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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는 좋은 일도 너무 오래 하면… 무학산(회원)  |  2025-12-09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지극 사랑을 받는 분이 많다. 멀게는 충무공부터 가까이는 이중섭까지, 고호나 카프카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11월 25일에 작고한 이순재 씨도 비슷한 경우인 듯하다. 별세하자 평소보다 더욱 언론이 연일 그분에 관한 좋은 기사를 실었고 오늘도 조선일보는 이런 기사 제목을 실었다.《옛날 옛적에 이순재가 살았다》
  
  기리는 것도 지나치면 고인에게 도리어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해 본다. 언론이 너무 저러니 하천배에 불과한 나조차도 이런 글을 쓰게 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은 "만일 전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라 번역해 놓은 탓에 어릴 때는 소년 소녀들이 읽는 위인전기인 줄 알았다. ‘사기열전’처럼 '대비 열전(對比列傳)‘이라 번역하는 것이 원 제목이니까 그렇게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리스어 제목은 Βίοι Παράλληλοι 이라고 한다. 거기서 읽은 내용 중에 기억하고 있는 것을 하나 이야기하겠다.
  
  아리스티데스(Aristides)는 그리스의 영웅이다. 그는 '정의로운 자(The Just)'라는 별명을 얻은 청렴결백하고 공정한 인물로 유명하며 또한 '왕자다운 사람', '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가 모함에 빠졌고 선동당한 사람들이 그를 ’도편 추방‘ 장에 세워서 투표하기로 했다.
  
  도편 추방 투표가 진행되던 날, 글을 모르는 한 시골 사람이 아리스티데스에게 다가와 깨진 도자기 조각(오스트라콘)을 건네며 자신의 도편에 추방할 사람의 이름을 대신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아리스티데스가 누구의 이름을 적으면 되느냐고 묻자, 그 시골 사람은 "아리스티데스"라고 답했다.
  
  놀란 아리스티데스는 그 사람에게 아리스티데스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추방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시골 사람은 "특별한 잘못은 없지만,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정의롭다'고 부르는 것이 싫어서"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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