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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하고 불행한 날, 북한의 추석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2025-10-09
북한의 추석이 왜 가장 행복할까. 유일하게 추석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추석 때만은 통행증이 없어도 여행할 수 있다. 물론 평양이나 남쪽 군사 분계선, 북쪽 국경 쪽은 아니지만.
  
  추석에는 그리운 가족 친지를 만날 수 있다. 아빠가 남한 출신으로서 주변에 친지가 없었다. 어린 우리 형제들은 추석에 모여 산소에 가는 이들이 부러웠다. <우리 집에도 죽은 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야!>
  
  추석에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일 년 동안 준비하여 마련하기 때문이다. 평시 먹을 수 없는 이팝과 떡, 술을 먹게 된다. 항상 배고픈 세상에서 먹는 행복을 누구보다 잘 느낀다. 하지만 행복은 여기까지이다. 오랜 만에 맛 있는 것을 먹으니 과식하게 되어 고생한다.
  
  밤낮 노예처럼 노동하고 감옥 같은 조직 생활에 매여 있다 추석 날에 풀리니 좋고 나쁘고 무작정 나들이 가게 된다. 하지만 나서는 순간부터 지옥길이다. 승용차나 버스가 전무하다시피하니 객차밖에 없다. 객차의 화장실까지 사람이 차고 넘쳐 객차 지붕에까지 올라가야 한다. 느리고 긴 여행 시간 피곤하여 정신줄 놓기 쉽다. 본능적으로 머리 들다 전기 철도 고압선에 순간 골로 간다.
  
  추석의 인산인해는 쓰리꾼들 세상이 된다. 도시에는 조폭 무리가 추석객을 에워싸고 강탈한다. 한 해 동안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음식과 물건이 한순간 날아난다. 가장 큰 행복과 불행을 지닌 북한의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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