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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보면 다 거짓말이야" 엄상익(변호사)  |  2025-09-17
나와 친한 법관이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판사를 하면서 법정에서 보면 다 거짓말이야. 강한 거짓말과 농도가 약한 거짓말만 있을 뿐, 정직이란 걸 본 적이 없어. 인간은 거짓말이 본능인가 봐.”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나는 판결을 선고할 때 재판받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 유죄를 선고하면서 표정을 보면 ‘아 저 놈이 속지를 않았구나’ 하는 눈빛이 순간적으로 보여. 그러면 판사 입장에서는 ‘제대로 판결을 했구나’라고 생각하지. 말로는 전부 억울합니다라고 하지. 선고 전에는 존경하던 재판장님이라고 하다가 죽일 놈으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해. 변호사들도 거짓말을 그대로 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래야 돈을 받나 봐. 죄인들이 변호사들에게 투사되어 미워 보이기도 하지.”
  
  거짓말 속에서 사는 판사들에게 ‘불신’이라는 직업병을 보았다. 명확한 증거를 눈앞에 들이대도 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의심하고 부인하는 게 버릇이 된 것 같다. 어느 날 부장판사를 하는 친구에게 느닷없이 “그렇지?” 하고 말을 던져보았다. 앞도 뒤도 내용도 없는 말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아니”라고 먼저 말했다. 뭐가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그저 멍한 눈이었다.
  
  나 역시 평생 변호사로 살아오면서 거짓말을 들을 때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역겨울 때가 많았다. 잡범은 잡범대로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했다. 고위직도 다르지 않았다. 증거를 조작하고 천연덕스럽게 위증을 했다. 목을 매 자살하기 전에 뇌물을 준 권력자들의 이름과 그 액수를 적은 종이를 품고 죽은 사업가가 있었다. 그 안에는 국무총리와 대통령 후보까지 있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말할 수 없고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폭로를 거짓말이라고 했다. 법원은 산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허위가 진실이 되고 진실이 허위가 된 것 같았다. 죽은 사자가 살아있는 개보다 못한 게 이 세상이다.
  
  그래도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의 내면에는 거짓말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이 있다. 상대의 말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들려도 듣는 사람의 깊은 내면에서 그게 거짓말이라고 가르쳐 주는 존재가 있다. 그게 ‘내 안의 진짜 나’인지도 모른다. 입시나 고시를 쳤을 때 바로 깊은 내면에서 그 존재는 나의 불합격을 알려주었다. 나는 머리로 억지로 부인하려고 했었다. 결과는 내면의 존재가 알려주는 게 맞았다.
  
  선배 변호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변호사가 돈 욕심만 없다면 재판 시작하고 십분만 지나면 판사가 어떤 결론을 낼지 촉으로 바로 알 수 있어.”
  
  깨끗한 마음의 눈은 진실을 볼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있다. 탈주범 신창원을 변호할 때였다. 그의 강도 강간이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그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 안의 촉이 그의 말이 맞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수사 과정을 봐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관들이 피해 여성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몰래 신창원의 얼굴을 보여줄 때였다. 나는 그 여성의 바로 뒤에 따라붙었다. 그 여성의 표정과 눈빛 몸짓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 여성은 한참을 살피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라는 마음이 만들어 내는 순간적인 행동이었다.
  
   신창원이 가고 경찰관이 조서를 작성할 때였다. 그 여성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담당 경찰관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말이 뭐 그래?’라면서 윽박질렀다. 그 여성은 말을 고쳐 강간당했다고 진술했다. 죄가 날조되는 순간이었다. 법정에서 나는 내가 본 광경을 폭로했다. 내가 목격한 부분에 대해서는 증인이 되어 진술하겠다고 했다.
  
  잠시 휴정하고 재판장이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아까 말한 거 진짜요?”
  
  재판장이 내게 물었다. 법원장도 그 방으로 내려와 옆에 서서 같이 듣고 있었다.
  
  “그럼 진짜지 내가 거짓말까지 하겠습니까? 이 사건은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탈주범이 잡혔으니 언론도 더 이상 관심이 없는 사건입니다. 변호하려는 변호사가 없어 나도 어쩔 수 없이 맡았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미 그가 지은 다른 죄로 중형이 예상되는데 말입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늑대와 소년’이 되기 싫었다. 거짓말하는 사건을 맡지 않았다. 정직하려고 애썼다. 자존심이었다. 얼마 후 법정은 그의 강간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나의 말을 믿어준 것이다. 십자가를 지더라도 정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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