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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있나 세상이 다 됐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무학산  |  2021-01-20  |  조회 : 209  |  찬성 : 0  |  반대 : 0

오래 전, 평택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주한미군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간 적이 있다 어느 날 한밤중에 그 집 부부가 서류봉투를 들고 나가면서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비상훈련이라 했다 저들은 비상시엔 가족부터 대피시키고 본다 했고, 가족 중에서도 노약자를 우선 비행기에 태워 미국 등지로 보낸다는 것을 들어서 알았다 노약자를 먼저 피신시키는 것은 인간과 짐승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저들만 그러겠는가. 우리는 더 했다. 우리는 百行이다는 가르침 속에서 나고 살고 죽었다

 

6.25 전쟁 때의 피난민 모습을 찍은 영상과 사진이 지금도 흔하다 이고 지고 걸으면서도 늙은 부모를 업고 걷는 것은 일상이었다 강물을 건너느라 아들이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걷는 모습도 흔하다 어머니가 머리에 한 보따리 가득 이고서도 등에 어린애를 업고 가는 사진도 많다 전쟁터에서도 저랬거늘 불과 코로나19 앞에서 예방주사 하나도 양보하기를 싫어하니 더 무어라고 반론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미풍양속이 아니 미풍양속이 아니라 그 인간된 도리가 이제 헌신짝처럼 꼴 보기 싫은 것이 되고 있다

 

일전에는 공무원들이 백신을 먼저 맞겠다고 다툰 탓에 비난 세례를 받았었다 오늘 또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오늘자 조선닷컴에 실린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이란 분의 칼럼. 코로나 이기려면 이제라도 해야 할 일이란 글이다. 그는 이런 요지로 썼다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가 논란이 예상된다 이미 경제활동도 접었고 집콕'해도 무방한 65세 이상 803만명의 접종 우선순위가 매우 높은 것은 잘 납득이 안 간다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가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대면을 하여 장사하고 영업하는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면 좋겠다그리고우선 접종은 특별한 배려이지 강제해야 할 의무가 아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미 경제활동을 접은 사람"도 누군가의 부모일 것이다  그런데 “우선 접종은 배려이지 의무가 아니다라 했다 孝를 배려이지 의무가 아니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장사하는 이들을 위해 저런 말을 했지만 저런 마음으로써야 장사가 잘 될 턱이 없다

 

정동영 씨가 노인은 투표하러 나올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칼럼의 이미 경제활동을 접은 65세 이상에 우선 접종하는 게 납득이 안된다는 말은 정동영의 발언보다 더 비인간적. 더 몰인정하게 들린다 이미 경제활동을 접었다고 말했지만, 현재의 기술. 건설. 여유. 경제활동을 접은그분들이 이룩해 놓은 것이다 그분들이 이룩한 기술의 바탕 위에서 백신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집콕'해도 무방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나? 피난민은 경제활동도 안 하는 늙은 부모를 왜 업고 걸었을까?

 

코로나 19의 치사율은 독감보다 낮다고 한다 기껏 그런 병 앞에서 노인을 제치고 젊은이에게 먼저 접종하자니 전쟁통이었다면 늙은 부모를 버릴 셈인가. 고려장하던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말과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저렇게 말하기가 미안했던지, 본인의 나이를 69세라 밝혔다 오래 살고 건강한 것을 경하하지만, 79세도 있고 89세도 있다 69세를 79세. 89세와 한묶음으로 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백보 양보하여, 69세까지는 우선 접종하지 말고 70세 이상부터 우선 접종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말했으면 그나마 반론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다 70세부터 노인으로 치자는 여론도 있고 하니 말이다. 우리가 이런 말을 했으니 우리를 70세 정도로 오인할까 싶어서 밝히지만 우리는 69세가 채 되지 않았다

 

이 이외에도 반론할 말은 많다 그러나 그만하는 게 낫겠다 싶어 이만 그친다 69세 노인에 대한 예우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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