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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부대원이었던 두 老人
엄상익(변호사) |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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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나는 인생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 권의 살아있는 책이었다. 하루 한 페이지를 쓰면서 스스로 좋은 책이 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십오년 전 캐나다 동쪽 끝 노바스코샤 바닷가의 섬에서 우연히 마주친 칠십대 중반의 한국인 노인이 있었다. 만났을 때 그 노인의 모습은 백발에 검버섯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축 처진 어깨에 근육이 빠졌는지 입고 있던 청바지가 헐렁해 보였다. 특이한 건 그가 칼을 차고 있었다는 점이다. 졈퍼 옆으로 가죽 칼집이 보였고 빛을 하얗게 퉁겨내는 칼날이 보였다. 자신의 보호자를 그 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살았다면 백 살이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스쳐 가는 만남에 잠시 한 마디 들었지만 그 노인의 인생이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마음을 열고 과거 한 조각을 이렇게 내놓았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서른다섯 살이었던 나는 혼자 알래스카의 산속 타르샌드라는 원시림에 내던져졌어요.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었죠. 거기서 6년간을 혼자 버티다 캐나다 북쪽 삼림지대로 들어갔어요. 이백년 전 대륙횡단 철도를 놓을 때 중국인들 수천 명이 일을 하던 곳이죠. 그때 하루 임금이 60센트였대요. 나무가 많으니까 중국인들이 단지를 구워 그 안에 일당으로 받은 동전을 보관했죠. 돈이 모아지면 그걸 금화로 바꾸어 다시 단지에 넣어두었어요. 지금도 깊은 산 속에 이끼가 가득한 ‘진씨 묘’,‘황가 묘’같은 비석이 발견된다고 해요. 이따금씩 그 비석 아래 묻힌 금화단지가 발견되기도 하죠.”
사용해 보지 못한 그 중국인의 금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백인밖에 없었어요. 동양인은 나 혼자였죠. 매일 아침 찾아와서 ‘하우아유 두잉’ 하고 걱정을 해 주는 선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내가 하는 영어발음을 트집잡고 왜 그렇게 못생겼느냐고 하면서 심술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일제시대 배운 영어 몇 마디가 전부였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한번은 쇠몽둥이를 가지고 나를 깔보는 백인을 찾아가 두들겨 패니까 다음부터 꼼짝을 못하더라구요. 내가 6·25전쟁 때 켈로부대 소속이거든요. 국방부 직속이었는데 파괴조도 있고 선무공작조도 있었죠. 그때 돈 80만환이면 큰데 그걸 은행에 예금해 두었다가 이북 갔다오면 준다고 했어요.”
그의 굴곡진 인생이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주인공 명준같이 제3국으로 간 존재는 아니었을까. 나는 노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외롭게 혼자 살았어요. 캠핑카에 총과 보트까지 싣고 아메리카 대륙을 혼자서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속이 답답할 때는 벌판에서 허공에 대고 총을 쏘곤 했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전기 기술자가 됐어요. 서양사람들의 차고 안을 보면 전기수리 차수리 집짓는 도구부터 없는 게 없어요. 그런 백인들같이 한국 사람들도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야 이겨낼 수 있어요.
얼마 전 천둥 번개가 치던 날 한국인이 하는 야채가게에서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고 하면서 냉장고를 고쳐달라고 하더라구요. 외국인들은 그런 때 가지 않아요. 같은 동포라 인정상 가서 고쳐줬죠. 그 야채가게 주인인 한국교포가 내 모습을 보더니 측은해 하면서 할아버지 몇 살이냐고 묻고 자식은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구요. 내가 기술자로 한 시간에 275불을 받는데 150불만 내라고 깎아줬어요. 한국사람들을 보면 돈가지고 와서 골프나 치고 그러는데 못써요. 백인들 겉으로는 어리숙한 척해 보여도 다 속이 꽉꽉 들어찬 사람들이예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 겉으로는 똑똑한 것 같은데 막상 일이 주어지면 하지 못해요. 엄마가 다 해줘 버릇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숲을 벗어나면 숲이 정확히 보인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보면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던져진 그의 일생은 고독 속에서 파란만장했을 것 같았다.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주인공 명준은 6·25 전쟁 후 제3국을 선택했고 도중에 바다에 빠져 자살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노인은 황량한 북아메리카 대륙의 끝에서 살아남았다. 켈로부대원이었다는 배영섭 노인의 고독한 노년의 한순간을 묘사한 이 글을 그에 대한 자료로 남긴다.
켈로부대원은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이나 인민군 복장을 하고 북한에 침투해서 유격전을 벌이던 부대인 것으로 안다. 그들의 존재와 숫자가 비밀에 붙여져 그들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이년 동안 묵었던 실버타운에 구십대의 엄씨 노인이 있었다. 생일이 되면 모든 노인들에게 떡을 돌리기도 하고 과일을 나누어 주기도 하는 덕있는 노인이었다. 그는 주변 노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항상 혼자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하루 그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말을 아꼈다. 마지막에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6.·25 전쟁 당시 켈로부대를 지휘하는 대위였다고 말했다. 언젠가 이 글이 국가유공자 선정에서 켈로부대원의 근황을 파악하는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노인들은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은 인터넷 공간에 남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