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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科 오십범(犯)의 늙은 소매치기
엄상익(변호사) | 202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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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은 기적을 부른다>
잘 키운 아들을 둔 선배가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아들이 대학 3학년 때 두 달의 방학 동안 일본에 갔었는데 덜컥 노무라증권에 취업이 된 거야. 그 회사는 일본에서도 경쟁률이 상당했지. 아들한테 어떻게 면접을 통과했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그냥 솔직히 대답을 했다는 거야. 방학이 두 달이라 인턴 한 달 해보려고 왔다고 말했더니 이미 발표한 직원 채용공고를 보고 온 게 아니냐고 묻더래. 그래서 인턴도 취업 아니냐고 대답했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일본인 면접관이 일본에서는 전혀 꾸미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정직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는 거야.”
선배 아들의 단순하고 정직한 성품이 행운을 잡은 것 같았다. 그는 그 후 홍콩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한다고 했다. 선배가 이런 말도 했다.
“아들을 보러 홍콩에 가서 묵으면서 여러 TV채널들을 봤었지. 호주방송을 비롯해서 영어권을 주로 봤는데 사회자랑 출연진들이 아주 자연스러웠어. 속에 있는 걸 솔직히 드러내고 감정표현도 진솔해. 결국 그들이 질적으로 우리보다 위에 있다는 걸 느꼈어. 연설이나 대중 앞에서의 인사도 우리같이 미리 써가지고 가서 읽지 말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말하는데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그런데 그건 쉽게 되는 건 아니지. 끊임없이 내공을 닦고 속에 내용물이 꽉 찼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노인이 된 지금에야 후회를 해. 젊어서 난 왜 그렇게 살지를 못했을까 하고 말이야. 그냥 사람을 대할 때 말 한 마디라도 진심으로 하고 따뜻하게 대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지.”
그의 말에서 울림이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거짓이 가득한 구정물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악취에 젖어 거짓에 둔감했다. 어떤 판사는 죄인은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거짓이 본능이고 정직은 예외라는 논리였다. 그런 세상 속에서 더러 솔직한 사람을 볼 때면 나는 그 뒤에 있는 신비한 존재를 느끼곤 했다.
오래 전 전과 오십 범의 늙은 소매치기를 변호한 적이 있다. 그가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저는 말이죠 도끼로 이 손모가지를 잘라 버리지 않는 한 도둑질하는 버릇을 절대 못 고칩니다. 안 할려고 해도 버스 안에서 앞에 있는 여자 핸드백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나는 안되는 죄인입니다. 매번 법정에서 반성하고 앞으로는 절대 안하겠다고 했는데 모두 거짓말이었습니다.”
소매치기는 예외 없이 무거운 징역형이 선고될 때였다. 재판장은 파격적으로 그를 석방했다. 그리고 변호사인 나를 개인적으로 보자고 하더니 지갑에서 그 노인을 주라고 돈까지 내어주었다. 절대 도둑질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고 했던 그 노인도 더 이상 절도범이 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주차관리원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을 보았다.
나와 친한 강남의 가구점 주인이 있었다. 어느 날 고용한 사람 중의 하나가 탈세 자료를 수집해 국세청과 경찰에 고발했다. 얼마 후 가구점 주인이 수사를 받게 됐다. 그가 조사관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가구점을 하면서 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세금을 다 내면 도저히 운영을 할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탈세를 했습니다. 다 인정합니다. 이제 사십년 해온 가구점 영업을 접겠습니다. 그리고 처벌도 받겠습니다.”
자살이라도 하는 것 같은 지극히 솔직한 자백이었다. 탈세한 세금이 거액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는 살아났다. 그렇다고 뒤로 뇌물을 주고 청탁을 한 것도 아니었다. 국세청 담당관과 검사의 마음이 강하게 흔들린 것 같았다. 무엇이 그들의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목사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
“매일 새벽 기도를 주관하는데 이상하게 앞에 있는 한 여성을 보면 음란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음란한 마음이 점점 더 팽창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를 낼 것 같더라구요. 새벽에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나와 그 여자 단 둘이 있는 날도 생기는 거예요.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어느 날 그 여성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죠. 그랬더니 그 순간 음란한 마음이 증발해 버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더라구요.”
인간의 어둠침침하고 습기 찬 마음속에는 거짓이나 위선 등 여러 종류의 곰팡이가 번식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빛에 드러내 마음 방을 깨끗이 청소하는 방법이 정직이 아닐까.
그분은 통회(痛悔)하고 상한 마음을 좋아하신다. 그리고 현실에서 기적으로 응답하신다. 여러 번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