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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껍데기 친구, 진짜 친구 조폭 두목이 감옥에 갇히자 유일하게 한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두목을 도왔다 엄상익(변호사)  |  2022-11-19
고등학교 시절 주위를 보면 부자집 아들이 참 많았다. 같은 반의 앞자리에는 두산그룹 회장이자 전경련 회장인 박용만이 앉아 있었다. 그 외에도 쌍용그룹, 삼양사그룹, 녹십자그룹, 환화그룹 등 부유한 집 아들들이 많았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대체로 성품이 온유하고 착했다. 부모의 교육도 철저한 것 같았다.
  
  그 시절 박정희 대통령과 사범학교 동기이고 정계와 재계를 주름잡고 있던 분의 외아들이 같은 반이었다. 부자집 아들답지 않게 검정 교복의 색이 바래고 솔기가 해진 옷을 입고 양철 도시락에 싸온 점심도 소박했다. 남의 눈에 띄게 하지 않고 더욱 낮게 처신하도록 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물론 일부 예외도 있었다. 국민 대부분 가난하던 그 시절 고교생이 빨간 스포츠카에 예쁜 여학생을 태우고 서울 거리를 폭주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자집 아들에게 기생충처럼 따라붙는 아이들도 있었다. 겉으로는 친구지만 실제로는 부하였다. 그 인연을 발판으로 대기업에 들어가기도 하고 거기서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사장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 성공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오십대 초쯤일 때였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한 친구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그가 기운 없는 얼굴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김 회장 그 친구 말이야, 중학교 때부터 평생 우리들 몇 명이 그렇게 모시면서 도와줬는데도 너무 인색해.”
  
  그가 안타까웠다. 부자는 사람보다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게 아니었을까. 그들이 친구였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부자 친구를 평생 따라다니던 또 다른 친구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강 회장 걔와 내가 뭐가 달라? 그런데 그 친구는 평생 놀고 먹어도 돈이 썩어 넘치도록 있는데 왜 나는 그 친구의 쫄병을 하다가 쫒겨나서 월세방에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느냔 말이야?”
  
  그에게는 섭섭함만 남아 있었다. 그는 중학 시절부터 재벌가 아들의 주먹을 쓰는 부하 역할을 하는 바람에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친구인 회장 심복이 되어 룸살롱을 드나들고 여자 관계에 문란하다가 공금을 건드려 파면당했다. 그 자신의 책임이 더 큰 것 같았다.
  
  친구가 회장을 하는 재벌 그룹에서 임원을 한 친구들이 나중에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모두 친구인 재벌 회장이 얼음같이 차다고 얘기했다. 그들은 과연 친구였을까? 변호사를 하다 보면 진짜 친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순간이 있다.
  
  한 조폭 두목이 감옥에 갇혔다. 그렇게 질이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 그의 조직원은 물론 그와 관계를 가졌던 모든 사람들이 면회를 가지 않았다. 그를 접촉한 사람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한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조폭 두목을 도왔다. 그는 건달 출신이 아니었다. 조폭 두목과 어려서 가난한 동네에서 한 시절을 같이 살았던 인연일 뿐이었다. 한 사람은 조폭 두목이 됐고 다른 한 사람은 시인이 되어 강원도 산 속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혼자 조폭 두목을 돕는 그 시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이 모두 욕하고 등을 돌려도 나는 그 친구를 도울 거에요. 남들은 그 친구가 살인을 하고 조폭 두목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돌을 던져도 나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함께 욕을 먹고 돌을 맞아 줄 겁니다.”
  
  가난한 시인이 갑자기 눈이 안 보여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 조폭 두목이 남몰래 돈을 보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살인을 하고 감옥에 간 영화감독이 있었다. 죄를 진 순간 모든 사람이 그를 버렸다. 유일하게 감옥에 있는 그를 이해하고 돕는 한 친구가 있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았다. 감옥에 간 영화감독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아들의 친구인 그에게 도시락도 싸주고 부모같이 잘해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원히 아들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었다고 얘기했다. 죽은 어머니의 공덕이 깊었다.
  
  나의 친구가 아닌 사람은 내가 그 뒤를 늘 쫓아다녀도 그는 마침내 나를 떠나고 만다. 진짜 친구는 내가 붙들지 않고 평소에 떨어져 있어도 필요할 때면 다가온다. 자주 만나서도 아니고 이유도 다양하다. 그런 것을 보면 친구란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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