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면 된다’ 대신 ‘되면 한다’
엄상익(변호사) | 2024-11-18
-
<시니어들이여, 되는 걸 하세요>
짧은 글 하나를 읽었다. 시니어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그중 늙어서 함부로 도전하지 말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젊어서는 ‘하면 된다’며 도전해도 됐지만 늙어서는 ‘되면 한다’로 마음을 바꾸라는 것이다. 욕심을 능력의 범위 안에 두라는 뜻일까.
주위에 보면 젊은 시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한풀이라도 하듯 시도하는 친구들이 많다. 색소폰이나 드럼을 배우기도 하고 활을 쏘기도 한다. 그러다 대부분 도중에 그만둔다. 인내하면서 진입장벽을 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 같다. 정년퇴직을 하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친구가 있다. 딸의 결혼식에서 치기 위해 두 곡을 선정해서 몇 달 동안 죽어라고 연습했다고 했다. 정작 딸의 결혼 축하연의 식장에서 피아노 앞에 앉았더니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더라고 했다. 그게 노인이 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 속에서 노인이 되면 첼로와 희랍어를 배우겠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젊은날 늙어서는 이태리어를 공부하겠다고 했다. 천재들이 하면 될지 모르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은 그게 될까 의문이다.
나는 바둑을 배울 기회를 놓쳤다. 그렇지만 부러웠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보면 신비스럽고 그 분위기가 그윽해 보였다.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 누군가와 마주하고 앉아있기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이 육십을 넘어 인터넷으로 바둑을 배워봤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대방에서 메시지가 왔다.
“야 이 병신아 호구에 돌을 놓는 게 어디 있니? 바보니?”
바둑돌을 잘못 놓았다고 욕까지 먹었다. 잠시 후 바둑이 중단되고 메시지가 다시 왔다.
‘그만 하자 바보야. 엄마가 학원 가래’
손자뻘 되는 아이에게 혼만 났다. 바둑을 배우기에는 늦었다. 엄청난 공을 들이고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늙은 내가 하면 될 것 같지 않았다.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소망이었던 것을 시도해 본 것만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는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늙어서 함부로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삶에는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 같다. 젊어서부터 하던 일을 마지막까지 즐기듯 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요즈음 유튜브에서 오랜 세월 전통을 지켜온 장인들의 세계를 담은 프로를 자주 본다. 옻을 칠한다던가 나무그릇을 만든다던가 하는 단순한 작업을 죽을 때까지 하는 것 같다. 그런 장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단순한 작업을 끝도 없이 반복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기억의 안개 저쪽에 숨어있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크루즈선을 탄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천국을 구현했다고 자랑하는 배였다. 맛있는 음식이 산처럼 쌓여있고 카지노를 비롯해서 각종의 오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저녁마다 화려한 쇼와 댄스파티가 있었다. 그런 천국도 이주일쯤 지나가니까 시들해지는 것 같았다. 승객들은 다른 걸 찾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배의 선창 구석에서 칠십대 중반쯤의 노인이 탁자에 천을 끼워놓은 둥근 틀 앞에서 십자수를 놓고 있는 걸 봤다. 그는 그게 좋은 것 같았다. 교사 출신인 한 영국 여성은 가르치고 싶다고 하면서 내게 셰익스피어를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노인들은 천국보다는 자기가 익숙하게 하던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일본의 장인들도 그런 성취감 때문에 마지막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들은 새로운 도전보다 되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작가인 황석영씨는 글을 쓰다가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은데? 하고 갸웃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짙은 황혼 속에서 서서히 고요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나는 무엇을 하지?라고 생각해 봤다. 변호사업을 더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았다. 오락 잡기는 해보지 않아서 능력이 안된다. 되는 일이 뭔지 생각해 보았다. 종교 쪽이 괜찮을 것 같았다. 시편 23장을 반복해 쓰고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영혼이 차원 이동을 한다고 했다. 그걸 믿는다. 불교를 믿는 한 친구는 나를 보고 자기는 반야심경을 그렇게 쓰겠다고 했다. 그런 일은 나이 먹어도 누구나 되는 일이 아닐까.
나는 매일 음악을 틀어놓고 좋은 문장을 베껴 쓰거나 반복해서 읽는다. 한 시인이 수필을 통해 가르쳐 준 즐거움이다. 그 행위를 ‘퀘렌시아’라고 표현 했다. 나의 이런 작은 생각이 무료하게 보내는 노인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