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슨 박사는 수잔이라는 여성을 20년 만에 다시 만난 날 저녁,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교에서 환생 관련 강의를 진행했다. 스티븐슨은 수잔이라는 여성을 그가 5세 때 한 번 만났고 20년이 흘러 그가 25세가 됐을 때 다시 만났었다. 이 여성은 자신의 이름은 수잔이 아닌 ‘하난 만수르’라며, 당시의 남편이 하난이 숨진 뒤 이미 재혼을 했음에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한 여성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스티븐슨 박사의 이날 강연에도 동행했다. 슈로더는 청중이 과연 얼마나 오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으나 큰 강의실이 가득찼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사례가 아시아권은 물론,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 사례의 공통점과 특징 등을 설명하는 강의를 했다.
강연 이후 한 청중이 큰 소리로 질문을 했다고 한다. “영혼이 죽음 이후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실험이 이뤄진 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20세기 초 무렵 이를 위한 실험을 했었는데 어떤 것도 발견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을 실험용으로 만들어진 평평한 침대에 눕게 한 뒤 진행된 실험이었다”며 “만약 이 침대 저울의 무게가 사망 직후 바뀌게 된다면 영혼이라는 것이 측정할 수 있는 무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목적의 실험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남성이 숨진 후에도 침대는 계속 평평하게 유지됐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앞으로 영혼이라고 불리는 것을 과학적으로 포착해낼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의 원칙을 뛰어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청중은, “이런 연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또 한 번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그가 진행해 온 실험 방식과 그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질문을 했던 청중은, “메소드(방법)가 아니라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물었다”고 했다.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으나 스티븐슨 박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조심스럽게, 많은 의사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환생 사례들을 보면 여러 공포증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모반, 장애 등 일반적인 의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청중들의 궁금증과 스티븐슨 박사의 답변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과학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先知者)를 원하는 것이구나…’라는.
강의가 끝난 뒤 사람들은 스티븐슨 박사의 주변에 모여들었고 추가 질문을 이어갔다고 한다. 슈로더는 이때 강의실에서 이날 낮에 만났던 수잔을 발견했다고 했다. 수잔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그녀의 이야기가 실려 있던 ‘먼데이 모닝’ 기사 하나를 건네줬다는 것이었다.
기사에는 곱슬머리를 하고 있는 어린 수잔의 모습이 사진으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수잔은 이후 스티븐슨 박사에게 다가가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자고 청했다고 한다. 옆에 있던 슈로더 기자에게도 함께 찍자고 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이로부터 약 6개월 후 미국으로 돌아와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때 하난 만수르의 웨딩사진을 봤었고 당시 하난의 나이는 수잔보다 한두 살 어린 나이였다고 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찍은 수잔의 사진, 그리고 하난의 결혼사진을 보며 둘의 눈이 너무나도 닮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진정 미스터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이날 강의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려는데 한 남성이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스티븐슨 박사에게 명함을 건네더니, 자신 역시 흥미로운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 심리학과에서 일하고 있다며 두 개의 환생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한 여성이 죽기 직전에 경험한 임사체험 사례였다. 이 여성은 의식이 몸 밖으로 나가게 됐고 다른 가족의 아이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목격했었다고 했다. 그러다 다시 몸이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오게 됐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사례는 본인이 전생에 힌두교도였다고 하는 아랍 여성의 이야기였다. 이 여성은 힌두어를 배운 적이 없었음에도 이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약간의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고 한다. 그는 이들의 연락처를 알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 남성은 스티븐슨 박사에게 자신이 따로 전화를 하도록 하겠다고 하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강의실을 나서며 스티븐슨 박사에게 “그 남성이 연락을 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고 했다. 스티븐슨은 “그는 조금 너무 빠져있는 것 같다”며 “나도 그런 사례를 연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 여성이 임사체험 과정에서, 갓 태어난 어떤 여성의 주변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고 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몸으로 의식이 들어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것이었다. 슈로더는 “흥미롭다”라고 했고, 스티븐슨은 “정말 흥미롭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9시가 다 됐을 때였다. 스티븐슨 박사는 슈로더 기자에게 자신의 방에 와서 술을 한 잔 하겠느냐고 권유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스카치 위스키를, 슈로더는 맥주를 한 캔 꺼내놓고 늦은 밤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슈로더는 “요즘 이런 생각이 들었다”며 “전생을 기억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실상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이 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초능력 같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들이 떠올려내는 것은 기억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다”라고 했다.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어렸을 때 ‘나는 부인이 있었다’, ‘나는 의사였다’와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하며 지금 생의 삶을 거부하고 전생의 성격을 고집하곤 한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간섭하길 좋아하는 어른들은 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며 한낱 어린이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이 어린이들은 거북이처럼 (어른이 등을 뒤집어버리면)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슈로더 기자는 계속해서 전생 사례의 허점을 지적해나갔다. 그는 “만약 환생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전생에 대한 기억들이 너무 불완전한 것 아니냐”고 했다. 삶 전부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례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레바논 사례의 경우는 아이들이 떠올려내는 이야기 중 전생의 삶과 일치하는 내용이 평균적으로 30개 정도라고 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적은 것일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수잔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단순한 기억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적 기억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오늘 강의에서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장애 등을 갖고 있는 사례가 있으니 의사들이 이에 대한 원인으로 환생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이유는 너무 부족하지 않느냐”고 했다. “환생이라는 개념을 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는데 선천적 장애 등에 대한 진단은 너무 지엽적인 접근법이 아닌가”라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일반 아이들과 다른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아이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부모가 무언가 잘못을 해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초월하는 무언가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면 이들에게 큰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슨 박사는 슈로더 기자를 쳐다보더니 그가 원하는 답변이 이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고 한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이어갔다고 한다.
<나는 환생이라는 개념을 입증하는 것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 인도를 방문했을 때 한 힌두교 지도자를 만났었다. 그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주고 환생을 입증할 수 있다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해줬다. 즉, 사람들이 환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힌두교 지도자는 오랫동안 침묵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이, ‘매우 좋은 일이네, 하지만 이곳에서는 환생이 사실(fact)이다. 그럼에도 서방세계와 똑같이 악당과 도둑놈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이를 듣고 크게 웃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스티븐슨 박사가 얼마나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는 그가 갖고 있는 의문을 계속 물어보기로 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나 누군가가 의도적이건 무의식중에서건 아이에게 잘못된 기억을 주입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슈로더는 “그럴 가능성을 사실상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등을 기대고 있던 의자에서 잠시 앞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그게 나를 괴롭히는 일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슈로더는 과거 스티븐슨 박사의 강의 녹취록과 여러 논문 등을 확인해봤다고 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지를 파악해보자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의 연구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동료 과학자들이 그를 단순히 무시해버리려고 하는 것도 알았었다고 한다. 그는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하곤 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현재 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현재의 지식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볼 때마다 경악을 하게 된다.
만약 이단자(異端者)들이 요즘 시대에도 산 채로 화형(火刑)에 처해진다면, 16세기 당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 모든 사람들을 불태워버렸던 신학자(神學者)들의 후예들은, 현재 영혼의 존재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불태워버릴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