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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가슴 찡한 6·25 이야기 bestkorea(회원)  |  2022-06-25
1960년대 월남전 취재기자 데이비드 핼버스탐은 한국전을 다룬《가장 추운 겨울》의 결론 부분에서 언급한 한국의 6.25전후(戰後) 발전에 대하여 최상급의 찬사를 보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발전은 마셜 플랜에 의한 유럽의 부흥보다 더 큰 성공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을 재건하기 위한 미국의 경제원조는 독일, 프랑스 등 이미 산업적 전통의 기반이 있는 나라에 준 것이었다. 반면에 한국은 정치적, 문화적, 산업적 기반이 전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전쟁 후 폐허가 된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였기에 더욱 빛났다.
  
  한국전을 계기로 급성장한 장교단(將校團)의 놀라운 속도감과 추진력은 혁명과 진화가 혼합된 한국형 근대화의 주체 세력이었다. 미국의 웨스트포인트를 본뜬 한국의 사관학교는 젊은이들을 모아서 능력 위주의 실용 교육을 가르치고, 사회적 제약을 돌파할 수 있는 개혁 세력으로 키워냈다. 결국, 한국 장교단이 새롭고 현대화된 사회를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의 근대화보다도 더 큰 성공이다. 일본의 성공엔 전례(前例)가 있었지만 한국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한국의 발전은 역경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위대한 교훈을 남긴 경이로운 인간 드라마였다. 한국 현대사의 발전 속도는 너무나 빨라 위대한 지도자, 건국자 이승만(李承晩)의 위업마저 퇴색시키며 달려갔다.
  
  미국은 한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 유학 간 한국 학생들은 충성스러운 시민이 되는 것과 자유를 누리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국에 충성하면서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 거국적(擧國的) 차원에서 폭발하면서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대세(大勢)가 되었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으로부터 득을 본 이들이 바로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였다. 한국을 찾은 그들은 자신들이 싸워서 지켜 준 나라의 발전에 놀라면서 자랑스러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감사에 감동했다. 미국에서 받아본 적이 없는 6.25 참전 찬사를 한국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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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영국의 ‘더타임스’등 여러 언론기관에 기사를 쓰는 앤드류 살먼 기자의 말이다.나는 1951년 4월 하순 중공군의 대공세로 포위당한 영국군의 영웅적 전투(설마리 전투)를 취재하면서 여러 생존 참전자들을 만났다. 상당수는 전란 중의 한국에 대한 끔찍한 기억 때문에 ‘그런 나라는 생각하기도 싫다’라고 했다. ‘우리의 희생은 헛된 것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을 다시 찾은 참전자들은 달라졌다.
  
  그들은 새롭고, 용감한 나라 한국을 발견했다. 유엔군이 흘린 피 값은 미국의 돈으로 보증되고 한국인의 땀으로 상환되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무역과 기술이전에 특혜를 받았다. 또한, 한국에는 산업화를 목표로 하는 정부가 들어서고, 유일한 자원이자 발전의 지렛대인 사람에 투자함으로써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88 서울 올림픽을 열기 전에 민주화까지 이뤘다. 오늘의 한국이 누리는 생활 수준과 개인의 자유는 유럽과 비교될 만큼 발전했다.
  
  한국을 찾은 참전자들은 눈을 의심할 만큼 놀랐다. 가난은 사라지고, 어린 거지들, 군부대 옆에 있던 쓰레기더미들, 판잣집들도 보이지 않았다. 피난민 행렬의 먼짓길은 아스팔트로 덮인 고속도로와 차량 행렬로 바뀌었다. 자연경관도 달라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녹화 사업으로 벌거벗은 산들은 모두 울창한 숲으로 변했다. 전란 중의 좌절한 인간군상은 사라지고 맹렬할 정도도 자부심이 강하며 역동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웃음꽃이 피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였던 호주 참전 군인에게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전쟁 때는 아이들이 모두 말이 없고 겁에 질려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떠들고, 유쾌하며, 행복해 보인다.”
  
  노병의 참전자들이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것은 한국인들이 보여준 감사의 표현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그 어떤 해외 전장(戰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나의 인생을 값진 것으로 만들어주었다.”라고 했다.
  
  한 노병(老兵)은 “한국이 이런 나라가 되다니 하느님 맙소사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어느 참전용사는 허리띠가 고장 나서 상점에 들어갔더니 주인은 새 허리띠를 주면서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신은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싸워주셨잖아요. 작은 선물입니다.”
  
  살먼 기자는 ‘zero to hero’란 표현을 쓰면서 말했다. 한국처럼 전란의 잿더미 속에서, 그야말로 제로 상태에서 일어나 영웅적 나라를 만든 것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국가적 성공 사례이다. 남북한 생활 수준의 차이를 본다면 자유가 공짜가 아니란 말이 맞다. 반세기가 흘러서 뒤돌아보니 ‘잊혀진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참전용사가 말했다. “주는 것(giving)과 사랑하는 것(loving)의 공통점이 뭘까요? 차이가 없습니다. 같은 거예요. 50년 전 나는 한국에 내 인생의 1년을 주었습니다.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지요. 나는 한국인들이 내가 준 그 짧은 1년으로 무엇을 하였는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내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들의 환대를 받고는, 그리고 그들이 만든 완전히 새롭고 멋진, 유쾌하고 활기차게 번영하는 새 나라를 만든 것을 보고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한테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내 인생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 이는 당신들입니다. 나를 가치 있는 인간으로 키워준 이는 바로 한국인 당신들입니다.”
  
  (조갑제닷컴에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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