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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의 국어파괴 공작
박경범(작가) | 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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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이 있다면 그 임무는 무엇일까. 당연히 국민생각의 표현력을 발전시켜 선진문화국가의 국어가 되게 함일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국어의 표현력을 갈수록 퇴보시켜 결국엔 우리 국민이 영어에 의존하게 하려는 노림수를 가진 기관이라면 과연 믿을 만한가. 그럼에도 이제까지의 행적은 다분히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국어퇴보 정책을 말하자면 보통 한자사용 제한이 언급되고 가장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국어퇴보 정책은 언어문자 全般에 걸친 것이며 한자사용 제한은 그 중 하나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글은 같은 字母로 표시되어도 발음이 다른 경우가 많다. 새(鳥)와 새(新)은 발음이 전혀 다르다. 소(小)와 소(牛), 사자(獅子)와 사자(要買)도 그렇다. 다행히(?) 이들 雙은 품사가 다르기에 큰 불편 없이(?) 쓰이고는 있지만 우리말에도 엄연히 있는 聲調와 장단음을 무시하고 당장의 편의만을 위하여 간략화한 표기를 ‘표준’으로 하는 것은 이미 다가온 인공지능ai 시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성조의 사라짐은 이미 조선시대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니 昨今의 우리 언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며 甚至於 日帝에게서도 면책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성조표기(傍點)의 사라짐의 이유는 짚어야 한다. 비록 세종대왕은 龍飛御天歌와 釋譜詳節을 통해 우리말의 체제 안에서도 學問的 語彙를 표기할 수 있도록 시범을 보였지만 이후 다시 양반들의 學問用 언어는 漢文으로 一貫되었던 것이다(참고글 참조). 그러니 조선 후기에도 진지하고 정확한 표기를 위한 도구는 한문이었고 한글은 노래가사 편지 등 엄밀함이 요구되지 않는 데에 쓰였는데 문맥을 통해 대부분의 어휘판별이 되는데 굳이 정확성을 기하려고 방점을 찍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要는 온전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변화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장단음은 비록 한글의 표현수단은 받쳐주지 않아도 상당히 오래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지금의 기성세대의 초등학교 시절에도 말(言)과 말(馬), 눈(雪)과 눈(目)의 발음구분을 비록 한글표기는 같아도 교육을 받았으며 ‘베에토벤’, ‘헤에겔’ 等 외국어 표기에도 적용되었고 우리말 단어에도 간혹 ‘무우’와 같이 표기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장단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국립국어원’의 선언이 있었다. 똑같이 표기하면서도 발음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비합리적 규범에서 해방되어 아나운서 등 모두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 異意가 없었다. 장단음을 분별해 표기하여 발전적인 방향으로 非合理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또한 전체적인 국어퇴보 정책의 一環이었던 것이다. 비슷한 時期에 국립국어원은 ‘돐’이 어렵다(?) 하여 ‘돌’로 바꾸게 하였다. ‘石’과는 전혀 다른 단어이니 문장의 앞뒤 정황을 보아 분간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사진관의 간판에서 비록 ‘돌사진’ 石이 아님은 짐작 가능하더라도 그 생소한 느낌에 따른 정서적 혼란을 보완할 길은 없다.
생활에 자주 쓰이는 단어인 ‘설겆이’를 ‘설거지’로 하라고 했는데 식생활에 관련된 말에 굳이 ‘거지’를 자주 연상시켜야 했는가. 나중에 알았지만 그 이유가 가관이다. ‘설겆이’는 ‘설겆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그 동사가 지금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는 情報의 전달매체라는 기본철학은 없이 그저 시대에 발맞춰 ‘진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인 것인가. 물론 근본 목적은 우리말을 퇴보시켜 결국은 영어를 쓰게 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겠지만 순수하게만 해석한다면 그런 것이다.
‘설겆이’ 等 음절별 표기방식에서 이뤄지는 한글의 視覺的 변별력을 말살시키는 그들의 의도는 외국어 표기에서도 드러난다. 근래 화제가 되었던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오래 전 처음 집권했을 때의 표기는 ‘네탄야후’였다. 본래 그들의 이름이 ‘네탄’과 ‘야후’가 있으니 한글의 모아쓰기 기법으로 효과적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그런데 무조건 ‘소리나는대로’ 한다고 하여 알파벳에 비하여 가진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게 했다. 손흥민이 속했던 영국의 축구팀의 이름을 토튼햄(TottenHam)이라고 했던 것에서 토트넘이라고 부르게 했다. 햄(Ham)은 마을을 뜻하는 단어로서 비슷한 팀이름인 웨스트햄(WestHam) 풀햄(FulHam) 등이 있어서 의미의 체계가 있지만 이들을 ‘토트넘’, ‘풀럼’, ‘웨스트햄’이라고 제각각으로 부르니 한글이름으로는 이들 팀의 이름들에 체계가 없다. 이렇게 한글의 의미표현 기능을 퇴보시켜서 사물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따라 읽기만 하게 한다. 토튼햄을 토트넘이라 하는 것은 손흥민을 소능민이라고 하는 것이나 같다. 이것이 싫어서 프리미어리그를 보지 않았음은 물론 손흥민의 이적을 반가워했던 것이다. 듣기 싫은 ‘토트넘’을 더는 많이 안 들어도 되니까.
국립국어원은 맞춤법과 외국어표기법을 통해 우리말을 받침사용과 음절단위발성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설합(舌盒)’이라는 妙味의 단어를 구태여 ‘서랍’으로 퇴보시키는 것도 그렇다. 한글의 음절단위 의미표기 기능을 약화시키고 풀어쓰기에 가까운 단순표음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사실 ‘한글전용’ 마귀들의 본래 意圖도 ‘풀어쓰기’였으니 그 잔존세력이 미련을 버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음절별 표기는 그 자체가 한글의 정체성으로서 이것을 해체한다는 것은 한글이 무너지는 것이다. 받침이 없는 한글은 자모음의 교대일 뿐으로서 알파벳으로 쉽게 代置된다. 한글의 그나마의 장점인 음절별 표기기능을 파괴하여 결국은 영어를 쓰게 하려는 것이다.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국민이 어찌 할 방도가 없다. 법원도 그러한 기관이라고 해왔지만 근래에는 특정 정당을 중심으로 ‘국민 뜻’에 따른 압력을 주려는 試圖도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법원이란 큰 권력기관도 ‘건드는’ 세상이지만 국립국어원은 어느 政黨도 감히 건들지 못하는 상황이니 국민 정서생활(情緖生活)을 피폐(疲弊)와 파탄(破綻)으로 몰아가는 것에 누구도 制止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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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글:
(박근혜정부 말기 한자교육정책이 계획되었을 때)
-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문학작품은 서적이나 교과서의 편집자에 의해 임의로 글자를 바꿀 수 있는 글이 아니다
조정래씨는 창작의 자유를 걱정말라
- 박경범 본회 지도위원
수십 년을 반복되어 온 우리의 어문정책 논의에서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글과 말과 문자를 떠나서 창작행위를 할 수 없는 문인들이, 침묵을 지키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있었는데(문학사상 1999/3월 임홍빈 발행인) 이번에 문단의 책임 있는 작가 조정래씨가 견해를 표명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다만 이번에 조씨의 주장과는 달리 한자교육확충과 초등학교 한자병기는 조씨 및 같은 견해를 갖는 문인들의 문학활동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본래 문학작품은 서적이나 교과서의 편집자에 의해 임의로 글자를 바꿀 수 있는 글이 아니다. 학생에게 漢字교육시키고 여러 인용문에 漢字를 병기해도 애초에 한글전용으로 창작된 작품은 계속 한글전용으로 출판하고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 기회에 애초에 한자를 쓴 작품을 임의로 한글로 바꾸거나 괄호투성이로 만드는 행태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조정래씨의 각 발언이 우리의 현실에 벗어나 있음을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 작품 한자병기 교과서 게재 땐 작품 훼손. 당장 빼달라고 할 것”
-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조씨의 작품은 교과서에 실리면서 한글그대로는 물론 어느 단어에 한자괄호를 덧붙여주었는지도 충실히 따라서 실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문정책 정상화를 바라는 입장에서도 동의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한자를 옆에 안 써도 이해 못할 말이 없습니다. 왜 교육부가 나서서 아이들을 학대하려 합니까.”
- 한자 없이 많은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조씨 자신이 한자를 알고 많은 독서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이들 학대 운운에 관해서 한자교육의 양은 영어교육의 양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학문 연구나 기업 활동을 위해 더 깊은 한문 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각자 알아서 배우면 충분하다”
- 법률, 의학 용어는 전문가들만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의 지적활동이 평등해야 진정한 민주사회가 이룩되는 것이다. 학문적 표기능력이 없는 한글을 국민대중에게 강요하는 것은 지식층의 지식독점이고 불평등 사회가 되는 것이다.
“나라 자존심 차원에서도 한자병기를 용납할 수가 없다”
- 조씨가 생각하는 나라는 漢字를 공식문자로 쓴 조선시대까지의 이 땅의 나라를 否定하고 일제지배 이후에 새로 들어온 세력이 지배하는 나라를 말하는가.
조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문인은 우리의 문단사회에서 그렇게 특별한 경우도 아니다. 이런 자연스럽지 않은 현상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이는 현재 우리의 문단이 1920년대 일제의 문화정책에 의해 틀이 잡힌 후 백년을 가까이 변화되지 않은 집단임에 기인한다.
조선시대 초기 한글이 창제되고 “세종대왕은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었다”(초당대 김창진교수).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 이후의 자료를 보면 한글문장중의 한자어를 한자로 쓰는 것은 거의 발견되지 않아 한문은 한문 한글은 순한글로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어로 된 문장에 한자어를 한자로 쓴 것은 한문을 배우기 위한 많은 공부를 하기 어려운 일반서민들도 학문적 언어의 뜻을 알 수 있으므로 한자문화권의 비중국언어 지역으로서는 민주적인 문장언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 누구나가 학문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신분계층의 고정을 위해서는 위협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류층과 하층민의 언어체계를 달리하여 계층간의 이질화로 신분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나 공통적인 것이었다. 이에 따라 세종의 혼용 시범이 있었음에도 조선시대의 지배계층은 학문적 표기능력이 없는 하층민의 순한글과 학문을 배우는 양반들의 한문으로 의도적인 이원화를 했던 것이다.
이후 개화기에 고종은 국한문공용을 선포했다. 나라 안의 모든 국민의 언어체계를 통일하여 신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고종의 국한문혼용은 개화된 일본의 영향을 받음도 있지만 세종 時의 반포취지를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시대가 된 뒤로 공식적으로는 이른바 내선일체를 표방했지만 일본인과 친일한국인 지배계층은 역시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에 따라 일반한국인에게는 순한글 언어를 권장하였으며 그것은 1920년대의 문화정책이었다. 일제는 조선인 민중에게는 순한글의 문학을 보급하여 순한글에 익숙하도록 했다. 학문표기능력이 있는 한자혼용체는 지식층만 보도록 유도하여 점차 일본어에 흡수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짧아서 국한문혼용체는 일제시대를 거치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후 국한문혼용체는 통용되었다.
그러나 신분고정 욕구는 다시 살아나 대한민국의 신지배층은 한글전용정책으로 다시 지배층과 백성의 언어분화를 기도(企圖)하였다. 그리하여 주지(周知)하다시피 이번에는 백성에게 순한글을 강요하고 지배층은 학문적 언어로 영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문학은 1920년 이후 여전히 한글전용이 이어져 왔기에 이를 바탕으로 다른 모든 분야도 점차 순 한글로 통일시켜 갔다. 이렇게 지배층과 백성의 언어분화가 이루어지도록 크게 기여한 것이 1920년대에 만들어진 체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문단이다. (201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