. 라시드의 여동생 무나가 스티븐슨 일행을 맞아줬다고 한다. 무나는 이들에게 주스를 대접한 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문타하는 라시드가 죽기 전 그를 위한 스웨터를 짜고 있었다. (라시드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대니얼을 만날 무렵이었는데 이 작은 소년이 갑자기 문타하에게 “나를 위해 짜던 스웨터를 마무리하기는 했느냐”고 묻던 것이었다. 문타하는 수년 전 어디에 치워둔 스웨터를 다시 찾아내고서는 어린 라시드의 몸에 맞춰 작게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서는 이를 대니얼에게 선물했다.>


무나는 “사고 당일 이웃 한 명이 우리집에 다가와 나와 어머니, 언니에게 라시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알려줬다”며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느냐‘고 물었는데 이 이웃집 여성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고 했다. 무나는 거실을 둘러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우리 모두 이 방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대니얼은 이브라힘이 모는 차에서 튕겨나가며 머리를 부딪쳤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라시드가 어디에 부상을 당했다고 의사들이 말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여동생 무나는 “아니다”라며 “그는 이미 죽어있었고 우리는 묻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을 확인했는데 머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고 했다.


대니얼이라는 소년이 라시드의 환생이라고 주장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972년 무렵이었다고 한다. 라시드의 여동생 무나와 누나 나즈라가 이 소년을 먼저 만나봤다고 한다. 무나는 “대니얼은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며 “내가 너무 많이 바뀐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누나 나즈라는 알아보더니 이름을 정확하게 불렀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무나에게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무나는 “라시드가 죽기 전에 나는 신앙심이 깊지 않았고 바지나 블라우스를 입는 것을 좋아했었다”며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부터는 머리에 스카프를 쓰기 시작했고 긴 드레스를 입게 됐다”고 했다. 무나는 “대니얼이 (지금처럼)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 사람을 기대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슈로더는 “대니얼의 가족이 무나와 나즈라가 찾을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무나는 “아니다, 약속을 잡지 않고 갔었다”라며 “대니얼은 우리를 보고서는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대니얼은 그의 어머니에게, ‘바나나와 커피를 내어달라, 내 가족이 왔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를 듣고 우리는 매우 놀랐다”며 “라시드 역시 바나나를 매우 좋아했었고 이 때문에 어머니와 언니는 바나나만 보면 라시드 생각이 나서 이후부터는 먹지 않았었다”고 했다.


이날 라시드의 집에는 그의 사촌형제인 아크무드도 와있었다고 한다. 대니얼은 그와 함께 라시드의 묘지를 갔었고 이때 이브라힘을 만났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아크무드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크무드는 라시드의 묘지를 함께 갔던 것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을 걸어서 지나가고 있었는데 이브라힘이 자동차를 고치고 있는 것을 봤다”며 “대니얼을 시험해보기 위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그런데 대니얼이 갑자기, “이브라힘이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크무드는 계속 시험해보기 위해 “아니다, 잘못 봤다, 이브라힘이 아니다”라고 말했었다고 했다.


이브라힘은 아크무드를 알아보고서는 그와 대니얼을 집으로 초대했었다고 한다. 아크무드는 “이들에게 서로를 소개시켜주지 않았었다”며 “그런데 대니얼이 이브라힘에게 ‘1968년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이브라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니, “아 기억이 난다, 교통사고가 있었고 내 사촌이 숨졌다”고 했다. 대니얼은 “내가 그 사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브라힘은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 15분 동안 멍하니 얼어붙어 있었다고 한다. 아크무드에 따르면 이브라힘은 대니얼이라는 소년이 라시드의 환생이라는 주장을 알고 있었으나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라시드의 여동생 무나는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더니, “이브라힘은 사고 현장에서 도망쳤고 경찰은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었다”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사고 얼마 후 경찰이 집에 찾아온 적은 있었다고 한다. 사과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경찰은 사고 당일 피아트 차량이 과속하는 것을 동료와 함께 목격했고 이 차를 잡으러 가자고 말했으나 그 동료가 “아니야, 그냥 죽게 내버려두자”라고 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어머니 문타나는 오랫동안 이브라힘과 말을 섞지 않았다고 한다. 문타나는 과거 이브라힘을 만날 때면 항상, “운전 조심히 해라, 라시드는 내 유일한 아들이다”라고 말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내전이 발생해 두 가족 모두 산 속에 숨게 됐을 때부터 다시 말을 섞기 시작했다고 한다.

 

슈로더는 이날 오전 신문기사에서 확인한 내용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기사에는 차량의 주인이 라시드라고 나오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여동생 무나는, “이브라힘의 차였다”며 “라시드는 차가 없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이날의 일정을 끝내고 라시드의 집을 떠나기로 했다. 통역사 마지드는 집을 나서더니 “우리가 나올 때 무나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었다”며 “라시드가 죽기 5일 전에 약혼을 했었다고 한다”고 했다.


대니얼은 라시드의 삶을 일부 떠올려내는 것으로 보였지만 약혼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이를 듣고서는 전생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분산되는 것인지 흥미롭다고 했다. 기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하나의 완벽한 기억으로는 모여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슈로더는 얼마 전 스티븐슨 박사와 나눈 대화가 갑자기 떠올랐다고 했다. 레바논에 거주하는 이슬람 시아파의 분파인 드루즈파에서 환생 사례가 특히 많이 나오는 현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스티븐슨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 일종의 장애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는 다 잊어버려야 하는데 종종 시스템이 오작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것을 완전히 잊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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