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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은 김일성의 지령"…태영호에 대한 제주법원의 맹랑한 판결? 최보식(최보식의언론) 편집인  |  2025-12-13
북한에서 보고 배웠던 사실을 근거로 "제주 4.3 사건 배후에 김일성의 지령이 있었다"라고 발언했던 태영호 전 국회의원을 제주도에서 재판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제주지방법원 민사3단독(오지애 부장판사)는 10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이 태 전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태 전 의원에게 1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해당 판사는 판결 이유에 대해 "피고의 발언은 의견 표명을 넘어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에 비춰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하므로 명예훼손과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참으로 맹랑한 판결이다. 해당 판사는 여전히 논쟁적인 4·3 사건에 대해 얼마나 공부했고 확신하고 있기에 태영호 발언을 '허위 사실'로 판정하는 걸까. 판사에게 역사적 사실 여부에 대한 심판 권한까지 주어져 있다는 오만 혹은 무지함에서 나온 판결이거나 제주 향토 주민들에게 영합한 판결,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태 전 의원은 2023년 2월 13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 직전 SNS에 글을 올려 "제주 4·3은 김일성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며 “제주 4·3사건의 장본인인 북한 김씨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억울한 희생자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제주 4.3 사건 김일성 배후설' 발언이 논란되자, 태 의원은 다음날 입장문을 내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사건 주동자인 김달삼, 고진희 등은 북한 애국열사릉에 매장되어 있다”며 “이들을 미화한 북한 드라마를 유튜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즉 북한은 아직도 4.3사건 주동자들은 추앙하고 영웅 대접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 관련기사 참고)
  
  태 전 의원은 이 발언이 있고서 정치권과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사실 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집단 린치를 당했던 것이다.
  
  본지는 당시 "우리 사회 ‘지성(知性)의 위기’를 또 보고 있다"고 논평한 바 있다.
  
  4·3희생자유족회 등 7개 단체는 같은 해 6월 15일 "수차례 사과 요구에도 이를 무시하며 심각한 명예훼손을 계속하고 있는 태 의원에 대한 엄정한 법적 심판을 요구하기로 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이날 제주법원은 예상대로 유족회 손을 들어줬다.
  
  제주 4·3 사건(1948~1954년)의 희생자는 1만4000여 명으로 기록돼 있다. 전쟁이 아닌 한 지역 안의 좌우 이념 대결로 이렇게 많은 인명이 살상된 적은 없었다. 군경에 의한 억울한 피해자도 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막기 위한 남로당의 조직적 반란에서 촉발됐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북한에서 온 태 전 의원은 "남로당의 반란 배후에 김일성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학술적으로 충분히 논쟁해볼 만한 사안에 대해 일개 판사가 '허위 사실'로 재단해버린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태영호 전 의원은 다음의 반박 입장문을 내놓았다.
  
  어제(12월 10일) 제주지방법원은 제주 4·3사건과 관련한 제 발언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4·3 유족회에 1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제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저는 제주 4·3사건 희생자와 유족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발언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을 명백히 밝힙니다.
  
  2023년 2월 12일 저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해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제주 4·3사건의 장본인인 북한 김씨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억울한 희생자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다”고 말씀드렸으며, 이 글과 함께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사진을 제 페이스북에 게시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의 행동을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하여, 마치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인 것처럼 판단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제 진의는 어디까지나 무고한 희생자들께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데 있었습니다.
  
  저는 제주 4·3사건의 책임을 오직 김일성과 남로당 세력에게만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으며, 국가공권력의 제주도민들에 대한 과잉 대응 또한 남북분단의 비극이라는 점을 수십 차례 설명해왔습니다.
  
  일부에서는 제가 제주 4·3사건의 장본인으로 김일성을 지목한 점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저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제주 4·3사건은 1945년 한반도 해방 직후, 이념적 대립 속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입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소련군의 신의주 학살사건(1945년 11월 23일), 대구 10월 사건(1946년), 1948년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5·10 총선을 둘러싼 충돌, 북조선 노동당과 남조선 노동당의 무장투쟁 노선, 그리고 여수·순천 10·19사건과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동 속에 있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의 연설문이 수록된 『김일성 전집』에는 “북한 로동당이 <남조선 단독선거 반대 투쟁 전국위원회>를 조직하고 <남조선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령도했다”고 기록돼 있으며, 북한에서 출판한『조국통일투쟁사』는 “1948년 4월 3일 제주도 인민들이 5·10 망국단독선거를 반대하는 무장항쟁에 궐기하여 제주도에서의 망국단독선거를 완전히 파탄시켰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제주도 인민봉기>에 대해 “김일성동지께서는 북과 남의 전체 조선 인민들에게 민족 분열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조선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조선 최고 립법기관을 선거하고 전 조선적인 통일적 중앙정부를 수립할 것을 호소하셨다.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남조선 로동계급과 함께 제주도 인민들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입국을 반대·배격하는 2·7 구국투쟁에 일떠섰다. 3월 말부터 제주도민들은 2·7 구국투쟁 때 탈취한 무기로 인민자위대를 결성하고 한나산을 중심으로 산악지대로 들어가 근거지를 꾸렸으며, 4월 3일 새벽 무장항쟁으로 넘어갔다.”고 서술합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제주 4·3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김달삼, 강규찬, 고진희 등이 1948년 9월 북한으로 피신했을 때 이들을 “미제와 리승만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남조선 혁명투쟁의 영웅”으로 대우했습니다.
  
  만약 ‘제주 4·3’이 김일성의 전반적인 5.10 단선 반대 노선과 무관한 사건이었다면, 제주 4·3사건의 주범들은 영웅이 아니라 군중을 무모한 폭동으로 내몬 ‘좌경모험주의자’로 김일성에 의해 처벌받았을 것입니다.
  
  구체적 지령은 남로당이 내렸고 그 지령문들은 제주도에서 발견되었습니다만 당시 남로당도 김일성의 전반적 노선과 지시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제주 4·3사건 주범들을 영웅으로 대우하는 내용을 담은 TV 드라마 ‘한나의 메아리’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문학작품도 다수 존재합니다.
  
  함세덕의 희곡 『山사람들』, 강승한의 서사시 『한나산』이 대표적이며, 안률만의 『동백꽃』, 박운산의 『노래』, 임학수의 「남쪽바다 섬을 생각하고」 등에서도 제주 4·3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김일우의 장편소설 『한나산』(1986), 양의선의 『한나의 메아리』 등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제주 4·3사건이 김일성의 5·10 단독선거 반대 노선과 정치적으로 일치한 투쟁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제주 4.3사건이 김일성과 북한 노동당의 전반적인 노선 선상에 있었다는 본인의 발언을 마치 김일성이 제주도에 내려 보낸 직접적인 지령처럼 곡해된데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는 제주 4·3사건과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소신에서 발언해왔으며, 이러한 해석이 대한민국에서 부당하게 억압되지 않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념이나 명분을 불문하고, 제주도민들이 좌우 양쪽으로부터 희생된 비극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희생된 제주 4·3 피해자들의 안식과 유족 여러분의 치유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제주도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합당한 보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와 동시에 6·25 남침전쟁으로까지 이어진 김일성과 박헌영의 무장투쟁 노선이 제주 4·3사건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묻고자 합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의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해, 그리고 역사적 진실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저는 1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변호사와의 충분한 검토를 거쳐 항소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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