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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者에겐 말조심하면서 망자(亡者)한텐 함부로 무학산(회원)  |  2025-11-22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신정동 연쇄 살인' 범인 20년 만에 저승서 잡았다》기사의 허두는 이렇다.
  
  “경찰이 20년간 미제로 있었던 서울 양천구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냈다. 그러나 범행 당시 60대였던 범인이 암으로 사망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저승서 잡았다.'라니? 기자이니까 우리말을 갈고 닦아 길이 지켜야 할 직업적 의무가 있다. 도리어 우리말을 앞장서서 파괴했거나 엉뚱하게 문학적으로 쓴 것 같아 어리둥절했다. 기자는 기자의 글을 쓰고 문인은 문인의 글을 써야 성공한다.
  
  범인이 잡히기 전에 죽은 것을 왜 '저승서 잡았다.'고 썼을까? 경찰이 저승에 가서 잡은 것도 아닌데 그냥 “20년 만에 죽음을 확인했다.”고 말하면 안 되나? 독자의 관심을 끌려고 저랬을 것이다. 대통령도 유튜버도 ‘관종’세상에서 기자라도 모범을 보이면 좋으련만.
  
  20년 동안 범인을 못 잡았으니 그동안 애먼 사람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범인이라고 말한 저 망자도 억울한 사람일 수 있다. 더구나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겠거니와 조사도 없고 기소도 없고 재판도 없다. 그런데도 진범이라니? 죽은 자가 자백을 했나 아니면 그렇게 판결한 판사가 있나?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면서 죽어서 말 없는 사람에겐 마음 놓고 진범이라 했다. 경찰이 진범이라 말하더라도 기자는 받아 적어서는 안 될 뿐더러 경찰의 단정을 지적해 주어야.
  
  우리는 6·25 때 우리의 원수였던 중공군과 괴뢰군 전사자의 무덤까지 만들어 주고 관리해 주는 인의의 나라이다. 그러한데 ‘저승서 잡았다’고 말할 일인가. 경찰이 그런 말을 해도 기자는 말려야 옳다. 우리나라는 상향 평준화하여 발전하는 게 아니라 하향 평준화하여 퇴보한다.
  
  아무리 예절이 말라 비틀어진 사회이기로서니 망자에 대한 예절까지 밟아버릴 수는 없다. 망자를 욕하여 잘 된 사람 봤나? 죽은 사람은 생명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만든 분을 생각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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